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전문가 인터뷰] 소규모 게임 스튜디오의 전략과 경쟁력
글로벌 이슈 포커스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컴팩트 스튜디오 전략, 새로운 제작 생태계의 부상

스티븐 스태니언(Stephen Stanyon)은 영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개발 스튜디오 닌자 시어리(Ninja Theory)에서 게임 디렉터로 재직 중이며, <프로젝트: 마라>, <데빌 메이 크라이> 등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리드 기획자이자 디렉터로 활동해 왔다. 스타포드셔 대학교(University of Staffordshire)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내러티브 중심의 게임 기획과 소규모 팀 내 협업 구조 최적화에 특히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스태니언과 함께, 소규모 개발 스튜디오가 어떻게 창의성과 기술, 조직 구조를 바탕으로 고품질 게임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소규모 스튜디오는 보통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가진다. 물론 한 팀에서도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디자이너 등 각 분야별로 나뉘며, 해당 분야를 관리하는 팀장이나 디렉터가 있다. 하지만 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들 리더들도 직접 개발 업무에 적극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프로젝트에는 한 명 이상의 디렉터가 있거나, 소규모의 디렉터 그룹이 핵심 방향성과 중요한 결정을 함께 설정한다.
이러한 구조의 가장 큰 장점은 결정 속도와 실행력이 빠르다는 점이다. 리더십 구조가 간결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그것을 팀 전체에 전달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도 효율적이다. 커뮤니케이션 계층이 얕기 때문에 게임의 비전이나 핵심 방향이 일선 개발자에게도 명확하게 전달된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해석이나 정보 왜곡 없이 팀이 일관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소규모 팀일수록 경험 많은 개발자들이 중심이 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곧 높은 역량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품 완성도 면에서도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 전반에 걸친 명확한 비전과 방향성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팀 전체가 공감하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뚜렷하다면, 대부분의 크리에이티브 결정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정이 아니라, 게임 자체의 필요성과 일치 여부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이게 진짜 이 게임에 도움이 되는가?”, “이 아이디어가 우리가 세운 비전과 잘 어우러지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물론 비전을 수립하고 구성원에게 이를 이해시키는 것은 디렉터나 각 분야 리드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일단 방향성이 명확히 정해지면, 개발 과정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크리에이티브와 관련된 질문들은 게임의 핵심 구조(pillars)가 그 해답을 제공하게 된다.
결국 디렉터의 역할은 팀 전체가 그 비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방향을 조율하고, 완성물이 궁극적으로 설정된 비전과 일치하도록 관리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팀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는가?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제한된 인원과 자원으로 AAA급 퀄리티를 확보하려면 결국 팀 자체에 충분한 경험과 기술,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어떤 도구나 프로세스로는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높은 품질은 결국 사람의 역량에서 나온다.
프로젝트에는 단계별 계획이 담긴 로드맵이 반드시 필요하다. 언제 어떤 작업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일정을 세우고, 마일스톤(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 알파, 베타, 출시 등)을 통해 진행 상황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정이 늦어질 조짐을 미리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다. 일상적인 개발 프로세스는 팀 각각의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된다. 작은 팀은 인원이 적기 때문에 복잡한 프로덕션 시스템 없이도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오히려 불필요한 관리 비용이 줄어들고, 각 팀의 리드가 프로듀서 역할의 일부까지 겸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머들은 Trello나 Kanban 보드를 활용하고, 아티스트는 JIRA를 통해 작업 진척을 관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팀 전체가 현재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프로젝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적용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있었다면?
개발 리소스는 언제나 게임의 핵심 기획, 즉 ‘기둥(pillars)’에 해당하는 요소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이러한 기획이 실제로 게임에서 잘 작동하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보통 인게임 데모나 버티컬 슬라이스(Vertical Slice)를 제작한다. 이 과정은 게임의 핵심 루프와 시스템이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검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확신이 서야 본격적인 제작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후에는 콘텐츠 제작과 납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퀄리티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어떤 요소에 자원을 집중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작업을 할 때마다 “이게 게임의 완성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이게 실제 판매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같은 현실적인 질문을 자주 던져보는 것이 개발 리소스를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발 막바지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예산도 제한된 상황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이런 시점에는 디렉터들과 협의하되, 의사결정은 가급적 ‘프로덕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창의성보다 실현 가능성과 적용 우선순위를 중심에 둔 판단이 필요하다. 한편, 외주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트 자산이나 일부 콘텐츠 제작을 외부에 맡길 수 있으며, 이로써 내부 인력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외주에도 방향성 공유와 프로덕션 관리라는 추가 업무가 발생하므로, 그에 맞는 체계를 갖춰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대형 스튜디오는 프로젝트 규모가 크고 예산도 많기 때문에 그만큼 결과에 대한 부담과 성공 압력이 높은 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혁신적인 시도 자체가 ‘위험 요소’로 간주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안전한 방향을 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소규모 팀은 상대적으로 예산과 리스크 부담이 적다. 대중성과 흥행성에 덜 얽매이기 때문에 더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의사결정 단계를 거치는 대신, 소수 핵심 인력의 발빠른 합의만으로도 프로젝트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게임인가?”, “우리가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우선시된다. 시장 조사나 수익성 분석보다는 개발자의 직관과 열정이 더 큰 기준이 되는 구조다.
