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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3

TV 다큐, 20대의 ‘좋아요’를 받고 싶나요?

20대 시청자가 바라본 지상파 방송 다큐멘터리

글. 이하은(MBC청년시청자위원 3기)

누구보다 스마트폰을 많이, 그리고 잘 활용하는 MZ세대. 그들이 짧고 간단한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에 여전히 방송 다큐멘터리의 자리는 없다. 20대와 지상파 방송 다큐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은 무엇일까?

카톡 알림을 확인하며 눈을 뜨고, 버스에선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수시로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며, 저녁엔 유튜브 먹방 라이브를 보면서 정리하는 하루.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0대의 34.5%, 20대의 27.8%가 하루에도 여러 번 OTT를 이용하고, 적어도 하루에 한 번 OTT를 사용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각 연령대의 50%를 넘는다.1) MZ세대는 리뷰를 작성하고, 별점을 매기며 어느 때보다도 다양해진 콘텐츠를 여러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누린다. 그 대화 속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SBS)나 〈PD수첩〉(MBC)과 같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 다큐멘터리는 안타깝게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하지만 20대가 웃기고 자극적인 영상, 짧고 간단한 콘텐츠, 밈과 짤에만 관심이 기울었기 때문에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다큐멘터리는 안중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달 전만 해도 내 주변의 SNS와 단톡방에서 가장 화끈했던 이야기거리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였으니까.

TV 다큐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는 브이로그

우선, 방송 다큐멘터리가 아니어도 알찬 정보와 여운이 남는 메시지를 주는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졌다. 방송 다큐의 경쟁 대상은 시사교양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예능, 유튜브, 여러 OTT, 웹툰, 웹소설, 그리고 뉴스까지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지금 다큐멘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브이로그다. 방송 다큐는 브이로그의 리얼리티를 따라갈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 사실적인 내용을 담은 영상물을 뜻하는 다큐멘터리는 제작자의 의도적인 연출을 최소화하고 사건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주된 목표다. 하지만 개인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직접 촬영한 브이로그보다 어떻게 더 ‘리얼’할 수 있을까? 브이로그의 길이는 보통 20분 내외로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어 효율성과 접근성도 뛰어나다. 내가 사용한 시간만큼 확실한 정보와 즐거움을 얻고 싶은 20대에게 리얼리티 콘텐츠로 이보다 더 적합할 수는 없다. 국민들의 스마트폰 기기 보급률이 올라간 만큼 브이로그를 업로드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이 증가한 것도 강점이다. TV를 틀지 않고 유튜브 검색창에 브이로그 한 단어만 입력해도 육아하는 10대 엄마부터 공시생, 파일럿, 고등학교 교사, 식당 자영업자, 편의점 알바생, 시각장애인, 그리고 코로나19 확진자까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만날 수 있다. 코로나 의료 병동 간호사의 이야기를 찾아 〈SBS 스페셜〉(SBS)을 보는 게 아니라 간호사가 직접 찍어 올린 브이로그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방송 다큐멘터리가 오로지 리얼리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브이로그로 대체될 수는 없다. 시사 이슈나 사회문화적 현상을 다각도로 통찰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방송 다큐, 특히 공영 방송 다큐멘터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면에서도 방송 다큐는 20대에게 와닿는 해석을 제시하는 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방송 다큐에는 1020이 없다

이제까지 여러 다큐 프로그램들이 현실에 지친 학생, 학교 밖 청소년, 취준생, 대학생, 직장인의 이야기를 담아 왔지만 젊은 세대는 늘 카메라 뒤 사람들에겐 타자로 분리되었고, 영상에서는 같은 위치에서 건네는 공감보다 ‘요즘 애들’을 분석하려는 시도와 연민, 무책임한 응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수도권 중산층 비장애인 중년 남성의 관점에서 영상이 진행된다는 점이 방송 다큐를 시청하면서 느껴지는 거부감의 주된 이유다. 최근 시작한 시리즈 지식 다큐멘터리 〈링크〉(KBS1) 4화는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을 키워드로, 폭등하는 집값에 부동산을 구하기 어려워진 밀레니얼 세대를 다뤘다. 아이가 있는 택배노동자, 결혼을 앞둔 스타트업 CEO, 프리랜서 예술인이 각자의 브이로그를 찍는 형식으로 요즘의 트렌드를 따라갔지만, 결국 중요한 이야기는 성공한 기성세대가 이들에게 전하는 충고와 조언으로 전달되었다. 반면, 똑같이 밀레니얼 세대의 집 구하기를 주제로 한 ‘듣똑라’ 유튜브 채널의 〈2030을 위한 부동산 기초 지식(+부동산 정책 총정리)〉 영상은 시청자를 무주택 1인가구라고 가정하고 패닉바잉(최대한의 물량을 확보하려는 시장심리의 불안으로 인해 가격에 관계없이 발생하는 매점·매석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와 23번 바뀌었다는 부동산 정책을 쉽게 설명한다. 1인가구에 초점을 둔 연구와 부동산 정책이 빈약하다는 것을 짚으며 “우리 같이 공부해봐요”라고 말하는 듣똑라와 기혼 남성인 서울대 교수가 ‘영끌’이 가능한 일부 청년에게 부동산 함부로 사지 말라고 말하며 끝나는 〈링크〉를 본 젊은 세대의 감상은 크게 다를 것이다.

