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Special Issue 1

지금 여기 숏폼 콘텐츠에 대해 묻다

글. 성지환((주)칠십이초 대표)

Scene #1. 아무노래 챌린지

  • 2020년 1월 13일, 틱톡(TikTok)에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영상이 올라왔다. 지코의 신곡 홍보용 콘텐츠이자 챌린지 유도 콘텐츠였다. 이에 여러 유명 연예인들이 참여하면서 바람을 탔고, 약 열흘 만에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1억을 초과했다. 두 달여 만에 챌린지 관련 영상 조회수는 총 8억 뷰를 넘었다. 2019년에도 틱톡은 많은 성장을 했지만, 올해 초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는 틱톡을, 그리고 숏폼을 대세로 각인시켰다.

Scene #2. 퀴비의 공개

  • 2020년 1월 8일, 라스베이거스 ‘2020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현장. 퀴비(Quibi)가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론칭 날짜 및 기능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들을 발표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였던 제프리 캐천버그와 HP CEO였던 맥 휘트먼이 공동 대표로 있는 퀴비는, 숏폼계의 HBO가 될 것임을 천명하며 등장한 프리미엄 숏폼 플랫폼이다.

퀴비는 2018년 7월, 1조 원이 넘는 금액의 투자를 한번에 유치하며 단숨에 전 세계 미디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공식적인 자리에는 드러나지 않은 채 물밑에서 할리우드 거장들을 섭외하며 콘텐츠 라인업을 늘려왔다. 많은 할리우드 빅 네임들이 참여한 숏폼 콘텐츠들이 퀴비의 4월 론칭과 함께 세상에 공개될 것임이 CES에서 공식화되었다.

위 두 장면 중 하나만 있었어도 이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2020년 1월에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으니, 2020년 상반기에 ‘숏폼 콘텐츠’가 높은 화제성을 가졌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양해도 너무 다양한 숏폼 콘텐츠

‘숏폼 콘텐츠’라는 용어가 워낙 화제성이 높아지다 보니, 상반기에 필자에게 ‘숏폼 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알려주세요’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숏폼’의 ‘숏’이 도대체 얼마나 ‘숏’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정해져 있지 않을 뿐더러, 흔히들 ‘숏폼 콘텐츠’라고 부르는 콘텐츠의 종류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15초~1분 길이의 숏폼 콘텐츠가 있는가 하면, 15~20분 길이의 숏폼 콘텐츠도 있다. 심지어 30분도 숏폼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틱톡의 각종 챌린지처럼 사람들이 영상을 올리며 직접 참여하는 놀이 형태들도 있고, 정식 뉴스들도 있다. 한국의 역사를 알려주는 교육 콘텐츠들이 있고, ‘수천만 원 버는 방법’ 같은 정보성(가끔은 정보성을 가장한) 콘텐츠들도 있다. 일반인들이 실제로 겪은 너무나 웃긴 일이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콘텐츠들이 있고, 방송국에서 제작한 웃긴 영상 클립들이나 드라마 콘텐츠들이 있다. 혼자서 카메라 하나 들고 찍은 영상들이 있고,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참여한 영상들이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다양한 ‘기타’ 콘텐츠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여기에 광고 콘텐츠까지 함께 생각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사실 상품이 좋으면 그 상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콘텐츠는 좋은 정보성 콘텐츠다. 광고성이 짙더라도 재미만 있으면 사람들은 많이 본다. 모든 형태의 콘텐츠는 광고로 동작할 수 있고, 광고로 동작시킬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수많은 종류의 콘텐츠들이 광고로도 만들어지고 향유되며 놀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많은 형태와 목적의 콘텐츠들이 존재하는데, ‘숏폼 콘텐츠’라는 하나의 용어로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방송영상 시장에서 바라보는 숏폼 콘텐츠

그럼에도 굳이 이번 글에서 한번 더 짚어보고 싶은 것은, 방송영상 시장에서 바라보는 숏폼 콘텐츠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이 부분은 철저하게 필자가 숏폼 콘텐츠를 가지고 2015년부터 국내외 방송영상 마켓들을 돌아다니고, 각종 방송사들을 만나며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2016년과 2017년에 필자가 국내외 방송사들과 만나며 느꼈던 시장의 반응은 한 줄로 요약된다.

“오! 재미있다! 그런데… 이걸로 뭐하지?”

콘텐츠는 재미있는데, 방송영상 시장 내에서 이러한 콘텐츠들을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다. 그렇지만 프랑스에서는 비방디(Vivendi)에서 만든 ‘Studio+’라는 프리미엄 숏폼 플랫폼이 2016년에, 미국에서는 버라이즌(Verizon)에서 ‘Go90’가 2015년 론칭했다. 세상에 숏폼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있었으며, 발 빠른 몇몇 사업자들은 숏폼을 활용한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보고 있었다. 그렇게 대략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시장에서 숏폼 관련된 논의가 꽤나 진행되었다. 72초도 매년 마켓에 나가면 쉴 틈 없이 많은 회사들과 미팅을 진행했고, 많은 회사들이 재미있다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 많은 관심에 비해 실제로 비즈니스가 진행된 경우는 적었다. 2018년이 되자 앞서 언급했던 Studio+와 Go90가 모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유는 수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숏폼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식었다. ‘재미는 있지만, 방송영상 시장에서는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2018년 8월, 제프리 캐천버그(Jeffrey Katzenberg)와 맥 휘트먼(Meg Whitman)이 회사를 하나 세웠다. 프리미엄 숏폼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 것이며, 이미 한화로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번 투자에는 디즈니, 21세기폭스, NBC유니버셜, 소니픽쳐스, 바이아콤, 워너미디어, 라이언스게이트, MGM, ITV, E-One 등 전 세계 최고의 미디어사들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미디어 시장 전반에 조금은 놀라운 소식이었고, 이후 한동안 해외 마켓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토론 주제 중 하나가 ‘과연 퀴비는 성공할 것인가?’이기도 했다. 퀴비의 등장에, 숏폼 콘텐츠에 대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2019년 틱톡의 꾸준한 성장과 브랜디드 콘텐츠 시장의 성장, 퀴비의 론칭 준비에 대한 무성한 소식들로 숏폼 콘텐츠라는 단어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상승되어 갔다.

