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황폐해졌던 호주 게임산업이 최근 인디와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과거 게임업계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팬데믹을 계기로 게임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호주 정부는
세금 환급 정책과 인디게임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성장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호주 게임산업이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지 눈여겨볼 만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 PwC에 의하면 호주 게임시장은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최대 비중을 차지하며 e스포츠 분야를 포함한 2021년 시장 규모는 약 23억 1,700만 달러(약 2조 8,962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게임시장 규모와 비교해 게임 개발에서 호주의 위상은 미약한 편이다. 2009년 국제 금융위기를 맞아 대다수 대형 스튜디오가 문을 닫았으며 마지막까지 버티던 2K 오스트레일리아마저 2015년 사업을 중단하면서 호주의 AAA급 게임 스튜디오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 되었다.
호주 게임산업은 이후 모바일게임과 인디게임을 주축으로 자생적으로 발전해 왔다.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플랫폼을 통해 호주 중소규모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게임들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최근까지 모바일 게임 부문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호주 게임산업 매출과 고용인원 추이 (단위: 백만 달러, 명) | 출처: IGEA(2021.12)호주게임산업협회(IGEA, Interactive Game & Entertainment Association)에 따르면 2021년 호주 게임 스튜디오가 개발한 게임 매출은 전년 대비 23% 증가한 2억 2,650만 호주달러(약 1,925억 원)을 기록했다. 정규직 고용인원은 7% 증가한 1,327명으로 2022년 하반기에는 신규 고용인원이 400명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호주에서 개발된 인기 게임으로는 2019년 여러 차례에 걸쳐 올해의 게임으로 꼽힌 <이름 없는 거위 게임(Untitled Goose Game)>을 비롯해 <길건너 친구들(Crossy Road)>, <할로우 나이트(Hollow Knight)>, <프룻 닌자(Fruit Ninja)> 등이 있다.
최근 성공사례로는 호주 브리즈번 소재의 인디게임 스튜디오 위치 빔(Witch Beam)이 2021년 출시한 <언패킹(Unpacking)>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이삿짐을 풀어놓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감춰진 서사를 간접 전달하는 독특한 형식의 힐링 게임으로 영국 영화 및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의 이야기상(Narrative)과 대중 투표로 선정되는 올해의 게임상을 받았다.
위치 빔의 인디게임 <언패킹> 출처: Witch Beam또 다른 사례로 2010년 설립된 인디게임 스튜디오 블로우피시(BlowFish)를 꼽을 수 있다. 모바일 전략게임 <시즈크래프트(Siegecraft)>가 인기를 끌며 직원 80명 규모의 중견 스튜디오로 성장해 2021년 7월 홍콩 기반의 게임사 애니모카 브랜드(Animoca Brands)에 3,500만 호주달러(약 325억 원)에 인수되기도 했다.
성공한 호주 게임 스튜디오들은 그 비결 중 하나로 호주 정부의 지원을 꼽고 있다. 일례로 위치 빔은 퀸즐랜드주의 영화산업 지원기구인 스크린 퀸즐랜드로부터 6만 호주달러(약 5,600만 원)의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과거의 호주 정부는 적극적인 게임 육성 정책을 펴는 영국, 캐나다 등과 비교해 게임산업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2020년대 들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임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육성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2030년까지 자국 게임 10억 호주달러(약 9,000억 원) 매출 달성, 게임 관련 일자리 1만 개 이상 창출, 4대 게임산업 허브 도시 육성 등의 목표하에 게임산업에 대한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확대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최근 호주 정부가 발표한 게임산업 진흥정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호주 연방정부는 2021년 5월 발표한 ‘디지털 경제 전략’1의 일환으로 디지털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호주 내에서 50만 호주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게임 기업에 대하여 30%의 세금 환급 혜택을 제공하는 디지털 게임 세금 환급(Digital Game Tax Offset, DGTO) 프로그램을 올해 7월 1일부터 실시했다. 호주의 게임 스튜디오는 요건에 해당하는 신규 게임 프로젝트별로 세금 환급을 신청할 수 있다. 단, 도박 요소가 있는 게임과 장르 분류가 불가능한 게임은 신청할 수 없다.