타깃 시청층을 구체화할 수 없는 지상파 방송사의 특성 때문에, 다큐멘터리 속 청년들은 각기 다른 계급, 성별, 지역 등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주체들임에도 ‘위기를 겪고 있는 청년’으로 뭉뚱그려져 일반화되는 것도 20대의 시청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그리고 이 ‘청년의 위기’는 출연진과 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로 20대 중반 남성이 등장하면서 ‘청년 남성’의 위기로 표상되는2) 경우가 잦다. 1020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어도 이미 여러 매체와 언론이 대변하고 있는 수도권 고학력 남성의 입장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그 안에 속하지 않는 시청자들은 더 등을 돌리는 양상이다.

변화를 모색하는 다채로운 시도들

그렇다고 해서 방송 다큐멘터리가 제자리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급속도로 바뀌는 미디어 소비 행태에 따라 지상파 다큐 프로그램들도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며 이런 시도들은 대개 토크, VR, 실험 다큐, 아카이브 등 형식과 구성에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다큐 인사이트〉(KBS1)의 ‘시청률에 미친 PD들’은 고참 PD와 신입 PD가 유튜브에 도전하고 구독자 수로 경쟁하는 구도의 기획이다. 시청자들이 방송 외적인 콘텐츠인 유튜브 채널에 실시간으로 참여하며 프로그램 제작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형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궁금해하는 유튜브 플랫폼의 생태계와 유튜버의 현실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인터뷰, 토크, 추적, 재현 등 다큐의 여러 양식이 흥미롭게 결합된 〈다큐플렉스〉(MBC)의 ‘콜드케이스’는 디지털로 눈앞에 펼쳐진 사건 현장에서 패널들이 단서를 찾고 유가족을 직접 만나며 프로파일러의 수사 과정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담아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등장한 시도도 있다. 〈다큐멘터리 3일〉(KBS1) 644회 ‘당신의 2020 여름은 그래도 빛난다’는 팬데믹 상황 속 일상을 촬영한 시청자들의 영상 170여 개를 제작진이 편집한 다큐멘터리다. VJ가 된 시청자들이 찍은 이 날것의 영상들은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내레이션과 자막을 만나 익숙하면서도 역동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이렇게 방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 지상파 방송 다큐멘터리의 강점 중 하나다. 방송 아카이브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정리한 〈모던 코리아〉(KBS1)는 정치 이념에 따라 움직였던 공영방송을 스스로 성찰하며 되돌아본다. ‘아카이브 휴먼 다큐쇼’를 내세운 〈선미네 비디오 가게〉(SBS)도 아카이브 영상에 묻은 시간이 출연자의 삶에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 시청자들을 더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이끈다. 〈다큐플렉스 - ‘청춘다큐 다시 스물, 커피프린스’〉(MBC)나 〈다큐 인사이트: 개그우먼〉(KBS1)같이, 최근 가장 화제가 되었던 다큐 프로그램이 결국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통 다큐멘터리를 벗어나 다양한 다큐를 접할 수 있는 점에서 이런 변화들이 긍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20대도 열광할 TV 다큐를 기다리며

지상파 방송사가 가진 자원과 기술을 활용한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의 〈플라스틱, 이젠 진짜 답이 없습니다. 재활용도 안 된대요.〉 영상만으로도 증가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다큐프라임〉(EBS) ‘인류세’ 3부작으로 그렇게 쌓인 플라스틱이 다른 국가로, 바다로, 먹이사슬 가장 아래의 생물들로 흘러 들어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큰 흐름을 알 수 있다. ‘범 내려온다’에 중독되어 이날치 밴드에 대해 직접 인터넷을 서핑하며 찾는 것보단 〈SBS스페셜〉(SBS) ‘이날치 밴드’편을 한 시간 동안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다만, 지금 변화를 추구하는 다큐 프로그램들은 신선한 형식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자체에는 소홀해진 느낌이다. 2030에게 인기 있는 시사 교양 유튜브 채널들의 영상은 인터뷰 대상이 말하는 모습이 담담하게 들어간 화면과 흰색 고딕체 자막이 전부다. 방송 다큐는 전하고 싶은 내용과 메시지의 구성을 탄탄히 다져야 하며, 사회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나 집단, 또는 특정 담론 하나를 집중해서 조명하는 것에 두려움을 없앨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좋은 기획 아래 두세 편 이상의 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자본이 있는 지상파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지상파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하고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유튜버 ‘킴닥스’의 NGO단체 밀착취재 웹다큐 〈기부금을 추적하다!〉는 기존의 방송 다큐 문법과 유튜브가 만나 새로움을 주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영상 소개란을 통해 NGO 단체를 위한 기부 링크가 직접적으로 제시된 것도 인상적이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 요약 영상을 올리는 것 외에도 SNS와 OTT 플랫폼을 활용해 시청자를 방송 다큐 앞으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OTT 플랫폼에 접속하면 첫 화면에 화제가 된 이슈나 배우와 관련한 예전 드라마와 영화를 추천 리스트로 내보여주듯이, 지금의 사회적 현안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다. 〈땐뽀걸즈〉가 다큐멘터리에서 영화화되었듯 다른 장르로, 다른 플랫폼으로 이어져 파생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방향도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아마존의 눈물〉(MBC), 〈한반도의 공룡〉(EBS) 등으로 다큐 프로그램이 크게 주목받던 2000년대처럼 방송 다큐멘터리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TV 다큐멘터리를 즐겁게 보는 시청자로서 MZ세대도 공감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어 20대도 자주 찾는 콘텐츠로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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