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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디지털 주권’ 위해 독립 게임 생태계 구축 시도하는 러시아

글로벌 이머징마켓

전쟁 직후 글로벌 게임산업은 러시아 규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에 러시아 게임산업은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영역에 걸쳐 피해를 입었고, 회복은 요원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게임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체적인 게임엔진을 만들고
국영 e스포츠 학교 설립을 계획하는 등 독자적인 게임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본고에서는 러시아의 국가 주도 게임산업 육성 정책 현황과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1러시아 게임산업의 위기

1.1.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게임시장 몰락

게임산업 시장조사기업 뉴주(Newzoo)에 따르면, 러시아 게임시장은 유럽 6위, 세계 15위의 주요 신흥 성장 지역이다. 그러나 매출 기준으로 상위 10개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게임 시장은 모바일 F2P(Free-to-Play) 게임이 인기이며, 콘솔 게임의 비중은 매우 낮다. 지난해 러시아 게임 시장 총 매출 34억 달러 중 모바일 게임의 비중은 41%에 달했다. 이유는 러시아 소비자들의 낮은 구매력과 콘솔의 높은 가격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콘솔 게임의 불법 복제가 만연한 상황이 이어졌으며, 이는 러시아의 콘솔 관련 기업들의 수익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에는 러시아 정부가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의 합법화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는 해외 국가나 기술 기업의 제재로 이어질 개연성이 커 러시아 게임산업 성장을 저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러시아 게임 시장과 산업 발전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와 불법 복제에 대한 인식 개선 등 몇 가지 요인이 해결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 엇갈려 왔다. 그러나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서고, 이에 전 세계 대다수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의 강력한 경제 제재에 직면하면서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이 되었다.

모바일 앱 데이터 리서치 업체인 앱매직(AppMagic)과 러시아 게임개발 무역업체 앱투탑(App2Top.ru)의 자료에 따르면, 구글과 애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현지 사용자의 플랫폼 내 결제를 중단했다. 모바일 게임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게임시장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 올해 2~4월간 모바일 게임 시장은 전년동기 1억 4,600만 달러에서 3,000만 달러로 79% 감소했다. 콘솔과 PC 판매 감소세까지 감안하면 올해 러시아 게임시장 규모는 전년에 비해 40~50% 규모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쟁 장기화와 함께 제재도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게임시장 축소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수 있다.

1.2. 러시아 IT 인력의 해외 유출 증가

통신사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전쟁은 최근 몇 년간 호황을 누리던 러시아 IT 산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전쟁 전에는 수출액이 연간 80억 달러 이상을 기록했었으나, 현재는 프로그래머, IT 창업자, 중견 IT 기업들이 러시아를 등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최대 17만 명의 IT 전문 인력이 러시아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키프로스, 아르메니아, 조지아,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등 중동의 국가들이 러시아를 탈출한 IT 이민자들에게 인기 있는 목적지다. 이 외에도 터키, 두바이, 이스라엘 등 중동 국가도 러시아 IT 이민자들에게 선호되고 있으며, 미국은 비자 요건을 일부 면제함으로써 이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22년 7월 기준 그루지야에 거주 중인 러시아, 벨라루스 및 우크라이나 이민자는 8만 명으로 집계되며, 이 중 3만 명은 전쟁 발발 이후 입국한 러시아 국민으로 추산된다. 8만 명 중 2만~2만 5,000명이 IT업계 종사자이다. 전쟁 이후 중동 국가에서는 러시아 기업의 구인 광고가 2배 이상 증가했다. 러시아 IT 기업들이 주요 사업 거점을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IT업계의 러시아 엑소더스 현상은 조지아나 그루지아처럼 세금과 사업 환경면에서 자유롭지만 가난한 나라에게는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의 유출로 인한 러시아 경제의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IT 인력이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러시아 노동인구 중 가장 우수한 이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전체 인구 중 학위 취득자는 27%에 불과한데, 이민자의 80%가 대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민자의 평균나이는 32살이다.

