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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 지상파가 왜 이래?

다매체 시대 지상파 예능의 활로

글. 김호상(KBS 제작2본부 대형이벤트 방송사업단장, PD)

현재 지상파는 다매체 시대를 맞아 하염없이 위상이 추락하고 있고 경영수지 또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지상파는 종편이나 케이블, 유튜브에 뺏긴 시청자를 다시 찾아 올 기회로 보고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 여러 위기와 고민 속에 있는 요즘, 테스형에게 묻고 싶다.
“아~테스형! 지상파가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지난 9월 30일 KBS는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이하 나훈아 쇼)를 방송했다. 필자는 이 특집의 제작을 총괄하는 대형이벤트 방송사업단장으로서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낳아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축하와 감사의 메시지를 받고 있다. 이번 〈나훈아 쇼〉는 방송가에 상당한 파장이 있었는데 KBS는 모처럼의 축배를, KBS를 제외한 지상파 방송사들은 울상을 지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번 〈나훈아 쇼〉의 방송 흥행을 계기로 지상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 다매체, 언택트 시대를 맞아 위기의 지상파가 찾아야 할 활로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1. 지상파의 장점을 활용하자

지상파가 종편채널 혹은 CJ ENM에 비해 제작비도 적고 방송 심의도 까다롭고 소재 제약도 많은 현실에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는 힘들다. 또한 유튜브 콘텐츠도 넘쳐나고 있는데 지상파가 유튜브 채널과의 경쟁에서 기민하게 움직여 트렌드를 쫓아가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지상파는 지상파가 잘하고, 종편에서 따라할 수 없고, 유튜브에서는 엄두를 못내는 대형기획을 함으로써 역시 ‘지상파 예능은 다르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제작비 여건상 자주 할 수는 없겠으나 임팩트가 있는 대형기획을 한다면 이번 〈나훈아 쇼〉와 같은 기획이 게임체인저1) 역할을 할 수 있다.

〈나훈아 쇼〉는 섭외부터 기획, 구성, 녹화 및 방송까지 8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섭외 자체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고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다른 여타 특집 예능 프로그램보다 기획 기간이 길고 제작비도 많이 투입 되었으며 KBS가 할 수 있는 전사적(全社的)인 홍보와 지원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나훈아’라는 독점적이고 유일무이한 콘텐츠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도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이 이런 콘텐츠의 기획과 섭외에 있다는 얘기다.

2. 한 번만 볼 수 있기에 가치 있는 콘텐츠

이번에 〈나훈아 쇼〉의 시청률 흥행 요인 중에서 ‘다시보기 서비스가 없다’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넘쳐나는 예능과 드라마의 인기 콘텐츠는 언제라도 내가 보고 싶을 때 다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15년 만에 방송에 나타나 콘서트 표도 구하기 어려운 나훈아를 이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데, 이를 ‘본방사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추석에 나훈아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도 빨리 부치고 저녁도 일찍 드시게 한 뒤 TV앞에 데려다 놓았다. 중간광고가 없다보니 요즘 보기 드문 전CM(방송 전 광고)을 10분이나 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아직도 콘텐츠만 좋으면 시청자를 붙들어 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현상이었다. 물론 ‘나훈아’라는 킬러콘텐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예고

출처 : KBS 한국방송 유튜브

3. 진화하는 언택트 공연, 지금이 적기

원래 〈나훈아 쇼〉는 야외 대형공연으로 기획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불가 피하게 실내로 들어와 녹화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발생했다. 악단만 해도 ‘50인 이상 실내 집합금지’ 규정을 초과해 녹음실에서 파트별로 사전녹음을 했고, 영상은 따로 찍어서 무대 LED 화면에 띄우는 작업을 했다. 대합창도 마찬가지였다. 사전녹화한 악단과 합창이 공연 현장에 있는 듯 연결한 시도를 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또, 언택트 공연을 하니 오히려 전 세계 팬들을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어서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아프리카 짐바브웨 가정의 귀여운 손녀의 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일부 아이돌 팬들은 코로나19 상황 속 이미 언택트 공연을 관람해 봤을 수도 있겠지만 〈나훈아 쇼〉를 통해서 언택트 공연이 어떤 것인지를 이제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당첨된 1,000 가구의 방청 화면이 모니터에 띄워지고, 객석까지 LED 화면을 둘러 360도로 꽉 찬 모습을 봤을 때 제작진도 전율을 느꼈다.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언택트 공연’