호주 정부는 DGTO에 2021/2022 회계연도(2021년 7월 1일~2022년 6월 30일)부터 향후 4년간 1,880만 호주달러(약 175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며, 2021년 12월에는 2023/2024회계연도부터 2년간 추가로 1,960만 호주달러(약 182억 원)를 할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DGTO는 호주에서 게임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최초의 세금환급 정책으로, 게임업계는 이 제도가 호주 게임 개발 생태계의 형성과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단, 50만 호주달러 이상의 지출에 대해서만 혜택을 볼 수 있어서 중대형 게임 기업이 주요 지원 대상이 될 전망으로, 호주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인디게임 보조금 지급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호주 연방정부 산하의 영화산업 지원기관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Screen Australia)는 2022년 3월 중소 인디게임 스튜디오 지원을 위한 신규 펀드 ‘게임: 익스팬션 팩(Games: Expansion Pack)’을 발표했다. 이 펀드는 50만 호주달러 미만(약 4억 6,400만 원)의 예산으로 제작되는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직접 보조금을 제공할 예정으로 초기 300만 호주달러(약 28억 원)의 예산을 할당해 PC, 모바일, 콘솔 등 모든 플랫폼 대상의 게임 타이틀을 지원할 계획이다.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이엄 메이슨(Graeme Mason) CEO는 호주 미디어 생태계에서 게임 분야는 빠르게 성장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기금을 통해 호주의 인디게임 스튜디오들이 세계적 수준에서 경쟁이 가능할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는 3월부터 1차 신청을 받아 7월 중순 자금지원을 받게 될 31개 게임을 발표했으며, 선정된 게임은 액션, 어드벤처, 퍼즐, 아케이드, 롤플레잉 등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을 포괄한다. 또한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는 예상을 뛰어넘는 활발한 신청에 호응해 지원 규모를 당초 300만 호주달러에서 400만 호주달러(약 37억 2,400만 원)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IGEA의 론 커리(Ron Curry) CEO는 ‘게임: 익스팬션 팩’이 호주 게임 개발 생태계의 역량 개발과 고용 창출, 매출 증가에 이바지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편, 주 내에서 25만 호주달러 이상을 지출한 게임에 대해 15%를 환급해주는 디지털 게임 인센티브(Digital Games Incentive)를 운영 중인 퀸즐랜드주의 스크린 퀸즐랜드(Screen Queensland)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22년 4월 다양한 개발 단계의 게임 스튜디오에 최대 9만 호주달러를 지원하는 퀸즐랜드 게임 보조금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스크린 퀸즐랜드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기존에 스크린 파이낸스(Screen Finance) 프로그램을 통한 게임 지원을 대체하여 더욱 심층적이고 맞춤화된 지원을 추구하며, 프로토타입/얼리 액세스/정식 출시 단계별로 각각 2만/5만/9만 호주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빅토리아주에는 호주 전체 게임 인력의 57%와 170개 이상의 게임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으며, 빅토리아주 정부에 따르면 2021년 주내 디지털 게임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117% 증가한 970만 호주달러(약 90억 원)에 달한다.
빅토리아주는 2021년부터 게임 개발자 양성을 위해 주내 게임스튜디오들과 협력해 게임 개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으로, 작년에는 인디게임 스튜디오 리그오브긱스(League of Geeks) 및 사무라이펑크(Samurai Punk)와 협력해 필름 빅토리아를 포함한 3개 사에서 총 12개월간의 유료 인턴십 기회를 제공했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2022년 게임 개발 인턴십 프로그램 출처: Film Victoria올해는 8월 초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시리즈로 유명한 글로벌 게임 스튜디오 슬레지해머 게임스(Sledgehammer Games)와 인디게임 스튜디오 로봇 서커스(Robot Circus)와 함께 게임 개발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대 호주 게임산업은 높은 수준의 IT 인력과 유리한 환율구조 등에 힘입어 저렴한 비용에 개발 인력을 원하는 해외 게임 스튜디오의 진출로 호황을 누렸으며 2K 오스트레일리아, 팬데믹(Pandemic), 크롬(Krome) 등 자체 게임 스튜디오들의 활동도 활발했다. 그러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대다수 게임 스튜디오들이 문을 닫고 게임 개발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며 2007년 1,431명에 달했던 정규직 인력이 2012년에는 581명까지 감소하며 불황을 맞이했다.
2012년 말 호주 정부가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에 총 2,000만 호주달러 규모의 인터랙티브 게임 펀드를 조성하며 부활의 단초를 마련했으나 2014년 1,000만 호주달러(약 185억 원)의 자금을 남겨둔 상황에서 기금운용을 중단했다. 이후 호주 게임업계는 모바일과 인디게임을 중심으로 자구노력을 통해 회복세를 보였으나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지속되며 IGEA가 주축이 되어 인터랙티브 게임 펀드의 부활 등 정부의 지원을 호소했다.
한동안 게임업계의 요구를 외면했던 호주 정부도 팬데믹을 계기로 급성장한 게임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20년 하반기부터 게임산업 진흥정책을 강화하며 잇따른 성공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호주 정부는 디지털 게임기업에 대한 세금 환급과 인디게임 보조금 지급 외에도 2021년에는 우수 해외인력 확보를 위해 우선이민 기술직업군(PMSOL, Priority Migration Skilled Occupation List)에 게임 개발 관련 기술을 신규 포함하기도 했다.
호주 게임업계는 정부의 진흥정책을 환영하며 게임 생태계 전반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으며 해외 게임 스튜디오들도 호주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현지 진출과 개발 인력 고용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름없는 거위>, <언패킹>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게임들에서 알 수 있듯이 충분한 역량을 갖춘 호주 게임업계가 정부의 지원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