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2020-2022년 불법 콘텐츠 유통 방지 목적에서 시작된 결제사 정책 전환

온라인 성인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결제사의 태도는 2020년대 초반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2020년 말 해외 대형 성인 사이트에서 불법 콘텐츠 유통 논란이 제기되면서 비자(Visa)와 마스터카드(Mastercard)가 해당 사이트에서의 결제 서비스를 중단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아동 포르노와 비동의적 성행위 영상 등 명백히 불법적인 콘텐츠의 유통을 차단하고자 하는 정당한 목적에서 시작된 조치였다. 이어 2021년 마스터카드는 성인 콘텐츠 업계에 대한 신규 가이드라인을 도입하여 결제망을 통한 불법 콘텐츠 유통을 차단하려 했다. 2022년 7월 미국 마인드긱(MindGeek)과 비자에 대한 소송에서 연방 판사가 비자가 아동 대상 불법촬영물 수익화에 공모한 혐의로 민사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상황이 전환되었다.

법원 판결 이후 카드사들은 성인 콘텐츠와 연관되어 평판 위험이나 법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고, 브랜드 보호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비자 일본 지사 사장도 2024년 말 설령 합법 콘텐츠라도 브랜드 보호를 위해 결제를 차단할 때가 있다고 밝혀, 브랜드 이미지 손상 우려가 결제 차단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의 동인 만화판매 사이트 멜론북스는 2024년 비자·마스터카드가 결제를 전면 차단하면서 판매에 타격을 입기도 했으며, 망가 라이브러리 Z는 사이트 폐쇄까지 이르렀다. 불법 콘텐츠 차단이라는 정당한 목적에서 시작된 규제가 합법 영역까지 확산되면서, 필요한 규제와 과도한 제재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새로운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표> 주요 결제사 성인 콘텐츠 규제 정책 변화

출처: ACLU, Brown Rudnick, AUTOMATON WEST

게임 플랫폼까지 규제 확산시킨 컬렉티브 샤웃 캠페인

2025년 7월 호주 기반 여성권익 단체 컬렉티브 샤웃(Collective Shout)이 새로운 촉매제가 되었다. 해당 단체는 7월 14일 비자·마스터카드·페이팔(PayPal) 등 주요 결제사 CEO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스팀과 itch.io에서 성폭행, 비윤리적 관계 묘사 등의 부적절한 콘텐츠가 포함된 수백 개 게임이 판매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결제 서비스 중단을 촉구했다. 컬렉티브 샤웃은 이전부터 성적 착취물 반대 캠페인을 지속해온 소규모 단체이지만, 이번 서한을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카드사들은 공식적으로는 합법적인 거래를 모두 허용하나 불법 콘텐츠에 대한 통제를 요구할 뿐이라며 직접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부인했다. 실제 마스터카드는 게임을 평가하거나 제한하도록 요구한 적 없다는 입장문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스팀 보유사 밸브(Valve)와 itch.io에 전달된 메시지는 달랐다. 밸브는 결제 처리업체와 은행 중개기관을 통해 마스터카드 규정 5.12.7을 근거로 현재의 콘텐츠 관리 정책이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마스터카드 규정 5.12.7은 불법이거나 마스터카드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는 거래를 금지하며, 특히 혐오스럽고 진지한 예술적 가치가 없는 콘텐츠의 판매를 불허한다는 조항이다. 아동 대상 불법 콘텐츠나 강제적 성적 묘사 같은 명백한 불법 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당연하나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광범위하고 모호한 규정이 결제망을 통해 전달되면서 플랫폼들이 전체 서비스 마비를 막기 위해 성인 대상 콘텐츠를 무차별적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컬렉티브 샤웃 서한이 발송된 지 불과 2주 만에 사태는 급박하게 전개되었으며, 스팀과 itch.io 모두 정책 변경을 발표하게 되었다.

<표> 컬렉티브 샤웃 캠페인 이후 주요 플랫폼별 대응 현황

출처: The Guardian, AUTOMATON WEST, GameSpot, itch.io, Kotaku, GamesRadar+

스팀의 급작스러운 개발자 가이드라인 변경과 부적절한 콘텐츠 제재 강화

스팀은 7월 중순 개발자 대상 정책을 업데이트하여, 결제 처리업체 및 관련 카드 네트워크, 은행의 규칙과 기준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 콘텐츠를 금지 항목에 추가했다. 특히 ‘특정 유형의 성인 전용 콘텐츠(certain kinds of adult only content)’를 지목하여 문제적 성인물에 대한 새로운 제재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스팀 정책의 15번째 금지 조항으로 추가되었는데, 업데이트 직후 비윤리적 관계나 성적 폭력 등을 소재로 하는 극단적인 시뮬레이터류 게임들이 대거 삭제되었다. 이러한 불법적이고 부적절한 콘텐츠에 대한 제재는 필요한 조치였다. 다만 밸브는 결제 수단을 잃으면 플랫폼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로 부득이 해당 게임들을 삭제했으며, 영향을 받은 개발자들에게는 개정된 규정과 후속 조치를 안내했다.

