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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플러스 나비효과, ‘손 잡거나, 싸우거나’ : 콘텐츠 중심 경쟁구도

글. 최진홍(이코노믹리뷰 기자)

글로벌 OTT 시장의 준비된 강자인 디즈니 플러스가 11월 12일 등장한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으로 촉발될 새로운 전쟁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은 OTT 시장에서의 단순한 파급효과를 넘어 시장의 재편과 팽창, 나아가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을 촉진시킨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관전 포인트가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콘텐츠가 플랫폼을 살리다

디즈니는 원래 글로벌 OTT 강자인 넷플릭스와 밀접한 관계였다. 실제로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연 1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콘텐츠 제국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며 돈도 벌고, 자사의 콘텐츠를 넷플릭스의 풍부한 구독자를 통해 유통하며 브랜드 가치도 지켰다.

그러나 2017년 8월 디즈니는 결국 넷플릭스와 결별하고 만다. ‘콘텐츠 제국으로 군림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와 플랫폼 모두를 가지는 것’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명품가방을 만드는 장인이 쇼핑몰에 자기의 제품을 제공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명품숍’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과 비슷하다. 넷플릭스는 디즈니와 결별한 후 밀러월드(Millarworld) 등 만화사와 계약해 마블 디즈니의 빈공간을 메우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결별한 후 폭스를 품어낸 후 디즈니 플러스라는 새로운 OTT를 창출했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출시 첫날 1,000만 명의 유료 가입자를 모집했으며 시장조사업체 앱토피아에 따르면 출시 2주일 만에 다운로드 건수는 1,550만 건을 넘겼다. 디즈니 플러스의 구독료는 월 6.99달러다. 넷플릭스의 구독료와 비교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며, 글로벌 진출은 유럽과 아시아가 2020년, 남미는 2021년이다.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은 콘텐츠 파워가 플랫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콘텐츠와 플랫폼의 권력을 두고 ‘누가 더 힘이 강력한가’라는 논쟁이 일었으나, 최소한 OTT 시장에서는 콘텐츠가 플랫폼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이 확실시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디즈니 플러스의 성과로 잘 확인됐으며,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라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강렬한 존재감을 일으켰을 당시부터 예정된 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다. CJ ENM과 JTBC의 만남으로 더욱 강력해질 티빙은 국내 콘텐츠 강자로 부상한 CJ의 콘텐츠가 핵심이며, SK텔레콤과 지상파의 만남으로 등장한 웨이브도 지상파 콘텐츠가 중심이다. 전통의 OTT인 왓챠도 국내 영화를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CJ 계열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은 티빙을 선택하고 지상파 콘텐츠에 흥미를 느낀다면 웨이브를 택하는 분위기다. 한국 영화는 왓챠, 외국 드라마 및 영화는 넷플릭스를 선택한다. 즉 콘텐츠에 따라 OTT를 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콘텐츠제국의 디즈니는 자사의 강력한 자산을 통해 단독 플랫폼까지 거침없이 만들어가는 상황이다.

국내외 파급력…‘시선 집중’

디즈니 플러스가 초반 흥행에 성공하고 있으나, 이는 파격적인 프로모션 덕분이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Verizon)의 무제한 데이터 이용 소비자는 디즈니 플러스 이용권 1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디즈니가 가진 막강한 콘텐츠에 많은 사람이 매력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겨울왕국, 알라딘, 라이온킹 등 전통의 디즈니 콘텐츠를 비롯해 7,500편이 넘는 드라마와 500편 이상의 영화 콘텐츠가 디즈니 플러스 돌풍의 핵심이다.

