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이완을 돕는 무한 재생 드라마
저는 항상 드라마를 켜 놓습니다. 노래는 반복이지만 드라마는 그렇지 않죠. 그것도 자막이 필요 없는 한국 드라마입니다. 원고 작업을 할 때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그것을 이완시켜 주고 경감시켜 줄 수 있는 드라마가 필요합니다. 복잡하고 잔인한 내용의 스릴러 범죄물보다는 <멋진
신세계>(SBS)처럼 재미와 의미, 여운이 있는 드라마가 작업 기계 같은 느낌을 덜 갖게 합니다. 그래서 작업 시간이 길수록 양이 많은 드라마가
필요합니다. 짧은 동영상이나 영화 한 편보다 연작 시리즈 드라마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그저 흘러가게 둡니다
요즘 자주 보는, 가장 오래 가까이하는 콘텐츠는 사실 없습니다. 음악인 것 같지만, 저는 요즘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흘러가게 두는 쪽에 가깝습니다.
주로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하루에 6시간 이상 음악을 틀어놓지만, 집중해서 듣는 시간은 1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도 토요일
저녁에 몰아보는 것 외에는 잘 보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도 수시로 보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콘텐츠 보기’를 업으로 삼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일 때문에 보고 듣고 읽어야 하는데 그건 ‘콘텐츠 소비’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저는 요즘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외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짧으면 1시간, 길면 3~4시간도 됩니다. 산책, 혹은 식당과 카페에 갈
때 그렇습니다. 의외로 별문제가 없어서 쭉 그러려고 합니다.
차우진/대중문화평론가
On과 Off 사이, 나를 위한 음악
저의 가장 소중한 ‘반려 콘텐츠’는 감성적인 일러스트가 잔잔히 흐르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입니다. ‘퇴근길 지하철’, ‘비 오는 날 카페’ 같은
다정한 제목의 음악들은 하루의 끝, 밤 11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비로소 내 시간을 시작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그 시간 동안 다이어리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거나 밀린 전공 서적을 읽고, 때로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쉬어갑니다. 제 하루의 완벽한
‘온앤오프(ON/OFF) 스위치’를 만들어주는 거죠. 시끄럽고 자극적인 콘텐츠 대신, 혼자 있는 공간을 적당한 온도로 채워주는 조용한 친구 같은 존재.
아무런 요구 없이 그저 곁을 지켜주는 이 묵묵한 위로가 오늘도 나의 하루를 다정하게 붙들어줍니다.
김다인/고등학생
삶의 일부분이 된 OTT 정주행
넷플릭스, 디즈니+ 그리고 쿠팡플레이 같은 OTT 플랫폼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에요. 특히 쿠팡플레이는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돼 최근 자주
봅니다.
요즘은 애니메이션과 미드(미국 드라마)를 ‘정주행’합니다. 예전부터 재미있게 봤던 추억의 작품들을 보고 있어요. 시즌이 긴 콘텐츠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
들여서 재미있게 즐기고 있죠. 퇴근 후 아니면 쉬는 날에 OTT 콘텐츠를 보며 밥을 먹거나 운동도 합니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이러한 OTT 스트리밍
서비스로 추억의 콘텐츠나 새로운 콘텐츠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점에서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상 감독으로서 이러한 콘텐츠들은
제게 업무상 큰 영감을 주는 소중한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장규현/영상 감독
물 마시듯 부담 없이 즐기는 유튜브 쇼츠
요즘 저의 반려 콘텐츠는 유튜브 쇼츠입니다. 침대에서 눈 뜨자마자 켜고, 점심을 먹으면서 켜고, 자기 전 누워서도 켭니다. 딱히 뭔가를 보려고 여는
것은 아닌데,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특히 최근 자주 보는 것은 ‘천재 호야와 신나는 하루’, ‘빠니보틀’, ‘오느른’ 같은 채널의
쇼츠입니다. 돌아보면 하루에 쇼츠를 보는 시간이 꽤 됩니다. 그런데 딱히 남는 것은 없습니다. 의식적으로 책이나 롱폼 콘텐츠를 챙겨보려고도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켜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반대로 쇼츠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대충 휙휙 넘겨볼 수 있어 부담이 없습니다. 물 마시듯 자연스럽게, 별생각 없이 계속 보게 됩니다. 짧고 가벼운
콘텐츠는 금방 지나가지만, 바로 그 가벼움 때문에 하루 곳곳에 쉽게 스며듭니다.
