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제작비 상승 현황

구체적인 수치로 보면 제작비 상승 폭이 상당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 4의 에피소드당 제작비는 3,000만 달러(약 400억 원)에 달한다. 2016년 시즌 1의 600만 달러(80억 원)와 비교하면 무려 5배가 넘는다. 미국 할리우드 프리미엄 드라마 시리즈의 평균 제작비도 2015년 300~500만 달러에서 1,000만~2,000만 달러로 대략 3~5배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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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즌 별 제작비 상승 추이

(출처: 각 언론보도를 취합하여 저자 재구성)

이런 제작비 상승 추세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BBC와 ITV 등 방송사 중심으로 제작되는 영국 고예산 드라마도 에피소드당 100만~200만 파운드(약 1.3억~2.6억 원)에서 200만~300만 파운드(3.4~5억 원)로 2~3배 뛰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대형 시장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이 집중되면서 역시 제작비 인상 폭이 커졌다. 예를 들어 스페인 마드리드의 트레스 칸토스(Tres Cantos) 스튜디오에서 대형 오리지널 시리즈가 잇따라 제작되며 유럽의 글로벌 OTT 플랫폼 표준 제작비 기준을 끌어올렸다. 일본 주요 제작사들도 2020년 이후 연평균 15~20% 제작비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24년 드라마 시리즈 회당 평균 제작비는 최소 15억 원 수준으로 추산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다수가 에피소드당 20~30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폭싹 속았수다>의 제작비(총 제작비 600억 원, 회당 평균 37억 5천만 원)가 공개되면서 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제작비 상승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넷플릭스 외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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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19년 이후 넷플릭스 대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비 추이

할리우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성비 좋은 K-콘텐츠의 제작비는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3월 콘텐츠 투자 비용 180억 달러가 상한선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지배력을 굳히기 위해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출처: 각 언론보도를 취합하여 저자 재구성)

제작비 상승의 주요 원인과 문제점

1) 글로벌 OTT 경쟁 심화와 대규모 자본 투입

제작비 상승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OTT 플랫폼 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넷플릭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주요 플랫폼들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전략으로 삼고 있다.
특히 공격적인 투자로 제작비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가입자 유치와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흥행성 높은 시리즈에 집중 투자한다. 2024년 160억 달러에서 2025년 180억 달러로 콘텐츠 투자를 11% 늘렸고, 앞으로도 투자 규모를 더 키울 전망이다. 넷플릭스 CFO 스펜서 노이만은 2025년 3월 모건스탠리 콘퍼런스에서 "180억 달러는 상한선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대규모 자본을 단기간 투입해 다른 경쟁자가 아예 진입을 막는 ‘승자독식’ 전략으로 해석된다.

막대한 투자가 가능한 배경에는 ‘글로벌 구독’이라는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이 있다. 2017년 3분기 글로벌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한 뒤 매년 2,000~3,000만 명씩 가입자가 늘어, 지난해 구독자 3억 명을 넘겼다. 7년 만에 가입자 수가 3배로 증가한 셈이다. 수익도 3배 이상 늘었다. 구독료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하는 동시에 시청 데이터와 체류 시간을 광고주에게 판매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증가 추세에 따라 제작비 규모 또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2) 제작 인력 및 자원 경쟁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의 글로벌 진출로 각국의 제작 인력, 장비, 스튜디오 공간, 로케이션 수요와 비용이 급격히 늘며 임금과 서비스 단가도 연쇄적으로 올랐다.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공과 함께 국내 창작자들의 국제적 인지도도 높아져 ‘작·감·배’(작가·감독·배우) 개런티 역시 크게 뛰었다.
영국과 유럽의 드라마 산업도 비용 딜레마에 빠져있다.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 확대와 맞물려 인건비 상승, 고품질 포맷 요구, 친환경 제작 기준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제작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현지 스태프에게 지급하는 임금에 맞춰 각국의 제작비도 동반 인상되는 구조가 형성됨에 따라, 넷플릭스에 콘텐츠 공급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제작비 상승이 두드러진다.

