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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도시 옮기기 놀이

여행 프로그램 열풍 들여다보기

글. 고재열(여행 감독)

방송 프로그램은 시대상과 사회의 트렌드 그리고 시청자의 욕망을 반영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특히 그렇다. 〈바퀴 달린 집〉(tvN), 〈나는 차였어〉(KBS Joy), 〈갬성 캠핑〉(JTBC) 등의 캠핑 예능과 〈요트원정대〉(MBC every1), 〈바닷길 선발대〉(tvN) 등의 요트 예능이 시사하는 지점은 뭘까.

도시를 구현한 자연 속을 여행하다

코로나19 창궐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가려는 성향, 그리고 남들이 못 해본 것을 먼저 경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바퀴 달린 집〉 등의 캠핑 예능과 〈요트원정대〉 등의 요트 예능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냉혹한 현실이 이런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부흥을 이끌었다.

과거에 해외여행 프로그램에 묻혀 ‘마이너리그’에 불과했던 국내여행 프로그램이 각광받게 된 데는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해외여행 프로그램은 제작할 수도 없지만 제작한다 하더라도 손에 닿을 수 없는 이야기라 당분간은 국내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기존에 아웃도어 활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공정캠핑(내가 캠핑을 한 곳을 내가 오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고 오는 캠핑)’이나 ‘업트래블링(내가 여행한 곳을 내가 오기 전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오는 여행)’ 등의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구현된 여행은 시청자들의 욕망에 충실하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탄착점은 여행 현장에서 나타나는 욕망의 발현과 대체로 일치한다.

여행 예능이 구현하려는 시청자의 욕망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연이 주는 감성은 즐기되 도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 예능의 근간에는 ‘도시 옮기기 게임’이 깔려있다. 〈정글의 법칙〉(SBS)처럼 자연이 주는 불편함을 감당하거나 〈나는 자연인이다〉(MBN)처럼 그 불편함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얼마나 옮기느냐가 관건이다.

도시를 옮긴다는 것은 도시에서 누리는 의식주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의 낭만은 즐기고 싶지만 편안하고 따뜻하게 자고 싶고 도시에서 먹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먹고 싶어하는 도시인의 욕망을 구현해준다. 도시를 구현하지 못하는 오지에서도 나름의 ‘최소 도시’를 구현한다. 캠핑 후 새벽에 일어나서 내려 마시는 한 잔의 드립 커피가 그런 ‘최소 도시’일 수도 있다.

자연으로 들어가면서 도시를 구현한다? 이런 역설이 발생하는 것은 현대인의 이데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명은 자연을 복제한 것이라는 이데아는 이제 탈락되었다. 장범준의 노래 중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라는 가사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전 샴푸 광고는 샴푸향이 자연의 향을 닮았다고 강조했는데 이제 자연의 향이 샴푸향을 닮아서 좋다고 말하는 시절이 된 셈이다.

가끔 산행에 후배들을 데려가면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대해 “에어컨 바람 같아서 좋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에어컨 바람이 자연의 바람임을 강조했는데 이제 자연의 바람이 에어컨을 닮아서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언제든 시원한 바람을 내가 원하는 만큼 제공해주는 에어컨이 바람의 이데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소한 언어 패턴에도 자연과 문명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도시를 구현하는 일은 현대인에게 선을 행하는 행위가 된다.

여행 예능에 불어온 ‘장비빨’

여행 예능에는 자본주의 논리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여행 예능의 변화 양상을 보면 레저 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인당 GDP 3만 불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도시를 옮기기 위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이런 소비를 더욱 부추겨서 레저 산업이 조용히 폭발했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은 잉여의 소비를 여가에 쏟았고 그것은 극심한 장비주의로 나타났다. 캠핑카나 카라반은 몇 달 혹은 몇 년 치 주문이 밀려있는 상황이다.

