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Industry Trend

[개발스토리] <데스 스트랜딩 2> 게임 설계,
비효율이 만드는 몰입의 새로운 패러다임

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집필: EC21R&C 김형석 책임연구원

Executive Summary

효율성 중심 게임 디자인에 대한 도전

빠른 이동과 무한 인벤토리 등 편의성 우선 설계가 게임 몰입감 저해

즉각적 재미 추구로 인한 게임 경험의 평면화와 감정적 울림 부족

코지마식 의도적 불편함을 통한 플레이어 행동 의미 부여 시도

물리 엔진 기반 사실적 짐 운반과 지형 상호작용으로 긴장감 창출

소셜 스트랜드 시스템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멀티플레이 경험

직접 만나지 않고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비동기적 협력 모델 구현

실질적 보상 없는 좋아요 시스템으로 순수한 호의 기반 협력 문화 창조

공동 구조물 건설과 자원 공유를 통한 집단 협력 경험 제공

고립감과 연결감의 절묘한 균형으로 새로운 감정적 몰입 창출

한국 게임산업 창의성 강화를 위한 시사점

스트리밍 시대 역설적 느린 게임 트렌드 부상과 깊이 있는 경험 갈증

<데이브 더 다이버> BAFTA 수상 등 국내 창의적 게임 개발 가능성 입증

획일화된 양산형 디자인 탈피와 실험적 프로젝트 지원 강화 필요

R&D 지원 확대와 창의적 도전을 뒷받침하는 업계 문화 조성 요구

1. 효율성 신화에 도전하는 새로운 게임 디자인 철학의 등장

편의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존 게임 설계 관행의 한계

현대 게임 산업은 오랫동안 편의성과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왔다. 대다수 게임은 플레이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빠른 이동이 가능한 패스트 트래블 시스템을 도입하고, 무한 인벤토리를 제공하여 아이템 관리에 대한 부담을 없앴다. 또한 자동 회복, 자동 저장, 간소화된 조작 등을 통해 플레이어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설계 철학은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게임 경험의 깊이와 의미를 희석시키는 부작용도 낳았다.

즉각적 재미를 추구하는 설계 관행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게임 내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신중하게 계획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고, 모든 선택이 쉽게 되돌릴 수 있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세계에 진정으로 몰입하기보다는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수동적 자세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게임들이 비슷한 패턴의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게 되었고, 게임 고유의 감정적 울림이나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평면적 경험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기존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신적 접근을 시도했다.

<표> 기존 게임 vs <데스 스트랜딩> 설계 비교
출처: Game Developer, Polygon 내용 종합

의도적 불편함을 통한 몰입감 극대화 전략

<데스 스트랜딩>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혁신은 극도로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심화시킨 점이다. 게임 내 모든 화물에는 무게 중심과 적재 높이에 따른 물리적 제약이 적용되어 있어, 무거운 짐을 한쪽에 치우치게 싣거나 높게 쌓으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쉽다. 추락하면 화물이 손상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돌투성이 지형이나 급류 등을 피할 경로를 면밀히 계획해야 하며, 이동 중에도 짐의 무게 배분을 지속적으로 신경써야 한다. 이러한 사실적인 물리 엔진과 지형 상호작용 설계는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긴장감과 성취감을 선사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디디며 험난한 자연환경을 극복해야 하기에,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코지마 감독은 이러한 설계 철학에 대해 “<데스 스트랜딩>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슈퍼히어로적 쾌감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묵묵히 짐을 나르는 경험을 그린 게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북미 테스트 플레이어 중 소방관 출신 한 명은 “게임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조심스럽게 옮겨야 했고, 마치 다시 일하는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여느 게임 주인공처럼 마음껏 뛰거나 날아다닐 수 없고, 작은 돌에도 발이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이 작품은 “초반에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걷는 행위 자체가 왜 이렇게 기분 좋은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 코지마 감독의 설명이다. 이러한 설계는 긴 여정과 시간 소모의 미학을 드러내며, 플레이어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동시에 천천히 쌓아올린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치를 마련했다.