문제는 모든 국가의 모든 제작자가 넷플릭스와 계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와 거래하지 못하는 제작사들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형성한 이른바 ‘시장 가격’, 즉 제작비 상승분에 대한 스태프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현실적인 대응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제작비를 확보하지 못한 제작사는 제작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예를 들어 촬영 스튜디오 대관료가 폭등함에 따라 소규모 제작사는 촬영 일정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넷플릭스 라인업과 이에 포함되지 못하는 그 밖의 콘텐츠 간 제작비 및 제작 스태프 임금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3) 제작 환경의 구조적 변화

글로벌 시청자를 겨냥한 콘텐츠 제작이 늘면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 수요도 증가했다. 이에 따라 항공료, 숙박비, 현지 스태프 고용, 장비 운송비 등 부대비용이 제작비 상승의 또 다른 요인이 되었다. 글로벌 표준에 맞는 고품질 포맷 요구도 제작비 상승을 부추긴다. 4K, HDR 등 기술 표준도 높아져 장비 임대료, 후반 작업 비용, 저장 및 전송 비용도 올랐다. 또한 작업 환경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플랫폼들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해 안전 관리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영국과 EU 등에서 실시하는 ‘그린 프로덕션’¹⁾ 규정으로 인해 친환경 제작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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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5년 후> 그린 프로덕션 사례

영화 <45년 후>의 제작 과정에서 탄소발자국을 어떻게 줄였는지 보여주는 ‘그린 프로덕션’의 모범 사례 중 하나다. 가령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제작 진행에 불편을 감수할 경우 제작부 스태프나 제작일 수가 늘어나 제작비가 더 든다. 그럼에도 영국과 EU 국가들은 친환경 프로토콜과 모범 사례를 통해 시청각 산업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제안하고 제작에 반영하기를 권고한다.

(출처: EUFCN)

4) 내수시장과 글로벌 수요의 구조적 불균형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내수시장과 글로벌 제작비 기준의 불균형이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 나라는 자국 내 수익만으로 투자를 회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제작비 기준은 글로벌 수준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첫째, 자국의 프리미엄 콘텐츠가 대규모 투자를 하는 플랫폼에 일방적으로 종속될 우려가 크다. 내수시장에서 고비용 콘텐츠에 대한 투자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글로벌 OTT 플랫폼 의존이 커질 수 있다. 둘째, 글로벌 OTT와 무관한 중소·로컬 콘텐츠 예산은 상대적으로 정체되거나 감소할 수 있다. 셋째, 각국 미디어 업계 내에서 '블록버스터 vs. 저예산 인디’라는 극단적 이분화가 심화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글로벌 플랫폼과 라이선스 또는 편성 계약을 하지 못하면 제작비 손실이 제작자와 창작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위험이 크다. 편성되지 못하는 ‘재고 콘텐츠’가 쌓일수록 투자 환경이 위축되고, 드라마나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들 수 있다. 이는 창작 인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해 산업 전반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이에 따라 각국 미디어 업계는 자국 문화 보호와 제작비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다양한 접근을 모색하는 중이다.

주요 해외 국가의 대응 전략: 영국 및 호주 사례

영국: ‘스트리밍세’ 도입과 자율 기금 조성

가장 최근의 움직임은 영국의 ‘스트리밍세’ 도입 논의이다. 영국 하원 문화·미디어·스포츠 위원회는 올해 초 넷플릭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에 영국 내 구독 수익과 매출의 5%를 세금으로 부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년 내 글로벌 플랫폼들이 자율적으로 기금 조성을 하지 않으면 법제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영국 드라마·영화 제작 지원 기금을 징수하여 자국 문화 콘텐츠 산업 진흥, 지역 제작사 지원, 공영방송 재원 확충 등 특정 목적에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긴급히 개입하여 경쟁 환경을 재조정할 만큼 자국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대응이다.
또한 영국은 대형 블록버스터 대신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중·저예산 드라마, 다큐멘터리, 틈새 장르 등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중이며, 글로벌 투자 유치와 외국 파트너와의 공동제작 비중을 높여 제작비 부담을 분산하는 전략도 함께 추진한다.

호주: 콘텐츠 차별화와 정부 지원 확대

호주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보호가 필요한 장르에 집중해 중·저예산 극장용 장편 영화를 제작하는 등 콘텐츠 차별화 전략을 쓴다. 2023/24년 호주에서 제작된 20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등에 투입된 총 제작비는 2억 4,200만 호주 달러로, 독립 프로덕션 비율은 75%에 달한다. 이는 호주 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양성 콘텐츠 제작 편수다. 주목할 점은 이들 영화의 44%가 중·저예산 제작비 규모인 약 8억~44억 원 구간에 속해, 다양한 장르와 신인 창작자, 실험적 기획이 골고루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호주 정부와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Screen Australia)는 지원 구조와 투자 환경을 개선해 전체 극장용 영화 제작비의 약 50%를 세제 지원하거나 직접 투자해 자국 자본과 정부 지원으로 중·저예산 영화 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다.

