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구조적 딜레마: 콘텐츠 속도와 품질 사이의 균형

콘솔과 PC를 아우르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은 일정한 주기로 새로운 콘텐츠를 투입하면서 이용자들의 참여를 유지하고 수익을 확보한다. 그러나 콘텐츠 추가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술 부채와 버그가 쌓여 품질이 떨어질 수 있고, 로드맵을 앞세운 무리한 일정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커뮤니티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한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일정이 너무 빠르면 소비자들이 질려 떠나는 번아웃(burnout)이 나타날 수 있고, 너무 늦으면 플레이어가 흥미를 잃고 이탈한다. 또한 선전이 지나치고 과장된 로드맵을 발표하면 달성하지 못할 때 신뢰 하락을 초래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2024년 2월 발매된 <헬다이버즈 2(Helldivers 2)>는 특이한 행보를 보이며 업계에 화제를 던졌다. 개발사 애로우헤드 게임 스튜디오(Arrowhead Game Studios)가 제작한 이 게임은 최대 4인 협동 슈팅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은하계 전체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엘리트 병사 ‘헬다이버’가 되어 적을 소탕한다. 출시 후 짧은 기간 내 베스트셀러로 성장하면서 스팀에서 동시 접속자 수 45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5년 초부터는 콘텐츠 추가가 거듭되며 크래시, 프레임 저하, 용량 증가 등 품질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림> 애로우헤드 게임 스튜디오의 <헬다이버즈 2> 타이틀 이미지

출처: 스팀 페이지

2025년 10월 패치 4.1.0: 200개 이상 버그 수정과 품질 우선 전략 선언

2025년 5월 출시된 ‘민주주의의 심장(Heart of Democracy)’ 업데이트는 초고층 건물과 도로가 있는 도시 환경, 새로운 무기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 S.E.A.F. 병력을 도입했다. 그러나 방대한 콘텐츠와 데이터를 추가하면서 PC판 설치 용량이 140GB를 넘어섰고, 기기 성능에 따라 프레임 드롭과 크래시 문제가 심각해졌다. 플레이어들은 “건축물을 철거하는 듯한 흉악한 프레임 저하”라고 불평했으며, 일부는 게임을 더 이상 실행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애로우헤드는 모든 대형 업데이트를 연기하고 품질 개선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 10월에 배포된 패치 4.1.0은 200개 이상의 버그를 수정하고 안정성·밸런스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개발팀은 “플레이어가 겪는 고통 포인트를 타깃으로 삼아 패치 방식을 전면 재설계했다”면서 안정성과 밸런스를 우선순위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CEO 샴스 요르야니(Shams Jorjani)는 야후 테크와의 인터뷰에서 “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동안 기술 부채가 쌓여 게임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며 “의미 있는 성능 개선을 이루려면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게임 디렉터 미카엘 에릭손(Mikael Eriksson) 역시 11월 Q&A 세션에서 “게임이 터지기 시작했다”며 솔직하게 문제를 인정했다.

<표> <헬다이버즈 2> 품질 위기 타임라인

출처: mp1st.com, GameRant, Neowin

PC판 용량 154GB에서 23GB로 감축, 데이터 기반 최적화의 성공 사례

<헬다이버즈 2>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문제는 PC판 설치 용량이었다. 2025년 9월 업데이트 이후 PC판 용량이 150GB 이상으로 증가했는데, 이는 HDD 지원을 위한 데이터 중복(deduplication)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콘솔 버전은 35GB 내외인데 반해 PC판은 최대 세 배 이상 컸다. 애로우헤드는 HDD 사용자를 위해 파일을 여러 곳에 복제해 로딩 시간을 줄이는 방식을 적용했으나, SSD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게이머에게는 불필요한 구조였다. CEO 요르야니는 “용량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를 높였다”고 밝혔고, 게임 커뮤니티는 불만을 쏟아냈다.

개발팀은 닉시스 소프트웨어(Nixxes Software)와 협력해 데이터 중복을 제거하는 새로운 빌드를 테스트했다. 2025년 12월 개발자 블로그에 따르면 PC판 용량을 154GB에서 23GB로 줄이는 데 성공했으며, 기존 빌드에서 데이터 중복을 제거해도 HDD 사용자의 로딩 시간이 불과 몇 초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테스트는 ‘prod_slim’ 베타 채널을 통해 진행되었으며, PC 플레이어 중 약 11%가 HDD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즉, 대다수 플레이어(89%)를 위한 최적화를 위해 데이터 중복을 제거하고, HDD 사용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절충한 것이다.

“로드맵은 실망의 데드라인” – 유연한 운영과 서프라이즈식 콘텐츠 추가

대부분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콘텐츠 개발 계획을 공개하는 로드맵을 제시해 플레이어에게 기대감을 높이고 투자자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헬다이버즈 2>는 공식 로드맵을 제공하지 않는다. 2025년 3월 GameRant가 소개한 CEO 요르야니의 디스코드 발언에 따르면, 요르야니는 “우리는 주도권과 계획성 부족을 겪고 있으며 게임은 변화하는 상태에 있다”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지 않다. 따라서 로드맵을 기대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로드맵을 공개하면 일정에 쫓겨 품질이 희생될 수 있다고 보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개발 방식을 선택했다.

