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ZERO to ONE Insight

[스타트업 인터뷰]

택시 광고를 넘어 데이터 사업으로

모토브 임우혁 대표

글. 조영신(SK브로드밴드 그룹장) /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서울역을 지나던 중 마주친 택시의 넓고 긴 캡 모양이 특이했다. 더구나 그곳에 디지털 사이니지가 돌아가고 있었다. 택시 캡을 이용한 이 광고 서비스는 모토브의 작품이었다. 여기는 글로벌 기업인 우버(Uber)가 시장을 차지하지 못한 곳, 타다가 택시 사업을 접고 물러서야 했던 그 곳, 한국이다. 카카오택시조차 택시를 직접 인수해서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한국에서 새로운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노력과 끈기로 차지한 행운

2012년부터 택시 캡을 광고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영국, 홍콩 등지에서 택시 캡에 광고를 붙이기 시작했다. 다만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대부분은 텍스트로 된 광고를 붙이는 것에 그쳤다. 아이디어 강국 한국은 2002년부터 이 꿈을 꾸었다. 그러나 이내 좌절했다. 택시는 엄격한 규제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택시 위에 규격과 다른 캡을 올리는 것도 불법이었고, 거기에 광고를 싣는 것도 불법이었다. 형식적으로나마 광고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2013년에 택시발전법이 시행되면서 부터다. ‘택시 기사의 수익과 복지를 높일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서야 겨우 광고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차량에 랩핑을 해서 광고를 하는 것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택시 캡은 불가촉영역이었다.

택시에 대한 규제는 국토부 소관이지만, 옥외광고는 행안부 소속이다. 그래서 전국옥외광고협회와 손을 잡고 법을 바꾸었다. 그게 2015년이었다. 2002년에 품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기본 토양을 만드는 데에만 13년이 걸렸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지쳤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뀌고, 물적 토대가 바뀌는 시간이다. 충분히 지칠만했다. 그렇다고 아이디어를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서 이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기회를 얻은 것이 바로 모토브였다. 대부분의 혁신이 서울이라는 지역에 갇혀 있었는데, 택시 관련 혁신이 대전에서 시작하게 된 배경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대전택시조합 이사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전에서 시범 사업이 시작되었다. “대전 찍고”의 시작이다.

  • 모토브 임우혁 대표

사업도 운이라고 하지만 그 운이 저절로 찾아오는 건 아니다. 운도 사람을 가려서 온다. 모토브도 그 운 하나를 받는데 십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모토브는 2007년도에 사업을 시작했다. 스타트업이란 용어가 등장하기도 전이다. 창업이라고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던 그 시절의 이야기다. ‘아이그로브(상상의 숲)’라는 이름을 달고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40명 규모로 늘기도 했지만, 이내 줄어들었다. 풍파를 거치다 LG CNS와 버라이존이 손잡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3G를 활용한 택시 미터기 솔루션 사업이었다. 북미의 결제시스템, 정책 등을 한국이 따라가고 있던 시기라 임우혁 대표는 곧 이 사업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미터기의 데이터 처리가 메인이었다면, 한국에서는 광고가 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입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2015년에 돌파구를 찾게 된다.

2015년에 택시에도 디스플레이형 광고를 게재할 수 있는 법이 통과되어 2016년에 첫 고시가 나왔다. 디자인이정해졌지만 아쉽게도 해당 디자인으로는 서비스를 할 수가 없었다. 택시가 달릴 때 바람을 받으니 원래의디자인으로는 차 내부에 들리는 소음이 너무 컸던 것이다. 영업을 할 수가 없다는 기사들의 반발로 디자인 수정에 다시 1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2016년 11월, 새 디자인을 제안함과 동시에 사업의 목표 중 하나를 '택시 기사의 처우 개선'이라는 방향으로 잡았다. 정부에서도 택시업계의 처우 개선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터라, 광고로 추가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으로 택시 기사의 복지에 기여하겠다는 제안이 조금씩 동의를 받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10만 원을 기사님들께 드렸더니, 택시 보수 비용으로 그 돈을 쓰시더라고요. 인천에서는 시간당으로 계산해 200시간에 11만 원, 320시간에 15만 원 이런 식으로 드려봤어요. 그랬더니 기사님들도 광고를 더 오래, 더 많이 노출시켜 더 큰 금액을 받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사님들 말씀이, 그 금액을 모아 차를 바꿀 때 인도금으로 쓸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주행시간 및 수익을 계산할 수 있는 모토브의 기사 전용 앱

출처 : Google Play

고비를 넘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디지털 사이니지, 광고 사업, 4차 산업혁명 등 제법 이름만 붙이면 돈이 될 만한 것들이 많은데도 투자를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50여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정부의 시범 사업은 2017년 6월 대전에서 처음 시작했다. 택시운송조합의 도움을 받아서 200여 대의 택시에 디지털 사이니지 캡을 달았다. 그러자 이번엔 제작에 드는 가격이 문제였다. 제작한 캡이 얼마나 버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투자를 받으러 갈 때마다 다들 하드웨어 가격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설치 후 3년 정도만 버텨주면 비싼 가격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3개월마다 디스플레이 성능을 측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택시는 광고판이기 이전에 생명을 지켜야 하는 차량이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라는 예민한 하드웨어를 자동차 바깥에 장착하고 눈과 비에 노출된 채 달려야 한다. 여름에는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튼튼하게만 만들면 미관상 좋지 못했다.