한국의 현황과 과제

우리나라는 제작비 세액공제 확대, K-콘텐츠·미디어 전략 펀드 조성 등으로 대응 중이지만, 전체 콘텐츠 제작 편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높은 블록버스터 위주로 투자가 집중되고 있어서 산업적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실제로 투자자와 제작사 모두 신규 프로젝트 실행에 신중해지면서, 중소 제작사나 신진 창작자의 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콘텐츠 다양성이 위축되고 창작 인력 수급 또한 불안정해져, 장기적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의 창의성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K-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의 효자 콘텐츠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 이를 지렛대 삼은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기금 출연 의무화
우선 글로벌 플랫폼에 유럽과 캐나다처럼 자국 문화 보호를 위한 기금 출연 의무를 법제화하는 방안이 있다. 프랑스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자국 내 매출의 25%를 유럽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도록 했고, 이 중 21.25%를 프랑스 콘텐츠에 할당하도록 법제화 했다. 캐나다도 2023년 ‘온라인스트리밍법’으로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에 캐나다 콘텐츠에 대한 투자 의무를 명확히 했다. EU도 AVMSD(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에 따라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 유럽 콘텐츠 투자 의무를 이행하도록 명문화했다. 한국은 지난해 의원 입법으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 글로벌 OTT 사업자에게 전년도 국내 매출의 1%를 방송발전기금으로 납부하도록 제안한 바 있다.

다양성 콘텐츠 편성 의무 부과
한국 내에서 공개되는 글로벌 OTT 플랫폼 카탈로그에 국내 제작 다양성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편성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내 영상 콘텐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OTT 이용자에게도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EU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은 다양성 콘텐츠 의무 편성 비율(30%)과 해당 의무 콘텐츠를 플랫폼의 첫 페이지에 게재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시행 중이다. K-콘텐츠의 건강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작비 확대라는 단순한 맞대응보다 정부, 업계, 창작자가 함께 협력해 콘텐츠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문헌
  1. 강현숙(2025.2). K-콘텐츠 흥행 속 저작권은 어디로 갈까?. <저작권문화>. 한국저작권위원회
  2. 유진희(2024.8). 제작비 폭등에 따른 국내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개선방안.<MEDIA ISSUE&TREND>.Vol.63. KCA
  3. Gilles Fontaine & Marta Jiménez Pumares(2020). European high-end fiction series: State of play and trends. <European Audiovisual Observatory>
  4. K.J. Yossman(2024.11.6). ‘Wolf Hall’ Producer Says Cost of Making U.K. Drama Has Risen ‘Exponentially’ Due to U.S. Streamers: ‘It’s Caused Us a Real Problem.<VARIETY>.
  5. Manori Ravindran(2024.11.29). UK drama: Tackling the cost conundrum. <Broadcast>
  6. Paul Glynn(2025.4.10). MPs call for streaming levy to help UK TV industry. <BBC>
  7. Screen Australia(2024.12.17). Drama Report 2023/24 Film, TV and video-on-demand drama production in Australia.<Drama Report>
  8. Screen Australia(2025). Australian documentary production Activity Summary. <Screen Australia>
  9. https://eufcn.com/green-filming/
  10. https://digital-strategy.ec.europa.eu/en/policies/green-audiovisual-landscape
  11. https://www.green-screen.org.uk/case-studies
최선영

최선영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객원교수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방송프로듀서로 ‘나노비전’ 대표와 ‘한국독립피디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EBS <미디어가 보인다>(1997), MBC <즐거운 문화 읽기>(2003), <노무현 5년, 희망의 시대>(2003) 등을 기획·연출했다. 저서로는 『방송영상미디어 새로 읽기』(2020, 공저), 『모바일과 여성』(2025, 공저), 『디지털 미디어 소비와 젠더』(2022, 공저) 등이 있다. 현재 OTT 플랫폼과 콘텐츠, 온라인 커뮤니티, 포털, 댓글 등을 연구 주제로 하고 있으며, 연구공간 ‘따따따연구실’(https://wlab.ghost.io/tag/daily/)을 통해 유튜브와 포털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