혁신에 반대하는 대형 국영기업과 창의적인 경쟁자들을 힘으로 억압하는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oligarkhia)1들이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 경제 체제에서 IT 업계는 젊은이들에게 고속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산업 분야로 러시아에서는 ‘사회적 엘리베이터(social elevator)’로 불려왔다. 러시아 IT 업계 종사들의 평균 임금은 3~4,000유로인데, 이는 러시아 평균 소득의 10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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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후 부와 권력을 얻은 신흥 재벌과 관료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푸틴 대통령의 후원 세력으로 평가받는다.

러시아의 IT 종사자들이 고국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현재의 전쟁 때문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핵심 장비의 부족, 해외 시장의 제재가 주된 이유지만, 러시아 정부는 전쟁 전부터 기존의 국가 시스템의 권위를 넘보는 IT 기업들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높여왔다. 특히, 2012년 러시아판 구글인 얀덱스(Yandex NV)와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프콘덱테(Vk.com)가 국영 방송사의 점유율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검열이 심화되었으며, 크림반도 합병, 유가 하락 등 국제적인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주가의 폭락 및 검열 수위 강화 등으로 IT 대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얀덱스의 고급 인력은 이미 전쟁 전부터 해외로 많이 빠져나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IT 종사자들에게 해외 이민은 단순히 러시아의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진영의 선택’이라는 의미가 크다고 해석한다. IT 종사자 본인이 어떠한 국가적, 혹은 직업적 가치관을 가지고 업을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고학력 IT 종사자들은 인근 해외 국가에서는 매우 환영받는 인력으로, 주변 국가들이 이민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등 각종 유인책을 구사하고 있어 러시아의 우수한 IT 인력 유출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러시아의 해법: 독자적 게임 산업 생태계 구축

2.1. 러시아의 자체 게임 엔진 구축 시도

러시아 정부가 ‘디지털 주권’ 계획의 일환으로 ‘국가 게임 엔진’을 개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월 수면 위로 떠오른 ‘국가 게임 엔진’에 대한 논의는 러시아의 비디오 게임 개발자들에게 “중요하고 긴급한” 것으로 인식되는데, 이는 양대 게임 엔진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과 유니티(Unity) 제작사 에픽 게임즈(Epic Games)와 유니티 테크놀로지도 전쟁을 규탄하며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해 러시아 기업이 해당 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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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엔진 모두 엔진 자체의 설치는 무료이며, 엔진으로 만든 콘텐츠가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발생시켰을 때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러시아 기업에서 기존에 엔진을 설치한 뒤 사용 중이기에 당장의 문제가 되지는 않고 있지만, 규제 수위가 높아지며 후속 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게임 엔진은 개발자들이 더 쉬운 방법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로, 비디오 게임의 골격 구조와 개발 프로세스를 향상시킬 수 있는 풍부한 기능을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갖춘 관련 라이브러리 모음의 역할을 한다. 현재 AAA 타이틀의 대부분은 ‘언리얼 엔진 4’를 사용하여 개발되었으며, 현재 개발중인 AAA 게임의 상당수가 ‘언리얼 엔진 5’로 제작되고 있다. 언리얼 엔진 5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및 가상인간 창조 관련 기능을 대폭 향상시켰기에 메타버스를 대비하는 IT 업계 전반에서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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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2022년 5+6월호) ‘언리얼 엔진5의 파급력 진단’ 참고

유니티의 경우 양대 게임엔진으로, 모바일 게임 제작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유니티는 확장성에 초점을 맞추고 기능을 개선해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게임을 넘어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 제조업 분야에서 제품 디자인이나 설계 등 생산 프로세스 전반에서 활용 가능한 툴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실제로 유니티의 크리에이터 툴 사업 부문인 크리에이트 솔루션(Create Solution) 부분의 매출에서 게임 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분기 33%에서 2022년 2분기 40%로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리얼과 유니티에 대한 접근성을 잃는 것은 게임 산업의 괴멸적 피해를 야기할뿐만 아니라, IT 업계 전반의 피해로 확산될 여지도 상당하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독자적인 게임 엔진 개발로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게임산업 전문지 피씨 게이머(PC Gamer)의 보도에 따르면, 브콘탁테(VK)와 같은 러시아의 주요 IT 기업들이 현재 러시아 디지털 개발부와 정보정책위원회 등 관련 기관과 함께 ‘국가 게임 엔진’을 만들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현 상황에서 국가 게임 엔진이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다면 러시아 게임산업을 비롯해 IT 업계 전반과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자체 게임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새로운 국내 게임 엔진을 개발하는 데에는 정부 차원의 “수년에 걸친 수십억 루블”의 막대한 시간 및 비용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현재 러시아는 전쟁 중이다.