스팀의 월간 활성 이용자가 1억 3천만 명이 넘는 점을 고려하면, 수백여 개 게임 퇴출은 매우 이례적이고 대규모인 조치였다. 스팀은 2018년부터 성인 게임을 허용해왔으나, 이번 규정 변경 후 허용 기준이 불투명해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정책에서 언급된 ‘특정 유형의 성인 전용 콘텐츠’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모호하여 업계에 불안감을 낳고 있다. 밸브조차 결제처의 새로운 표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제시되지 않았다고 토로할 정도로 기준이 애매한 상황이다. 문제는 극단적인 성적 폭력이나 불법적 요소가 있는 게임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넘어, 일반적인 성인 등급의 연애 시뮬레이션이나 예술적 표현이 포함된 게임들까지 과도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창작자들은 자기 검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결제사가 브랜드 훼손이라고 판단하면 언제든 금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림> 스팀 가이드라인에 추가된 15번째 금지 조항

출처: Steamworks

itch.io의 200만 개 게임 페이지 중 모든 성인 콘텐츠 검색 결과 제외 조치

itch.io는 스팀보다 더 급진적인 조치를 취했다. 7월 24일 itch.io 운영진은 블로그를 통해 성인용 NSFW 콘텐츠를 탐색 및 검색 결과에서 모두 제외했다고 발표했다. 유료 게임 결제뿐만 아니라 무료 배포 콘텐츠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조치로, 일단 모든 성인물 노출을 차단한 후 결제망 마비를 피하려는 응급처치였다. itch.io 측은 플랫폼의 핵심 결제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였으며 사전 공지 없이 변경하게 되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컬렉티브 샤웃이 지적한 문제적 콘텐츠는 일부 특정 게임에 한정되었지만, itch.io는 전체 성인물을 일괄 차단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개별 타이틀을 신속히 선별하기 어려운 UGC 기반 오픈 플랫폼의 한계에서 기인한 조치였다.

itch.io에는 200만 개가 넘는 방대한 게임 페이지가 있고, 소규모 팀으로서는 일일이 검사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광범위한 리뷰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7월 말까지 itch.io에서는 수백 개에 달하는 성인 게임이 아예 목록에서 사라지거나 판매 중단되었고, 이용자들은 자신이 구매한 게임에 접근조차 못하게 될까 우려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문제적 콘텐츠 제재라는 본래 취지를 넘어 건전한 창작물과 일반 이용자들까지 피해를 입는 상황을 초래했다. itch.io는 구매자 라이브러리의 다운로드 권한은 유지된다고 해명했지만, 특히 itch.io의 경우 페이팔은 개발자 수익금 지급에 핵심적이어서, 만약 페이팔을 완전히 잃으면 전세계 인디 창작자들에게 대금 송금을 할 수 없는 치명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itch.io 창업자 리프 코코란(Leaf Corcoran)은 일부 무료 성인 게임은 복원했지만, 유료 콘텐츠는 결제업체와 협의가 끝날 때까지 천천히 재등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표> 스팀 vs itch.io 성인 콘텐츠 대응 비교