숏폼 콘텐츠의 위기와 가능성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20년 상반기는 숏폼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절정에 다다른 시기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리는 소식은 그리 달갑지 않다.

우선, 틱톡에 위기가 찾아왔다. 틱톡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질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에서 중국에 본사를 둔 틱톡이 중국 정부에 사용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결국 해프닝에 그치기는 했지만, 아마존이 보안을 이유로 전 직원의 스마트폰에서 틱톡을 지우도록 공지했다가 실수라고 입장을 밝힌 일도 있었다. 인도에서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까지 겹쳐, 자국 내에서 틱톡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책적으로 막아버렸다. 이어서 미국에서도 틱톡 사용이 금지됐다. 틱톡에게는 여러모로 악재가 켜켜이 쌓여있는 셈이다.

거기에 퀴비가 안좋은 소식을 더했다. 2020년 4월 야심차게 론칭한 퀴비는, 서비스 오픈 일주일 만에 17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출발을 보였다. 오픈한 지 약 세 달이 지난 현재,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센서타워(Sensor Tower)의 보고서에 따르면, 초반 무료체험 기간에 등록했던 91만 회원 중 8%인 약 7만 2,000명 정도만 유료회원으로 전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올해 회원가입자 수가 연초 퀴비의 예상 수치의 1/3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현재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프리미엄 숏폼 플랫폼인 퀴비의 성적이 부진하다보니, 방송영상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거봐, 숏폼은 어렵다니까”라는 말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숏폼은 이미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들었고, 국내외 산업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틱톡은 험난한 길을 걷고 있지만, 틱톡이 대중화시킨 15초~1분 길이의 사용자가 놀기 좋은 형태의 영상은 여전히 인기가 많다. 플랫폼 자체는 어려워졌을지라도 틱톡이 다루고 있는 유형의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는 여전히 높다는 말이다. 페이스북은 2020년 상반기에 틱톡과 거의 유사한 릴스(Reels)라는 서비스를 브라질에서 테스트했다. 최근 틱톡에게 여러 어려움이 닥친 상황에서 릴스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50여개 국가에 서비스를 출시했다.

거기에 전 세계 미디어 회사들이 숏폼 콘텐츠에 아직 미련을 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부분은 미디어 시장 전체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작년과 올해는 거대 미디어사들의 OTT가 오픈하는 해다. 작년에는 디즈니플러스가 오픈했고, 올해에는 HBO 맥스(MAX)와 NBC유니버셜의 피콕(Peacock)이 론칭했다.

거대 미디어사들이 방송 채널만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는 숏폼 콘텐츠의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상 서비스 영역 내 그 어디에도 숏폼 콘텐츠를 끼워 넣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사의 OTT를 가지게 되면서, 숏폼 콘텐츠를 서비스하기가 쉬워졌다. 콘텐츠가 재미있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기만 한다면, 숏폼 콘텐츠를 바로 서비스하며 OTT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이다. 최근 해외 미디어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숏폼 콘텐츠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작년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국내에도 숏폼과 관련된 긍정적인 움직임들이 있다. 카카오M은 7월 14일 미디어데이 행사를 통해 2023년까지 디지털 오리지널 콘텐츠에 3,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JTBC는 얼마 전 〈장르만 코미디〉라는 숏폼 드라마 코미디 프로그램을 론칭했고, CJ ENM의 tvN에서는 숏폼 콘텐츠의 모음으로 성공을 했었던 〈롤러코스터〉를 되살려, 디지털과 방송 영역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이쯤에서 다시, ‘숏폼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려보자.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기존에 제작되던 롱폼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해야 한다. 길고 짧음은 상대적이며, ‘숏폼 콘텐츠’라는 말은 방송영상 시장에서 기존에 제작되던 콘텐츠들에 비해 짧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롱폼’의 기준은 무엇일까? 40분? 60분? 80분? 2시간? 롱폼의 기준이 없는데, 숏폼의 기준이 있을 리가 없다. 앞서 짚었듯, 숏폼 콘텐츠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다. 놀이형 콘텐츠부터 정보습득형, 감상형, 거기에 광고성 콘텐츠까지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분명한 건, 사람들은 ‘숏폼이 보고 싶어서’ 틱톡에 접속하지 않는다. 틱톡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영상들이 있고, 재미있는 놀이가 있기 때문에 접속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롱폼이 보고 싶어서’ 넷플릭스에 접속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고 영화가 있고 다큐멘터리가 있기 때문에 접속한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2020년에 콘텐츠들을 숏폼과 롱폼이라는 단어로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람들은 꾸준히 영상으로 소통을 할 것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아볼 것이고, 재미있는 놀거리에 참여할 것이다. 사람들이 직접 찍어 올리는 1분짜리 영상은 점점 많아질 것이고, 10분짜리 영상도 점점 많아질 것이고, 20분짜리 영상도 계속 늘어날 것이고, 60분짜리 드라마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2시간짜리 영화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지 이거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어떤 재미있는 콘텐츠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