도시를 옮기는 일이 예전보다 수월해졌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 양상을 보면 도시에서 전원으로, 전원에서 오지로, 오지에서 바다로 점점 더 파고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만 불 시대와 코로나19가 결합하면서 여가 비용이 증가하게 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바다 레저는 사실 일반적이지 않다. 바다로 가면 돈이 든다. 돈을 들인 만큼 안전하고 또 돈을 들인 만큼 성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여행 예능의 무대가 바다로 옮겨진다는 것은 계단을 걷던 사람이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기 시작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산업의 발전도 이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캠핑박람회는 간단한 오토캠핑을 위한 장비보다 모빌 홈(이동 주택), 카라반 트레일러 등 대형 장비들이 주연이다. 최근의 캠핑 예능에서 나타나는 장비주의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캠핑박람회보다 더 각광받고 있는 것이 바로 낚시박람회다.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캠핑박람회에는 부스를 차리지 않아도 낚시박람회에는 부스를 차린다. 〈요트원정대〉와 〈바닷길 선발대〉는 낚시에서 더 나아가 바다를 탐험한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장비주의 여행을 부추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예능에서 합리적이고 소박한 여행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안락한 도시를 그대로 옮겨 야외에서 즐기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이 여행 예능 열풍의 주축이기 때문이다. 〈나는 차였어〉에서는 극단적인 차박 캠핑이 자주 나타난다. ‘빽가 편’의 대형 텐트를 비롯해 대부분 현대 핵가족이 활용하기에는 ‘TME(Too Much Equipment)’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의식주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구축하는 수준이다.

이전까지 아웃도어의 흐름은 미니멀리즘 캠핑이었다. 차박 캠핑도 원래 미니멀리즘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었다. 애초 차박은 캠핑의 대안으로 출발했다. 캠핑 장소로 부적합한 곳에서 조용히 차 안에서 자고 가기 위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차박 캠핑은 차를 품은 캠핑으로 극심한 장비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차박 캠핑은 일반 오토캠핑보다 훨씬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훨씬 더 많은 장비를 요구한다. 방송은 마치 그것이 차박 캠핑의 전형인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 또한 현대 도시인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다.

‘캠핑 = 잘 쉬다오는 것’이라는 공식

한국인의 여행 성향도 한몫한다. 사실 우리의 여행 전통이 그랬다. 대학시절 MT도 술자리가 절반이었고 이후 가족 단위로 이용한 콘도나 펜션에서도 이런 문화가 이어졌다. 야외에 가서 먹고 마시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도모할 겨를과 여유가 없었던 셈이다.

유재석과 이효리가 주축이었던 〈패밀리가 떴다〉(SBS)나 강호동, 이수근 등이 주축이었던 〈1박 2일〉(KBS2)과 같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은 대학시절 MT를 연상시키는 구성이다. 여성 멤버가 출연하는 〈패밀리가 떴다〉가 남녀공학인 문과대학의 MT라면 〈1박 2일〉은 남학생만 주로 있는 공과대학 MT 분위기라는 차이 정도가 있었다

캠핑 예능이 반영하는 양상 중 하나는 액티비티가 아니라 숙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우리의 아웃도어 문화다. 외국의 캠핑은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액티비티가 중심이다. 숙식은 단지 거들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캠핑장에 가면 캠핑 사이트를 구축하고 해체하는 데 시간의 절반을 쓰고 나머지 절반은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데 쓴다.

그러다보니 캠핑이라고 하면 캠핑장에서 내 텐트가 있는 공간, 그 공간 중에서도 화롯불을 중심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는 테이블로 한정된다. 바쁜 현대 도시인들이 준비할 수 있는 캠핑은 거기까지다. 숙식에만 집중해도 ‘잘 준비된 캠핑’으로 평가받는다. 도시의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이다.

〈바퀴 달린 집〉은 도시를 옮기고 싶다는 욕망의 결정체다. 최소 도시가 아니라 최대 도시를 구현한다. 〈바퀴 달린 집〉의 세트장은 구현하지 못한 도시가 없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출연자들은 안락하게 대화를 나눈다. 자연은 그저 병풍처럼 보일 뿐이다. 이를테면 ‘현대인을 위한 정자’인 셈이다.

여행 예능은 현대 도시인의 여행이 그렇듯 ‘도시 옮기기 게임’에 갇혀 있다. 이런 딜레마에 답을 제시해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까지 나아가는 프로그램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도시 옮기기에 지치면 언젠가 새로운 여행을 찾을 것이고 여행 예능 프로그램도 그런 트렌드를 반영해서 달라질 것이다. 현대인의 욕망을 반영한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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