김한비/20대 직장인
졸면서 깨우치는 인생, 나를 키운 8할은 허영심
트렌드의 최전선을 읽어내야 하는 직장인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 제 곁을 지켜준 ‘반려 콘텐츠’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키에슬로프스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같은 거장들의 ‘어려운 예술영화’들입니다. 장뤼크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누벨바그 영화를 보며 까무룩 졸기도 하고,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평론을 찾아 읽는 치열한 과정이 제 일상의 오랜 루틴입니다. 어릴 적 전설적인 영화지 『키노』를 보물처럼
모으고, 정성일 평론가의 뜨거운 문장이나 김혜리 기자의 다정한 영화글을 탐독하며 자랐습니다. 그 활자들 속에서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영화적 우정과
연대를 배웠습니다. 난해한 미장센을 붙잡고 씨름하다가 비로소 감독이 숨겨둔 단서를 이해하고 온전히 내 것으로 깨우치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이해한 것을 넘어 서툴고 막막했던 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이해하는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허영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를 키운 것은 그 ‘지적 허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나’라는 세계의 지평을 넓혀준
거장들의 고요한 세계가 오늘도 제 생각의 깊이를 단단하게 붙들어줍니다.
김성재/직장인
위로가 필요할 때 찾는 나만의 명작
제 일상 속의 반려 콘텐츠는 애니메이션 <월-E(WALL‧E)>입니다. 주인공 ‘월-E’는 인간이 떠나고 폐허가 된 지구에 홀로 남아
쓰레기를 정리하는
작은 청소 로봇이에요. 이 작품은 평소처럼 청소하고 잡동사니를 주워 집을 채우던 그 로봇이 어느 날 지구 탐사를 하러 온 최신형 로봇 ‘이브’를
만나 펼쳐지는 모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첫 시작부터 절반 정도는 마치 무성영화처럼 대사 한마디 없이 진행돼요. 적막하고 황량한 세상에서 혼자 남아서 열심히 할 일(쓰레기
청소)을 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콘텐츠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월-E의 모습이 외로워 보이면서도 위로를 줍니다. 어른이 되고 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2008년 극장에서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을 본 후 너무 감동했고, 덕분에 그 뒤로 영화 마니아, 나아가 콘텐츠 마니아가 됐거든요.
제 현재의 기반을 만들어준 영화라 굉장히 뜻깊은 작품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 담긴 모든 요소(디스토피아, 스페이스 오페라, 인간 찬가,
마이너리티의 연대 등)를 전부 사랑하게 됐습니다. 1~2년에 한 번은 뭔가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다시 보는데요, 볼 때마다 마음이 포근해지고는
합니다. 역시 ‘월-E’처럼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죠. 다짐이 항상 오래가지는 않는 게 슬프지만, 다시 또 다짐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한 번 더 봐야겠어요!
전건후/콘텐츠산업 종사자
일상을 채우는 끝없는 배경음악
저는 일상 속에서 늘 음악과 함께합니다. 출퇴근길은 물론, 집안일 할 때, 산책할 때 등 거의 모든 일상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것 같네요. 이전에는
밴드, K-팝 등 좋아하는 음악 위주로 골라 듣는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음악 편식(?)을 고치기 위해 유튜브 뮤직 알고리즘이 이끄는 음악들도 최대한
들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니면 간혹 숏폼에서 접하게 되는 배경음악이 좋으면 검색해서 듣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확실히 음악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좋은 음악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유튜브, OTT 등 영상 콘텐츠도 좋아하지만, 영상 콘텐츠는 화면에 집중해 봐야 하기 때문에 확실히 음악이 일상 속에서
함께하기에는 부담이 없어 더 많이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신나게 보내기 위해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없으면 허전해서 습관적으로 찾게 됩니다.
배**/콘텐츠산업 종사자
이번 질문에 모인 답변들은 지금의 콘텐츠 소비가 단순히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에게 콘텐츠는 하루를 여닫는 음악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찾아보는 추억의 영상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무심코 손이 가는 짧은 영상이다. 반대로 너무 많은 콘텐츠 속에서 잠시 멀어지는
선택 역시 오늘의 소비문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우리는 콘텐츠를 통해 쉬고, 일하고,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콘텐츠는 더는 특별한 순간에만 만나는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 리듬에 맞춰 곁을 지키는 일상의 반려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