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콘텐츠의 다양성은 카메라 안과 밖의 다양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이 콘텐츠 내적 다양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는 최근 발표된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20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시리즈 포용성」(2025) 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방송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다양성 논의가 영상 콘텐츠 전반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진단하는 시도로 확장되고 있다.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 : 영화 불평등을 진단하다
UCLA의 노동고용연구소에서 12년째 발행하고 있는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는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인종이나 민족 정체성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해야 하며, 성적 지향,
장애 상태도 정체성의 중요한 차원으로 접근한다. 다른 다양성 연구에서는 등장인물의 정체성을 주요 지표로 분석하지만,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는 등장인물 외에도 업계 종사자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2023년부터 분석을 위해 극장 영화와 스트리밍(아마존 프라임, 애플TV플러스, 디즈니플러스, 훌루, 맥스, 넷플릭스, 파라마운트플러스, 피콕)을 분리하였고, 영화 제작 과정에서 나타난 불평등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2025년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리밍이 극장 영화보다 다양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개봉된 영화의 경우, 유색인종 주인공은 10명 중 5.1명으로 나타나,
10명 중 2.5명에 그친 극장 영화보다 등장인물의 다양성이 2배 이상 높았다. 이는 미국의 유색인종 인구 통계인 10명 중 4.4명보다 높은 수치이다. 스트리밍 영화 주연의 젠더 분포는
2022년 남성 50.5%, 여성 48.5%에서 2024년 여성 61%, 남성 38%¹⁾로 크게 역전되었다. 극장 영화에서는 조사가 시작된 2011년 25.6%에 그쳤던 여성 주연 비율이
2024년에는 47.6%로 가장 높았다. 10여 년 사이에 카메라 안의 다양성이 성평등 측면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남겼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장애가 있는 캐릭터의 경우 2023년 9%에서
2024년 14%로 점유율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2024년 상위 스트리밍 영화 주연 중 장애가 있는 배우의 비중은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할리우드 극장 영화 주연 배우 성별 (2011~2024년)
(출처 : 「2025 Hollywood Diversity Report」 Part 1 Theatrical)
스트리밍 영화의 경우, 유색인종 감독이 10명 중 4명인 반면, 극장 영화는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또한 스트리밍 영화에서 여성 감독은 28%였으나, 극장 영화는 15.4%에 그쳐 할리우드에서도 카메라 밖의 젠더 다양성은 스트리밍과 극장 영화 모두에서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됐다. 제작 예산과 연계시켜 보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1억 달러 이상의 ‘대자본 영화’는 모두 백인 남성 감독이 맡았으며, 여성 감독의 57%는 제작 예산이 1천만 달러 미만이었다. 여성 감독은 상대적으로 대규모 예산 영화에서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플릭스, 다양성이 비즈니스 전략이다
팬데믹이 절정이던 2020년 이후 넷플릭스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적극적인 다양성 정책을 추진해 왔다. 넷플릭스는 성별, 인종, 성적 지향, 장애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등장시키며 포용성을 강조하였고, USC 아넨버그 포용정책연구소²⁾와 파트너십을 통해 영화와 시리즈의 포용성 지표를 검토하는 등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해왔다.
2025년 발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시리즈의 포용성」 보고서는 이제 넷플릭스 콘텐츠에서 젠더 다양성은 양적으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2023년 넷플릭스 영화의
57.1%, 시리즈의 54.4%가 여성이 주연 또는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들이다. 또한 2018년 전체 오리지널 콘텐츠의 28.4%에 불과하던 비주류 인종/민족 출신 배우가 주연 또는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의 비중은 2023년에 41.9%까지 크게 상승했다.
넷플릭스 콘텐츠의 창작 인력 다양성도 개선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는 전체의 25%를 차지했는데, 이는 같은 해 극장에서 개봉한 최고 흥행작
100편 중 여성 감독 작품이 차지한 비율인 12.1%보다 2배 더 높은 수치이다. 시리즈 창작 인력 38.1%가 여성이며, 이중 여성 각본가의 비중은 46.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감독의 인종/민족 및 여성 비율은 백인 남성 감독 비중이 2018년 61.4%에서 2023년 44.1%로 줄어들었고, 백인 여성 감독은 25.6%, 그리고 비백인계 여성
감독은 5.9%에서 16.1%로 가장 큰 증가율을 나타냈다.

