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배경]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 경쟁, 콘솔 시장 패러다임 바뀔까
글로벌 이슈 포커스
집필: EC21R&C 김형석 책임연구원
1980년 게임&워치부터 2025년 콘솔 기기 경쟁까지, 휴대용 게임기의 진화
휴대용 게임기의 역사는 1980년 닌텐도의 게임&워치로 시작되었다. 요코이 군페이(Gunpei Yokoi)가 계산기를 두들기며 놀고 있는 사람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제작한 이 기기는 평소에는 시계로 사용하고, 심심하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개념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989년 같은 요코이 군페이가 개발한 게임보이는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했다. 흑백 화면과 단순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휴대성과 긴 배터리 수명, 그리고 테트리스와 같은 킬러 콘텐츠로 무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1억 1,800만 대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독점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4년은 휴대용 게임기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 중 하나였다. 닌텐도 DS와 소니 PSP가 동시에 출시되며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황금기가 열렸다. DS는 듀얼 스크린과 터치 조작이라는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로 1억 5,402만 대를 판매하며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고, PSP도 8,252만 대를 판매하며 비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 중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두 기기 합쳐 2억 대가 넘는 판매량은 휴대용 게임기 시장이 거치형 게임기에 뒤지지 않는 대형 시장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대중화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은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했다. 3DS는 7,594만 대, PS Vita는 1,500만 대에 그치며 전 세대 대비 판매량이 급감했고, 소니는 결국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2025년, 휴대용 게임기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곡점
2017년 스위치의 성공으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이 부활한 이후, 2025년은 40년 휴대용 게임기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년 전 무산된 ‘Xboy’ 프로젝트 이후 처음으로 Xbox Ally를 통해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밀면서, 닌텐도의 독점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경쟁은 단순한 하드웨어 스펙 경쟁을 넘어, 폐쇄형 vs 개방형, 독점 IP vs 방대한 라이브러리, 전통적 게임기 vs PC 융합이라는 플랫폼 전략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스위치 2가 출시 4일 만에 350만 대를 돌파하며 닌텐도의 저력을 보여준 가운데, Xbox Ally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따라 향후 10년간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판도가 결정될 전망이다.
<표> 휴대용 게임기 발전 현황
글로벌 휴대용 게임기 경쟁이 한국 게임산업에 미칠 영향은?
닌텐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 휴대용 게임기 경쟁은 단순한 해외 시장 동향을 넘어,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 전략 수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이슈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은 모바일 게임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콘솔 게임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24년 국내 콘솔 이용자가 전체 게이머의 26.7%에 달하는 등 저변이 확대되고 있으며, 정부와 업계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한 콘솔 게임 개발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25년 주요 개발사들이 글로벌 공략을 위해 콘솔 및 PC 플랫폼 강화를 핵심 전략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새로운 휴대용 플랫폼들의 등장은 국내 게임업계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이 보유한 독특한 경쟁 우위가 이번 변화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PC온라인게임 강국으로서, 메이플스토리, 로스트아크, 리니지 등 글로벌 히트작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Xbox Ally와 같은 Windows 기반 휴대용 기기의 등장으로, 이러한 PC 게임들이 별도의 포팅 작업 없이 자연스럽게 ‘모바일화’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는 기존 IP의 수명 연장과 사용자층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5G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은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 활용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어, Xbox 클라우드 게이밍 같은 서비스의 실질적 수혜를 받을 수 있다.
모바일 중심 구조 탈피와 플랫폼 다변화 전략의 필요성
현재 국내 게임 시장의 가장 큰 과제는 모바일 게임 편중 현상이다. 2023년 기준 국내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 비중은 약 4.9%에 불과해, 글로벌 시장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구조적 편중은 시장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고, 글로벌 진출 시 플랫폼 경험 부족이라는 한계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들의 등장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다. 특히 크래프톤, NC소프트 등 대형 개발사들이 자사 IP의 콘솔 확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인디 게임 개발자들도 국내 인디게임 <라핀(LAPIN)>처럼 스팀에서 검증된 작품을 스위치로 이식하여 성공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단순히 국내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재편은 한국 게임업계에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도전 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25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적, 시장적 변화의 배경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이번 경쟁이 가져올 파급효과와 한국 게임산업이 취해야 할 전략적 방향을 명확히 도출할 수 있다. 닌텐도와 마이크로소프트 간 경쟁의 근본적 동인과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2025년 차세대 콘솔 경쟁 본격화의 시대적 배경
2025년이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변곡점이 된 데는 몇 가지 중요한 기술적, 시장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모바일 프로세서 성능의 비약적 향상으로 휴대용 기기에서도 고사양 PC 게임 구동이 가능해졌다. AMD의 Ryzen Z 시리즈 APU와 같은 저전력 고성능 칩셋의 등장으로, 기존 휴대용 게임기의 성능 한계가 크게 완화된 것이다. 둘째, 클라우드 게이밍 인프라의 성숙과 5G 네트워크 보급으로 기기 성능에 의존하지않는 고품질 게임 경험이 가능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클라우드 게이밍(xCloud) 서비스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국처럼 통신 인프라가 우수한 국가에서는 실용적인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셋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게임 시장의 구조적 변화도 중요한 배경이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활동 증가로 PC와 콘솔 게임 시장이 크게 성장했고, 특히 휴대용으로 PC 게임을 즐기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밸브의 스팀 덱이 2022년 출시되며 큰 화제를 모은 것도 이러한 시장 변화를 반영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같은 트렌드를 포착하여 Windows 11을 휴대용 기기에 최적화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그 결과물이 바로 Xbox Ally 시리즈다. 넷째, 게임 생태계의 통합화 트렌드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처럼 플랫폼별로 독립된 게임을 개발하는 시대에서, 하나의 게임을 여러 플랫폼에서 즐길 수 있는 크로스플레이 환경이 표준이 되고 있다.
금번 호 글로벌 이슈 포커스에서는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 경쟁을 살펴보고 이러한 플랫폼 변화가 가져올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특히 한국 게임산업의 현실에 적용 가능한 인사이트를 도출하여,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게임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