<표> <데스 스트랜딩 2>의 물리 시스템 주요 특징
출처: Game Developer, Famitsu 내용 종합

2. 혁신적 시스템 구현과 업계에 미친 영향

비동기적 협력을 통한 새로운 멀티플레이 모델 구현

<데스 스트랜딩> 시리즈의 새로운 요소는 전례 없는 멀티플레이 경험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코지마 프로덕션은 이 게임의 비동기적 온라인 요소를 ‘소셜 스트랜드 시스템(Social Strand System)’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플레이어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독특한 협력 모델이다. 일반적인 멀티플레이 게임처럼 같은 세상에서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일이 없기에, 게임 내에서 주인공 샘은 언제나 혼자다. 다른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직접 볼 수도, 함께 전투를 벌일 수도 없다. 이러한 고립감은 게임의 세계관인 멸망 후 단절된 사회와 맞물려 깊은 외로움과 긴장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데스 스트랜딩>을 계속 플레이하다 보면 혼자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다는 독특한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소셜 스트랜드 시스템 덕분이다. 이 시스템 하에서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남긴 ‘흔적(mark)’들이 서로의 게임에 얽혀들기 때문이다. 누군가 험난한 계곡에 놓고 간 사다리가 내 세계에 나타나 있고, 내가 포기하고 버린 짐 상자를 다른 누군가가 주워 배송을 완료해주기도 한다. 여러 플레이어가 많이 지나간 길에는 발자국이 축적되어 길이 다져지면서 차츰 이동이 수월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다른 플레이어가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본 흔적까지 남는 등 사소한 디테일도 공유된다. 세계 곳곳에는 표지판이나 메모가 남겨져 있어, 얼굴 한 번 마주치지 못한 동료로부터 길 안내나 경고를 받기도 한다. 황량한 황무지를 건너던 중 누군가 미리 지어둔 다리를 우연히 발견한다면, 플레이어는 진심 어린 안도감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데, 이는 다른 어떤 게임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데스 스트랜딩>만의 특별한 경험이다.

<표> 소셜 스트랜드 시스템의 주요 요소와 기능
출처: Game Developer, Polygon 내용 종합

실질적 보상 없는 ‘좋아요’ 시스템을 통한 선의의 피드백 루프

가장 강력한 협력 요소는 공동 구조물 건설이다. 플레이어들은 자원을 투자해 다리, 도로, 통신 타워 등의 구조물을 세울 수 있고, 이 건설 진행상황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다른 플레이어들의 세계에도 반영된다. 예를 들어 내가 절벽 위에 설치한 밧줄 타워는 다른 플레이어의 화면에도 나타나 그들이 활용할 수 있고, 여러 명이 조금씩 자원을 보태 거대한 고속도로를 완성하면 모두가 편익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게임 세계는 불특정 다수의 노력으로 변화하며, 플레이어들은 비록 직접 만나지 않아도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간접적 협력을 장려하는 핵심 장치가 바로 게임 내 '좋아요' 시스템이다. <데스 스트랜딩>에서는 SNS의 '좋아요'처럼, 다른 플레이어의 구조물을 사용하거나 도움이 되었을 때 서로 좋아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좋아요에 아무런 실질적 보상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좋아요를 많이 받는다고 해서 게임 머니가 생기거나 능력치가 오르지 않고, 그저 숫자가 쌓이고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처음에 개발팀 내부에서도 “플레이어에게 득될 게 없는데 누가 굳이 남의 구조물에 좋아요를 누르겠는가”라는 반대 의견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지마 감독은 “좋아요는 그냥 공짜 사랑일 뿐”이라며 이 시스템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데스 스트랜딩> 세계에서는 순수한 호의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었다. 좋아요를 받으면 샘의 피로가 약간 회복되거나, 좋아요를 많이 받은 구조물이 더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등 소소한 효과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좋아요 자체로 얻는 이득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은 누군가 내 구조물을 쓰고 좋아요를 눌러줬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다음에는 더 도움이 될 만한 곳에 구조물을 지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림> 다른 플레이어가 건설한 구조물을 이용하는 모습
출처: IGN

스트리밍 시대 역설적 ‘느린 게임’ 트렌드의 부상

<데스 스트랜딩>이 제시한 파격적 디자인 철학은 현대 게임 산업과 개발자들에게 여러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선, 빠른 전개와 즉각적 재미를 중시하는 스트리밍·숏폼 콘텐츠 시대에 역설적으로 ‘느린 게임(slow gaming)’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게임 이용자들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끼는 한편, 느릿하지만 깊이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에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있다. <데스 스트랜딩>의 성공은 이러한 흐름을 잘 대변한다. 총격전이나 속도감으로 승부하지 않고 고요한 자연 속에서의 걸음걸이와 사색을 내세운 이 작품이 전 세계 수백만 게이머의 공감을 얻은 것은, 플레이어들이 때로는 전투 대신 휴식과 성찰을 원한다는 증거다. 실제로 <데스 스트랜딩>은 AAA급 대작 중 드물게 워킹 시뮬레이터의 철학을 도입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 평론에서는 “<데스 스트랜딩>은 첫 번째 대형 예산의 워킹 시뮬레이터로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황야를 거닐며 경치를 감상하는 새로운 플레이 경험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즉,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게임이라도 충분히 느림의 미학을 추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차별화가 오히려 차세대 게임들의 방향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급박한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게임이 편안한 위로와 치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은, 개발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트렌드다. 둘째, <데스 스트랜딩>의 사례는 게임플레이와 내러티브의 유기적 결합이 가져오는 몰입도 극대화를 보여준다. 코지마 감독은 연결이라는 이야기 주제를 게임 시스템 자체에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플레이어가 느끼는 외로움과 연결, 고생 끝에 얻는 성취감 등의 감정 곡선이 그대로 주인공 샘의 서사와 싱크로되었고, 이는 단순히 컷신으로 전달되는 스토리보다 훨씬 강력한 감정 이입을 발생시킨다.

