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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2

세계를 겨누는 K-포맷, 그 변화의 물결

글. 손태영(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유통팀 과장/방송포맷 분야 전문직위)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며 CJ ENM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 포맷이 영국의 대표적인 국영 방송사인 BBC에 K-포맷 최초로 편성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1). 연초에 미국 FOX에 편성이 되었으나 아직 방영은 되지 않았고 코로나19로 인해 포맷 거래가 어려워진 비대면 시대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 있는 소식이라 할 수 있다. 상반기에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 〈불후의 명곡〉(KBS2) 등도 미국 진출 소식을 알렸다. 〈복면가왕〉(MBC)의 글로벌 히트로 인해 이제 K-포맷은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시장까지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리라는 낙관적 전망에 대해서는 현장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K-포맷의 르네상스?

2010년대 들어 〈아빠! 어디가?〉(MBC), 〈나는 가수다〉(MBC), 〈런닝맨〉(SBS) 등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K-포맷은 세계 포맷 업계에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기존 한류 소비 시장인 동남아는 물론 〈꽃보다 할배〉(tvN)가 미국에, 〈히든싱어〉(JTBC)와 〈판타스틱 듀오〉(SBS)가 유럽에 진출하며 조금씩 시장을 확장해 나갔고, 〈굿닥터〉(KBS2)와 〈복면가왕〉의 세계적 흥행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또한 이후로도 계속 들려오는 수출 낭보는 K-포맷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

하지만 넓어지는 수출시장과 높아지는 K-포맷의 대외적 인지도에 비해 실익이 비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한령으로 인해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이 막히면서 2016년 약 5천 500만 달러(약 655억 원)로 정점으로 찍었던 포맷 수출액은 2018년에는 당시의 1/5도 되지 않는 수준인 900만 달러(약 107억 원)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대중(對中) 수출액이 약 4천 900만 달러(약 583억 원)에서 600만 달러(약 71억 원)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2019년은 50여 개국에 판매된 〈복면가왕〉의 실적이 수출액에 반영되어 조금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으나 아직은 K-포맷이 중국 외의 시장에서는 큰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보다 다양한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글로벌 포맷’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K-포맷이 해외시장에서 보이는 성과를 봤을 때 이러한 문제의식에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포맷의 장르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 포맷 수출 TOP 장르

〈Tracking The Giants-The Top 100 Travelling TV Formats 2019-20〉을 참고로 재구성

출처 : K7 Media

K7미디어에 따르면 세계 포맷 수출 Top 100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게임 쇼-퀴즈(17.8%)고, 그 뒤로는 게임 쇼-챌린지(12.2%), 리얼리티 컴피티션-탤런트(10.3%) 순이었다. 반면 한국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의 포맷 비율은 버라이어티(44%), 리얼리티(13%), 음식(9%) 순으로 인기 장르가 포진해 있어(은혜정&정윤경, 2018) 글로벌 인기 장르와는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나 혼자 산다〉(MBC), 〈미운 우리 새끼〉(SBS) 같은 ‘관찰 리얼리티’ 장르가 국내에서는 주류를 이룬 지 오래인데, 해외에서 수요가 높지 않은 것은 물론 포맷화(Fomatting)도 어려운 장르이기 때문에 포맷을 수출하기가 쉽지 않다2). 실제로 이런 류의 포맷이 아시아 외 시장에 판매된 사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최근 업계에 나타나는 이른바 ‘글로벌 포맷’ 개발에 대한 움직임은 이러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금과 같은 특정 장르에 대한 편중, 특히 그것이 해외시장에서의 수요가 낮은 장르일 경우 K-포맷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면가왕〉을 비롯해 지금까지 미국에 편성된 모든 포맷은 2016년 이전에 론칭한 작품들이다. 유럽으로 범위를 넓혀도 한국에서 최근 3년 내 론칭된 포맷 중 편성까지 이어진 사례는 올해 3월 독일에서 방영된 〈하나의 목소리 전쟁: 300〉(tvN)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전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된 〈복면가왕〉이나 미국 편성을 따낸 뒤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 편성까지 받은 〈너의 목소리가 보여〉, 미국을 포함한 10여 개국에 수출된 〈꽃보다 할배〉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두 미국 시장에 진출한 뒤 그간 진입장벽이 높았던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과 기타 국가까지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이 굳건히 닫혀 있는 지금, K-포맷의 미래는 결국 미국과 유럽 같은 서구 메이저 콘텐츠 시장에서의 성공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국내 글로벌 포맷 개발에 대한 움직임