둘째, 러시아가 자체 게임 엔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기존의 언리얼 엔진이나 유니티와 기술 격차가 너무 벌어지게 된다.

셋째, 게임 엔진을 개발을 위해서는 해외 파트너사의 지원도 필요한데, 전쟁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와 교류를 중단했다. 일례로, 러시아가 새로운 엔진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엔비디아(Nvidia)나 AMD와 같은 해외의 주요 그래픽 카드 제조업체들도 이 계획에 참여해야 하는데, 현재는 이들 업체들도 러시아 판매를 중단한 상황이다. 엔진 개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호환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자체 게임엔진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일반적인 정부 주도 사업과 유사한 예산 규모와 진행 기간으로 설정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게임 엔진 개발이 쉽지 않으며,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2.2. e스포츠 학교 건립 계획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 시 정부는 최근 러시아 최초의 국영 e스포츠 학교 개교 계획을 발표했다. 공식 텔레그램 채널에 따르면, “수십 명의 선수”가 이미 등록했고 현재 <도타 2>와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해당 학교는 프로페셔널 e스포츠 선수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스포츠 선수의 조건으로 e스포츠 게임 운영 능력 외에도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강조했는데, 일례로 남성은 3km를 15분 이내에 달리고 윗몸일으키기 33회, 스쿼트 25회를 멈추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야 하고, 여성은 2km를 12분 이내에 달리고 윗몸일으키기 32회, 스쿼트 23회를 멈추지 않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측은 이러한 요구 사항은 지난 1월 발표된 ‘컴퓨터 스포츠 훈련의 연방 기준’에 부합하며, ‘사이버 스포츠’ 훈련은 ‘기술, 전술, 이론 및 심리 훈련’ 외에 ‘일반 및 전문 체력 훈련’과 같은 수준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스포츠 학교는 학생들에게 144Hz의 재충전 속도와 1ms 이하의 응답 시간을 가진 모니터와 정확히 1만 6,000인치당 도트를 가진 유선 마우스를 포함한 첨단 장비 목록을 제공할 예정이다.

e스포츠 학교 개교는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기술 산업 육성 노력의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과 경쟁할 수 있는 ‘국가 게임 엔진’ 개발 계획의 일환이다. 러시아 국가 체육 문화 스포츠 위원회는 “러시아 e스포츠와 게임 산업의 수입 대체”의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3러시아 정부의 기술산업 경쟁력 확보 노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주요 서방 IT 기업들은 러시아 경제 제재 흐름에 동참하여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IT 산업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러시아 정부는 어려운 가운데에도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마이오피스(MyOffice)’와 같은 업무용 SW를 자체 개발했고, 얀덱스 및 액티브 클라우드(Active Cloud)와 같은 현지 클라우드 기업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최대한의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 기존의 서방 IT 기업의 클라우드 대비 서비스 품질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IT 기업들의 협조가 서방 IT 기업들의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는 전망도 한 때 제기되었다. 일례로, 화웨이가 전쟁과 상관없이 일부 SW와 기술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지원에도 ARM, 엔비디아 등 핵심 기술을 보유한 서방 기업들의 철수를 메꾸기도, 돌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러시아의 자체 게임 엔진 개발이나 e스포츠 선수 육성 기관설립 노력은 전쟁 상황 속에서 ‘디지털 주권’을 세우기 위한 고군분투의 일환이다. 그러나 현재의 전쟁 상황처럼 기대에 부흥하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자료

  1. Bloomberg - Russia’s Brain Drain Is Officially Underway, 2022.7.6
  2. Euro Gamer - Russia looking into creating its own national game engine, 2022.7.18
  3. Giz China - RUSSIA LOVES GAMERS, SET TO CREATE GAME ENGINE – UNITY AND UNREAL NOT IN AWE, 2022.7.18.
  4. kotaku - Fearing Unity And Unreal Abandonment, Russia May Build Its Own Game Engine, 2022.7.15.
  5. the gamer - Russia Founds An Esports School For “Fighters Of The Virtual Stadium”, 2022.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