3. 한국 게임산업에 주는 교훈

창의적 설계 철학 도입을 통한 한국 게임의 차별화 필요성

<데스 스트랜딩>이 남긴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는 위험을 감수한 창의적 설계의 힘이다. 한국 게임 업계에서도 종종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듯, 획일화된 양산형 디자인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개발 역량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데스 스트랜딩>의 사례에서 보듯, 대담한 발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요한 구현 노력이 있다면 세계 시장에서 통할 혁신적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이미 그 가능성을 증명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22년 넥슨 산하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데이브 더 다이버>는 바다 탐험과 경영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크게 성공하여, 한국 게임 최초로 BAFTA 게임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개발을 이끈 황재호 디렉터는 “돌발적인 영감이나 천재성보다 지속적인 실험과 개선이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밝히며, 반복적인 시도와 피드백 수용을 통해 완성도를 끌어올린 과정을 강조했다.

이는 <데스 스트랜딩>의 개발 과정과 맥을 같이한다. 코지마 감독 역시 새로운 장르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사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초기에는 낯설게 여겨졌던 디자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인정받으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혁신은 때로 비효율과 불편함에서 출발할 수 있으며, 단기적인 흥행 공식에 맞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새로운 시장과 팬덤을 창출할 수 있다. <데스 스트랜딩>이 보여준 비효율이 만들어낸 몰입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게임 개발 패러다임에 효율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창의성임을 일깨워준다.

정책적 지원과 업계 문화 개선을 통한 창의성 기반 생태계 조성

정책적으로는 창의적인 게임 기획이 실험될 수 있도록 R&D 지원과 인디 개발 지원 강화, 실험적 프로젝트에 대한 펀딩 및 세제 혜택 등을 강화할 수 있다. <데스 스트랜딩>과 같은 작품이 등장하려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투자와 보호가 필요하다. 특히 소규모 개발팀이나 인디 개발자들이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다. 또한 업계 차원에서도 개발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유저들의 다양한 취향을 포용하는 플랫폼과 유통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 게임산업이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독창적 설계 철학을 적극 수용하고 창의성의 지평을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불편함 속에 숨은 재미를 발굴해낸 코지마식 디자인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게임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편리하고 자극적인 즐거움에 길들여진 지금 시대에, <데스 스트랜딩 2>가 제시하는 느리고 깊은 재미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게임을 넘어, 게임 디자인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제언이라 할 만하다. 개발자들의 창의적 실험을 뒷받침하는 환경 조성과 함께, 플레이어들도 다양한 게임 경험에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한국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할 혁신적 게임들이 계속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Game Developer, “A Design Discussion on Death Stranding”, 2021년 1월 26일, https://www.gamedeveloper.com/design/a-design-discussion-on-death-stranding
  • Famitsu, “Long-Distance Empathy: An Interview with Hideo Kojima About DEATH STRANDING”, 2019년 11월 2일, https://www.famitsu.com/news/201911/02185866.html
  • Polygon, “Death Stranding 2 is best played slowly”, 2025년 7월 25일, https://www.polygon.com/opinion/608927/death-stranding-2-play-slow-why
  • Medium, “How Death Stranding 2 Redefines Immersive Game Design”, 2025년 7월 2일, https://mike-bynum.medium.com/how-death-stranding-2-redefines-immersive-game-design-27c1f19e5d97
  • EL PAÍS English, “Slow gaming: How video games are swapping nerve-racking battles for relaxing walks”, 2023년 3월 14일, https://english.elpais.com/culture/2023-03-14/slow-gaming-how-video-games-are-swapping-nerve-racking-battles-for-relaxing-walks.html
  • ZDNet Korea, “황재호 민트로켓 '데이브 더 다이버, 반복 통해 창의성 증명'”, 2025년 4월 15일, https://zdnet.co.kr/view/?no=2025041511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