요르야니는 “로드맵은 실망의 데드라인(deadline for disappointment)”이라고 표현하며, 예정된 콘텐츠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때 커뮤니티 신뢰가 무너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대신 애로우헤드는 우선순위를 수시로 변경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긴급한 성능 문제나 버그가 발견되면 즉시 전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전략은 특히 ‘140GB 용량 문제’처럼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또한 <헬다이버즈 2>는 로드맵을 없앤 대신 서프라이즈식 업데이트를 지속하고 있다. 2025년 9월에는 4.1.0 패치 ‘부정의 영역 속으로’를 업데이트하였으며, 11월에는 알찬 구성의 전쟁 채권(배틀 패스) ‘금사 특공대’ 추가를 알려 커뮤니티를 놀라게 했다.

<그림> 전쟁 채권(Warbond) ‘금사 특공대‘ 구성

출처: 스팀 페이지

만료 없는 배틀 패스 ‘전쟁 채권’과 타 라이브 서비스 게임 비교

<헬다이버즈 2>는 대부분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과 달리 기간 제한이 없는 배틀 패스 시스템을 채택했다. <헬다이버즈 2>는 10,800원에서 16,000원 사이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전쟁 채권(Warbond)’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전쟁 채권에는 치장 아이템뿐 아니라 무기와 게임플레이 아이템도 포함되며, 플레이어는 여러 전쟁 채권을 동시에 진행하고 언제든 포인트를 분배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전쟁 채권이 만료되지 않으며 한 번 구매하면 영구적으로 유지되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과금 압박을 줄이고 장기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다.

한편, <데스티니 2(Destiny 2)>는 매 시즌(3개월 주기) 신규 무기, 레이드, PvP·PvE 활동을 추가하는 로드맵을 공개한다. 그러나 시즌 간격에 맞춰 큰 확장팩을 출시하는 패키지 전략은 2020년 이후 점차 한계점을 보이기도 했다. 2023년 3월 출시한 ‘빛의 추락’ 확장팩은 스토리와 레벨 디자인이 미완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23년 말 출시 예정이던 대형 확장팩 ‘최후의 형체’는 2024년 6월로 출시를 연기하였으나, 메타크리틱 MUST-PLAY를 받아내며 커뮤니티 여론 반전에 성공하기도 했다. <워프레임(Warframe)> 역시 초기에는 로드맵을 통해 새 프레임과 퀘스트를 예고했으나, 많은 요소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결국 로드맵을 축소하고 데브스트림(Devstream)이라는 라이브 방송으로 개발 현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 이상 운영되는 장기 시즌제 무료 배틀 패스 ‘나이트웨이브’를 추가해 콘텐츠 업데이트 속도와 품질 관리의 균형을 맞추기도 했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과 품질 우선 문화 구축 필요성

<헬다이버즈 2>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로드맵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소통으로 플레이어의 신뢰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CEO와 개발자가 디스코드·레딧 등에서 직접 질문에 답하며 문제 해결 과정을 설명했고, 패치 노트에서 구체적인 버그 수와 변경 내역을 공개했다. 이는 한국 게임 개발사들에게 커뮤니티 매니지먼트 강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업데이트를 연기하거나 우선순위를 변경할 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이 장기적인 충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아울러 <헬다이버즈 2>는 속도보다 품질을 선택했다. 개발팀은 신속한 콘텐츠 투입으로 얻는 단기 매출보다 버그 수정과 안정성 확보를 우선시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한국 게임 시장은 빠른 성장과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종종 과도한 일정 압박을 겪는다. 그러나 버그가 많은 출시나 무리한 업데이트는 결국 브랜드 신뢰를 해치고 장기 수익을 잠식한다. 내부적으로 QA 기간을 확장하고 기술 부채를 상시 관리하는 문화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연한 로드맵 운영과 데이터 기반 최적화 전략 도입

<헬다이버즈 2>는 유연한 우선순위 조정과 깜짝 콘텐츠로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유지했다. 한국 게임 개발사도 로드맵을 공개하되, 이를 모듈화하거나 큰 골격만 제시하고 세부 사항은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전략을 도입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주요 업데이트와 함께 예상치 못한 이벤트나 깜짝 콘텐츠를 가미하면 재미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전쟁 채권처럼 만료되지 않는 전투 패스를 도입하면 플레이어가 시간과 돈을 소비할 때 부담을 덜고 장기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애로우헤드는 PC판의 154GB 용량 문제를 해결할 때 11%의 HDD 사용률과 로딩 시간을 분석하여 데이터 중복 제거를 결정했다. 한국 게임 개발사들도 플레이어의 시스템 구성, 성능 메트릭, 버그 리포트를 적극적으로 수집해 정량적 근거에 기반한 최적화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기술 부채를 줄이기 위해 코드 리팩터링과 테스트 자동화에 투자하고, 신기술 도입 시 장단기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커뮤니티를 개발 파트너로 바라보고, 피드백 프로그램과 체험 서버 등을 통해 플레이어를 개발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