또한, 소규모 팀은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내부에서 테스팅하며 방향성을 점검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평가하며 개선해 나가는 피드백 사이클이 짧다. 이러한 민첩성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실제 게임으로 구현하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전 세계 유저들에게 어떤 식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는가?
현재 게임 시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띄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게임 세계관이나 새로운 메커니즘이 필수적이다. 물론, 기존 성공 사례를 따르면서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지만, 시장과 미디어가 반응하는 건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유저뿐만 아니라 평론가 역시 참신함에 끌릴 수밖에 없다.
좋은 사례로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Clair Obscur: Expedition 33)>를 들 수 있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턴제 RPG라는 익숙한 장르를 기반으로 하지만, 여기에 액션 게임 요소인 회피(Dodge)와 패링(Parry)를 접목시켜 새로운 손맛과 전략을 부여했다. 또, 세계관 측면에서도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가 아닌, 바로크적 감성이 녹아 있는 프랑스를 재해석하여 독특하고 강렬한 비주얼과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만약 이 게임이 흔한 판타지 스타일을 선택하고 평범한 턴제 시스템만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만큼 많은 주목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유저에게 익숙한 틀을 주되, 그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핵심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이미 잘 만들어진 것을 굳이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도 마찬가지다. 자체 엔진이나 도구를 굳이 새로 만들기보다는,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상용 툴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런 도구들은 대규모 전문팀이 오랜 기간 투자해 만든 결과물이며, 완성도도 높다.
예를 들어 언리얼 엔진이나 유니티는 훌륭한 선택지다. 특히 언리얼 엔진은 최신 렌더링 기술과 강력한 콘텐츠 제작 도구를 갖추고 있어, 적은 인원으로도 높은 수준의 시각적 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상용 툴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해당 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을 가진 개발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발 팀 내에서 툴을 직접 만드는 대신, 그 시간과 자원을 콘텐츠의 완성도와 최적화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이미 존재하는 훌륭한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또한, 최적화는 개발 말미에 몰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병행되어야 한다. 성능 벤치마킹 도구를 활용해 프레임 레이트, 메모리 사용량 등을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작은 단위에서 자주 최적화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적화를 개발의 마지막에 미루게 되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작업들이 누적돼 있고, 시간도 부족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
가장 큰 기술적인 도전은 게임에 AI 기능과 클라우드 연산 요소를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문제는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술 트렌드 역시 빠르게 변화해 이 분야의 기준과 기대 수준이 금방 달라졌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미 구현해놓은 기능이 금세 구식이 되거나, 처음 기획했을 당시 기대한 품질을 더 이상 시장에서 통용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발생했다.
이 경험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점이 있다. 아무리 최신 기술이 매력적으로 보여도, 기술 자체가 개발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우선되어야 할 것은 ‘게임 디자인’이며, 기술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접근 방식은 “이 기술을 쓰면 어떤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어떤 기술이 그 구현을 도와줄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특정 기술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다른 더 나은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게임의 핵심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 팀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이 해보지 않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장르에 도전하는 건 큰 리스크를 안게 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싱글 플레이 중심의 스토리텔링 게임 제작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e스포츠 기반 멀티 게임이나 F2P 모바일 게임과 같은 분야에 발을 들일 필요는 없다.
퍼블리셔와의 관계에서도 핵심은 ‘신뢰’다. 퍼블리셔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도록, 팀이 최대한 자율성과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그만큼 우리도 프로젝트 현황에 대해 솔직하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한다. 어려움이 생기면 숨기지 않고 공유하고, 마일스톤을 성실하게 이행하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퍼블리셔나 외부 홍보 대행사 등에 모든 것을 일임하지 않았다. 어떤 게임인지, 왜 이 게임이 특별한지, 누구보다 우리 팀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 수립과 실행에 적극 참여하고, 주요 홍보 자료와 콘텐츠는 반드시 사전에 검토하고 승인한 후에만 사용되도록 했다. 우리가 보기에도 설득력 있는 마케팅이어야, 소비자에게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믿는다.
커뮤니티 전략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함께 개발 여정을 나눈다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제작 일지나 SNS 채널을 통해 개발 과정을 공유하고, 팬들과의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대감을 조성했다. 이는 게임에 대한 기대치를 관리함과 동시에 자발적인 입소문 효과를 유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첫째, 프로젝트의 스코프를 과하게 잡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GTA>나 <콜 오브 듀티> 같은 대작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게임은 수백 명이 수년간 개발하고 수천억 원의 자금이 투자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우리 팀의 규모와 자원에 맞춰 현실적이고 집중된 게임 경험부터 만들어야 한다. 특별한 게임 메커니즘 한두 개, 기억에 남을 만한 세계관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둘째, 시장 트렌드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 팀이 진심으로 만들고 싶고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 외부의 수요나 유행보다는 팀 내부의 열정과 전문성이 훨씬 더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또한, 최신 기술이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도입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게임 디자인에 명확하게 도움이 되는 기술만을 선택해야 한다. 기술은 결국 수단일 뿐, 본질은 아니다.
셋째, 한국적인 감성과 문화를 자신 있게 보여줘야 한다. 한국의 문화나 세계관, 정서 등을 자연스럽게 녹여 낸 게임은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더 돋보일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진짜 우리다운 것을 만들 때, 그 진정성이 해외 유저에게도 ‘신선함’으로 전달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