이러한 이유로 국내 포맷 업계에서는 글로벌 포맷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포맷 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CJ ENM은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페이퍼 포맷을 해외에 판매하거나 해외 파트너사와 공동개발을 진행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캐시백〉(tvN)이라는 국내에는 흔치 않은 게임쇼 장르의 예능 포맷을 미국 버님-머레이 프로덕션(Bunim-Murray Productions)과 공동개발하는3) 등 글로벌 포맷 개발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포맷 전담부서를 둔 또 하나의 방송사 SBS는 프랑스 바니제이(Banijay) 그룹과 〈팬워즈〉를 공동개발한 경험을 토대로 전담부서에서 더 나아가 자회사인 ‘포맷티스트(FormatEast)’를 설립하며 보다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관찰 리얼리티 위주의 국내 편성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시장을 겨냥한 페이퍼 포맷을 다양한 형태로 개발하고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세계적인 포맷 기업으로 발돋움한 MBC 역시 포스트 복면가왕으로 자리매김할 글로벌 포맷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 NBC유니버셜과 공동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A&E네트웍스, 디스커버리 등의 글로벌 기업과도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박원우 작가가 대표로 있는 포맷 기획사 ‘디턴(Diturn)’, 前CJ ENM 포맷 전담부서 팀장 출신인 황진우 대표가 설립한 글로벌 콘텐츠 에이전시 ‘썸씽스페셜(Something Special)’ 등 중소 독립제작사들도 글로벌 포맷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2018년에 신설한 ‘방송포맷 컨셉트레일러 공모’는 국내 최초 중소 독립제작사 페이퍼 포맷의 해외 진출을 목표로한 사업이다. 이 사업에 2년 연속 참여한 디턴은 2019년 11월 NBC유니버셜과 포맷 퍼스트룩(First Look) 계약을 체결4)했고, 센미디어(Cenmedia)의 〈$10 to Chef〉는 국내 최초로 2018년 ATF Formats Pitch Top5에 선정5)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센미디어 〈$10 to Chef〉

출처 : Vimeo

MBN 특집 프로그램 〈10달러 셰프〉

출처 : MBN 네이버 TV

또한 글로벌 포맷 개발과 포맷 전문가 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2019년에 ‘방송포맷 랩’이란 사업도 신설했다. SM C&C, 포맷티스트, MBC 3개사가 초대 사업자로 참여해 총 30여 명의 엄선된 창작자와 함께 포맷을 개발했다. 랩 운영기관과 창작자가 저작권을 5:5로 나누는 ‘상생’ 모델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사가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참여했으며, 지금까지 국내 정규편성작 2편, 해외(캐나다) 공동 개발 계약 2건, 해외합작(중화권) 계약 1건 등 사업 첫해부터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며 안착하고 있다.

K-포맷의 미래: 상생의 롱테일 비즈니스

한국은 비교적 협소한 내수시장을 가진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300여 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새로운 시즌이나 정규 편성을 받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인 아주 치열한 시장이기도 하다.6) 따라서 국내 포맷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자국 내 치킨게임에서 벗어나 해외수출 비중을 늘려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 같은 내수 규모가 작은 국가가 세계 포맷 수출 톱100에서 4위에 랭크된 것을 잊지 말라. 글로벌 포맷을 개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내 포맷 산업 환경의 변화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K-포맷의 성과는 분명 그동안 산업을 주도해온 방송사의 역할이 컸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에 다소 인색한 국내 방송 환경, OTT 등 플랫폼 다양화로 인한 경쟁 증가 등으로 인해 지금의 모델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는 소수 방송사 주도의 파레토 전략에서 다수의 창·제작자 중심의 롱테일 전략으로의 전환을 고민할 시점이 아닐지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언스크립티드 포맷(Unscripted Format) 수출 분야 세계 1위인 영국은 ‘Terms of Trade’로 대표되는 독립제작사 육성 정책을 통해 제작사 하나하나가 발품을 팔아 세계로 진출해 수익을 창출하고 방송사는 발품을 줄이는 대신 그 수익의 일부를 계속해서 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7) 한국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방송사와 독립제작사가 상생할 수 있는 한국형 롱테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K-포맷의 밝은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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