“1년 반 동안 계속해서 제품을 개선해나갔습니다. 디자인도 뛰어나고 콘텐츠 전달도 잘 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2019년 1월, 인천에서 시범사업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더 나아진 제품으로 인천에서는 대전보다 커진 규모로 총 300대를 운행했습니다.

제품의 수명도 다행히 3년을 넘겼습니다. 현재 판단으로는 5년은 넘기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데이터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투자자들의 시선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 ‘이거다’라고 단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드웨어 등의 안정성에 이의를 다는 분들의 숫자가 줄었거든요. 설사 질문을 하더라도 우리가 내미는 자료를 보면 다들 고개를 끄덕거려 주셨습니다.”

제조비가 하나에 200만 원대. 대전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는 350만 원이었다. 그때보다는 금액이 저렴해졌지만 광고라는 건 서울에서 멀어진 지역으로 갈수록 광고비도 그만큼 떨어지는 법이다. 서울에서의 사업 레퍼런스가 없으면 금액 격차를 좁힐 수 없었다. 따라서 모토브의 목표는 이제 수도권으로의 확장이다.

“2019년 4월부터 인천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300대의 택시가 모토브의 광고 표시등을 달고 인천 시내를 돌고 있습니다. 2020년 7월부터 서울지역에서도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200대의 서울 택시 위에 광고판이 올라가 있습니다. 서울시는 전체 서울 택시의 20%까지 택시 표시등을 달 수 있게 허가를 해 주었지만, 모든 택시에 표시등이 달리는 순간 특별함은 사라지고 주목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적정 비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신기함을 넘어서 주목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숫자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광고 효과

현재 택시 표시등의 광고 가격은 CPM(1,000회 광고를 노출시키는 데 사용 된 비용) 기준으로 인당 1원꼴이다. 모토브는 고객이 택시 표시등을 옥외광고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옥외쪽 구좌와 디지털 구좌를 구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퍼포먼스 광고와도 부분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예로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 짬뽕집이 광고를 하고 싶다고 해서 10만 원을 받고 5km 이내에서 광고를 적용했습니다. 광고를 찍어오면 1,000원 할인을 해 준다는 내용이었는데 하루에 2~5개 팀이 실제로 광고를 활용해 할인을 받았어요.”

5,000원짜리 짬뽕의 마진율을 30%로 잡고, 하루 평균 3개 팀이 한 달 동안 온다고 하면 대략 10만 원을 광고비로 써서 135,000원의 이익을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해당 짬뽕집은 소액 광고를 지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소상공인이 10~20만 원을 쓰면서 할 수 있는 옥외매체는 현실적으로 없기에 모토브의 시스템이 지역 광고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마트, 현대백화점과도 테스트 광고를 해 보았는데 현대백화점의 한 지점 대표님은 폰트 등을 조정하면서까지 세세하게 저희 광고를 보시더라고요. 어떤 가능성을 보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광고를 생각하다 보니 데이터가 보였다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광고 사업은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버스 광고 시장이다. 사업자들의 경쟁도 치열했고, VC(벤처캐피탈)들의 관심도 높았다. 지하철 광고가 스마트폰에 처참히 무너지는 것을 본 사업자들은 동영상과 디지털 사이니지를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광고에 희망을 품었다. 일정 노선을 반복적으로 운행하는 버스의 특성상 고객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고 시장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승객이 많아질수록 광고 효과가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버스가 만원이 되면 버스 안에 설치된 광고 화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는 선발주자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다시 데이터였다. 택시 표시등에 미세먼지, 온도, 악취, 지능형AP 등의 센서를 탑재했다. 택시 운행 중에 주변의 사람이 몇 명인지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성비 및 연령대를 추정하고, 이에 기반해서 광고 타깃팅을 할 수 있는 데이터를 체계화했다. 예를 들어 대기 온도와 습도는 화장품 회사의 니즈로 이어졌다.

“외부의 조도에 맞추어 디스플레이의 밝기를 조정하는데, 외부 조도 자료를 데이터화했더니 인천 부평구 지자체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골목별로 조도가 파악되면 가로등이나 방범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광고 사업자가 아니라 데이터 사업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자료가 더 축적되면 경찰차의 순찰 루트도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서 초기에는 택시 표시등을 통한 광고 사업이 업의 본질이었지만, 이제는 택시를 활용한 도시 공간 데이터 판매 사업자로 발전하려는 중입니다.”

42개월간 진행한 누적 테스트가 128만 시간을 넘는다. 조금 과장되게 보자면 구글의 웨이모가 120만 시간 정도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니 모토브를 통해 도시의 데이터를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모토브를 택시 디스플레이 장치를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하시지만, 주 상품은 디스플레이를 컨트롤하는 ‘엣지박스’입니다. 이 박스를 기존의 디지털 사이니지에 연결하면 데이터화 된 것들이 똑같이 적용될 수 있거든요. 내년에는 모토브라는 미디어플랫폼과 옥외 광고의 믹스 시도를 해 볼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모토브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VC들의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 예전엔 50여 곳의 투자사에서 거절을 당했던 임대표지만, 최근에는 알토스벤처스, TBT, 스파크랩스에서 6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규제에 부딪치면서도 뚝심 있게 4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는 것이 투자를 받은 이유가 아닐까. 기술도 기술이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면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 준 것일테다. 이런 뚝심으로 데이터 판매라는 새로운 영역에서까지 멋진 날개를 펼치길 기대해본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