출처: itch.io, The Guardian, AUTOMATON WEST, GamesRadar+, Kotaku

일반 게이머와 건전한 개발사에게 돌아간 예상치 못한 피해

이번 플랫폼 자체 규제 강화로 인한 피해는 부적절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부 개발자들을 넘어 일반 게이머들과 건전한 게임 개발사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미쳤다. 불법적이고 극단적인 성인 콘텐츠에 대한 제재 자체는 필요한 조치였지만, 결제 시스템의 광범위한 제한으로 인해 성인물과 전혀 무관한 이용자들도 불편을 겪게 되었다. 특히 인디 게임 생태계에서는 소규모 개발팀들이 갑작스런 플랫폼 정책 변경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았으며, 일부는 장르나 표현 방식과 무관하게 자기 검열을 강화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문제적 콘텐츠 제재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규제의 모호성으로 인해 건전한 창작물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적절한 규제와 과도한 검열 사이의 경계선이 불분명해지면서 발생한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결제 수단 제한의 파장은 성인물과 무관한 일반 게이머들에게도 직접적인 불편을 초래했다. 2025년 7월 이후 스팀에서는 페이팔 결제 지원 통화가 6개로 제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페이팔 측의 결제 대행 은행 중 하나가 스팀 관련 거래를 중단하면서 촉발되었는데, 그 결과 전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페이팔을 통한 스팀 결제가 막히고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캐나다 달러화, 호주 달러화, 미국 달러화의 6개 주요 통화로만 결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밸브는 해당 조치가 성인 콘텐츠 이슈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며, 향후 다시 페이팔을 복구하길 희망하지만 언제가 될 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결제망 한 곳이 막히자 그 여파로 지역 화폐 결제, 환불 처리, 개발자 정산 등 생태계 전반이 혼란을 겪었다. 일본 게임 업계에서는 <니어: 오토마타>의 제작자 요코오 타로(Yokoo Taro)가 이번 스팀 게임 퇴출 조치가 한 나라의 표현의 자유가 다른 나라 기업에 제약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미국 백악관 공정 은행 이용 보장 행정명령과 글로벌 업계 자구책 캠페인 확산

결제사들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비윤리적 불법 콘텐츠에 대한 제재는 분명 필요하지만, 합법적인 창작물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2025년 8월 백악관이 모든 미국인에게 공정한 은행 이용 보장 행정명령을 발표하여, 정치적·도의적 이유로 합법 사업을 금융기관이 차별하는 행위를 막겠다는 연방 정책을 천명했다. 해당 행정명령은 주로 총기산업 등 보수 진영 사업 보호가 목적이었지만, 합법적 사업활동을 제공자의 신념을 이유로 금융서비스에서 배제하지 말라는 원칙을 담고 있어, 건전한 성인 게임처럼 법적으로 허용된 컨텐츠를 금융사가 임의로 차단하는 관행에도 적용될 수 있다. 미국 시민단체와 관련 업계도 법적 대응에 나섰다. 2023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을 비롯한 단체들은 마스터카드의 새 성인물 결제정책을 FTC에 제소하여, 이것이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과도한 부담과 검열 효과를 주어 불공정 거래 관행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게임 업계와 창작자 커뮤니티도 과도한 규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폴란드의 GOG(Good Old Games)는 2025년 8월 ‘구매의 자유(Freedom To Buy)’ 캠페인을 시작하여, 최근 논란이 된 게임을 포함한 13개의 게임을 무료 배포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GOG 측은 해당 캠페인이 과도한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메시지라고 밝히며, 합법적이고 책임 있게 만들어진 게임은 플레이어가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캠페인은 48시간 만에 100만 명이 넘는 게이머가 몰리는 등 큰 호응을 얻었고, 무분별한 결제 차단에 대한 업계의 집단적 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아울러 수많은 게이머와 개발자들이 직접 비자·마스터카드 고객센터에 전화해 과도한 조치에 항의하는 풀뿌리 운동도 벌였다. 트위터 상에서는 #DontCensorGames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나는 등, 금융기관의 개입에 대한 여론 환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게임산업의 선제적 대응 필요성과 다각적 해결책 모색

궁극적으로 이번 사태는 게임 산업의 국제 진출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 게임업계도 글로벌 플랫폼 진출 시 이러한 결제 규제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성인 테마를 다루는 개발자들은 이제 글로벌 플랫폼에 출시하기 앞서 콘텐츠 수정이나 자체 검열을 고민하게 될 수 있다. 작품이 자국 내에서는 합법이어도 해외 결제망을 통한 판매가 막힐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불법적이고 부적절한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유지하되, 건전한 창작물까지 과도하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앞으로 성인 게임을 만드는 인디팀은 직접 결제 시스템 구축, 암호화폐 등 대안 결제수단 도입, 혹은 지역 한정 배포 등 우회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결국 금융기관의 영향력이 콘텐츠 산업의 검열 도구로 작용하는 현실이 드러났다. 금융사가 법적 규제를 넘어 자체 윤리 기준으로 문화 콘텐츠를 좌우하는 상황은 디지털 창작 생태계의 위축과 다양성 훼손을 우려케 하며, 업계와 이용자, 규제당국 간 균형점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분명히 보여준 것은 창작의 자유와 금융 시스템 간 충돌 가능성이다. 불법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제재와 건전한 창작물 보호라는 두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게임산업은 이러한 글로벌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