[표 1] 넷플릭스 시리즈 감독 인종/민족 및 성별 비율 (2018~2023년)
(출처: 「Inclusion in Netflix Original U.S. Scripted Films & Series」)
넷플릭스 포용성 보고서는 분명 다양성의 양적 지표가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캐릭터, 창작 인력의 수가 진정한 다양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소수자나
소외된 집단을 형식적으로만 포함시키면서 실질적인 권한이나 의미있는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이 전형적이다. 포용성 보고서에서도 젠더 균형을 갖춘 여성 서사의 관점을 지닌 콘텐츠의 비율은
35.8%로 낮아진다.
넷플릭스의 다양성 담론 뒤에는 글로벌 시장 확장과 수익 창출이라는 명확한 비즈니스 목표가 있다. 넷플릭스는 각 국가의 로컬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작하며 글로벌 다양성을 추구한다. 비영어
콘텐츠가 2021년 49%에서 2024년 55%로 증가했다는 수치는 이러한 전략의 성과로 제시된다. 그러나 로컬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넷플릭스의 제작 시스템과 글로벌 유통 전략에 맞춘 표준화된
상품으로 제작되며, 로컬 콘텐츠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팬데믹 시기, 시장에서 ‘다양성’을 무기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 했던 넷플릭스는 글로벌 지배적
사업자가 된 현재는 다큐멘터리 등 다양성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의 관객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스트리밍 점유율이 극장과 방송을 넘어섰다. 이는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유통
배급 경로가 다양해졌지만, 독립 콘텐츠 창작자들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플랫폼에 선택받지 못하면 관객을 만날 수 없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상업적 콘텐츠와 대규모 관객층을 확보할
수 있는 특정 장르에 과도하게 투자하고 있다. 이미 이용자들은 콘텐츠의 ‘과잉 공급’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이러는 사이,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다양성’은 이용자의 기존 취향을 강화하고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제한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정보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의 목소리로부터 소외시킨다. 이제 플랫폼의 시대는 단순히 콘텐츠 내용의 다양성을 늘리는 것을 넘어, 구조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공정책과 제도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다. EU와 캐나다에서는 새로운 플랫폼 환경에서의 다양성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EU는 2018년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Audiovisual Media Services Directive) 제정을 통해 현지 콘텐츠 30% 쿼터 및 재정적 기여 의무, 소수자 보호 등의
다양성 정책을 도입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에는 독립영화, 독립콘텐츠에 대한 투자 의무화를 포함했다. 또한 콘텐츠 할당제뿐만 아니라 해당 의무 콘텐츠를 플랫폼의 첫 페이지에 게재하는 검색
가능성을 높이는 조항도 포함했다.
캐나다는 온라인스트리밍법(Canadian Online Streaming Act)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연 매출 2,500만 캐나다달러(CAD) 이상을 기록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대상으로 캐나다 콘텐츠를 위한 기금 납부 및 다양성 지원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서 주목할 점은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들을 포함한 미디어들이 “인종적 차이가 있는 커뮤니티, 다양한
민족 문화적 배경, 사회 경제적 지위, 능력 및 장애,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연령 등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캐나다인의 요구와 이익에 부응해야 한다”는 핵심 가치를 법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관련 규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다양성 차원의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기획, 투자, 제작,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젠더, 장애, 다문화, 지역 등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거대 플랫폼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독립방송영상 콘텐츠와 독립 창작자에 대한 지원과 투자 의무화, 그리고 콘텐츠 산업 전반의 생태계 다양성을 위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U와 캐나다가 다양성의 가치를 플랫폼 규제의 핵심 근거로 삼았던 것처럼, 플랫폼 시대 다양성 정책에 대한 사회적 숙의 과정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우리 사회 전체의 다양성을 높일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 Stacy L. Smith(2025). <Inclusion in Netflix Original U.S. Scripted Films & Series>
- UCLA(2025). <2025 Hollywood Diversity Report-Part 1 Theatrical>
- UCLA(2025). <2025 Hollywood Diversity Report-Part 2 Streaming>
- Brian Welk, Tony Maglio (2023.3.31). Netflix Laid Off Its Doc and Indie DNA with Lisa Nishimura and Ian Bricke. <IndieWire>
- Canadian Heritage (2022.2.2.). Backgrounder: The Government of Canada introduces legislation to support the next generation of Canadian artists and creators.
- 1) 그 외 1%는 남녀 성비로 분류할 수 없는 LGBTQ 비율이다.
- 2) 미국 USC 산하 연구기관으로 미국 영화산업의 다양성 현황 조사를 실시해 포용성 지표를 제시했다. YTN, (2021.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