해외를 기준으로 디즈니 플러스의 파급력을 보면 가히 ‘돌풍’이 예고되고 있다. 애플의 애플 TV+, HBO Max,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가 이미 출시됐거나 출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넷플릭스는 여전히 글로벌 플랫폼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서 디즈니 플러스는 각 플랫폼의 가입자를 빼앗아 오거나 혹은 콘텐츠 제휴의 그림을 그리며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핵심은 구독 비즈니스와 각자의 생태계가 가진 파급력에 있다. 대부분의 OTT들이 구독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장면은 곧 충성 독자의 확보를 의미하며, 초반 이들의 경쟁은 고유의 생태계 플랫폼 내부에서 벌어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폰을 사용하며 iOS에 익숙한 이용자라면 애플 디바이스를 통해 애플 TV 플러스를 택할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점에 착안해 성장한 플랫폼들은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며 콘텐츠 제국인 디즈니 플러스와 손을 잡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국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넷플릭스와 왓챠, 티빙, 웨이브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최근 티빙의 운영사인 CJ ENM이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을 매개로 넷플릭스와 손잡은 장면이 중요하다. 이어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웨이브를 가동하면서 공개적으로 아시아 콘텐츠 플랫폼 야망을 밝혔으며, 디즈니의 손을 잡으려는 분위기도 연출하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 더 정확하게는 콘텐츠 제국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에 많은 플랫폼이 합종연횡을 시도하며 소위 ‘판 짜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결론적으로 디즈니 플러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 OTT 사업자들의 손을 잡거나 혹은 대립하면서 필요한 상황에 따라 콘텐츠를 제휴하거나 혹은 대립각을 세우며 영역을 넓힐 전망이다. 시간이 흘러 출시국이 늘어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의 콘텐츠와 제휴하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혹은 제휴를 하지 않는 플랫폼들이 서로 손을 잡으며 ‘느슨한 디즈니 연합전선’과 ‘디즈니와 협력하지 않는 플랫폼의 집합체’로 시장이 양분될 수 있다.

승자독식? 시장은 커질 것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를 출시하며 무조건 모든 콘텐츠를 자사의 플랫폼에 담아 승부를 보려고 할까? 벌써 SK텔레콤과의 콘텐츠 제휴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있음을 고려할 때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디즈니 플러스는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자사의 콘텐츠를 통해 다른 플랫폼들과 ‘거래’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면서 로컬 제작자들에게 막대한 투자를 단행, 이를 바탕으로 윈윈하는 전략을 시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막대한 콘텐츠 제작을 지원, 이를 통해 로컬 전략을 완성한다. 로컬 제작자들에게 막강한 자금력을 쏟아부으며 그들이 만든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올리고, 이를 글로벌 시장에 소개한다는 개념이다. 로컬 제작자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고, 넷플릭스는 로컬 콘텐츠 시장을 휘어잡아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다. 아시아를 뒤흔드는 한류 콘텐츠에 넷플릭스가 집중하는 이유다.

디즈니 플러스가 콘텐츠를 바탕으로 로컬 플랫폼 및 콘텐츠 사업자들과 만나 느슨한 연대를 구축해 영역을 확장하면, OTT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예단은 금물이지만 현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는 승자독식보다 오히려 시장이 커지는 순기능이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이는 OTT 시장의 경쟁이 말 그대로 OTT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스트리밍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사실 ‘OTT 시장만의 경쟁’은 성립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넷플릭스가 지난 1분기 실적발표 후 자사의 경쟁상대를 디즈니나 애플이 아닌 구글의 포트나이트 게임을 지목한 이유는, 결국 ‘전체 스트리밍 시장에서의 경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OTT를 택하는 사람들은 여가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서비스를 실행하고, 이들은 언제든 OTT로 영화를 보다가도 클라우드 게임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OTT 시장의 경쟁이 벌어져 특정 플랫폼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일은 벌어지기 어려우며, 디즈니 플러스와 넷플릭스는 물론 구글의 클라우드 게임인 스태디아, 애플 아케이드 등 게임을 비롯해 인터넷 쇼핑과 서핑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런 상황에서 OTT 내부에서 디즈니 플러스로 인한 경쟁이 촉발되어도 승자독식보다는 OTT가 전체 스트리밍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라가는 현상만 벌어질 것이다.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다. 디즈니 플러스의 등장은 OTT 시장의 유기적인 연합과 국지전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고 이 과정에서 시장 자체가 커지며 전체 스트리밍 시장의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체 시장의 전투를 이런 관점에서 보며 최후의 승자를 굳이 예측한다면, 그는 ‘이용자의 시간을 빼앗는 자’일 것이다. 구독 비즈니스 안에서 OTT는 물론 게임과 쇼핑 등 많은 서비스를 최대한 많이 제공하는 플랫폼이 웃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OTT가 큰 역할을 할 것이고, OTT 역할론의 핵심에는 디즈니 플러스라는 ‘콘텐츠 제국 + 플랫폼 강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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