출처 : KBS 한국방송 유튜브

언택트 공연의 또 다른 핵심은 AR(증강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존의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래픽을 좀 더 자유롭게 구현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볼거리가 더 확장된 것이다. ‘고향역’ 무대에서 큰 기차가 터널을 지나가고,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용이 천장을 날아다니고, 화산이 폭발하고, 마지막에는 그 불길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태우는 장면 모두가 무대에는 없지만 특수 카메라에만 나타나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의 발전으로 야외공연이 불가능한 코로나19 시대에 언택트를 통해 공연을 이어나갈 수 있다.

4. 중장년 콘텐츠의 흥행가능성

지상파 광고 타깃의 정석처럼 말하는 2049(20~49세) 시청 층은 지상파 플랫폼에서 놀지 않고 유튜브와 SNS에서 놀고 있다. 2049를 겨냥한 지상파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반면 시청률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약간은 올드한(?) 프로그램들이다. 지상파 예능PD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시청률을 노리자니 너무 익숙한 포맷이고, 2049를 노리고 트렌디하게 만들면 시청률이 안 나와서 고민이고….

〈나훈아 쇼〉의 경우 주 시청층이 우리네 어머니 혹은 할머니 세대라 프로그램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어르신이 보다 보니 그 아들, 딸에 손자들까지 앉아서 3대가 함께 보는 시청 패턴을 보이기도 했다. 20대 대학생이 ‘엄마·아빠를 따라 보다가, 이제는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보러 가려고 티켓팅 해야겠다’고 단 인터넷 댓글을 보면 〈나훈아 쇼〉는 새로운 2040 세대들을 팬 층으로 많이 끌어들인 것 같다. 그 결과 BTS, 블랙핑크를 제치고 나훈아가 ‘2020년 10월 가수 브랜드 평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2)

어른들의 콘텐츠는 온 가족을 끌어들이는 등 확장성이 크므로 젊은 층까지 흡수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가 있다. 최근 지상파의 경향도 2049타깃에서 좀 더 연령층이 상향되는 분위기인 것은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5. 국가적인 이슈에 힘을 보태라

지상파는 특히 큰 의제(어젠다)에 강하다. 자연재해나 월드컵·올림픽 같은 이벤트, 대통령 선거 혹은 코로나19 같은 전 지구적인 이슈가 있을 때 국민들은 지상파를 찾는 경향을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분위기를 위로한 나훈아는 지상파인 KBS를 통해 공연을 선보였다. 그가 ‘KBS가 거듭날 것’이라는 멘트를 함으로써 KBS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 또한 상승했을 것이다. 이렇듯 〈나훈아 쇼〉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이 컸고, 대한민국 전 국민을 위한 프로젝트였기에 국민들이 더 열광하지 않았나 싶다.

〈나훈아 쇼〉의 여진은 두 달이 지나도록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방송 덕분에 나를 비롯한 제작진은 상도 많이 받고 주변에 밥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이 들었고, 또 제일 기분이 좋았던 말은 “나훈아 쇼를 보고 정말 큰 위안을 얻었다”라는 말이다. 그 말에 몇 달 동안 쌓였던 피로가 싹 사라졌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보았듯이 아직 지상파에 기회는 있다. 내년에는 ‘테스형! 지상파가 왜 이래?’하면서 힘들어하는 예능PD들도 매일매일 ‘턱 빠지게 웃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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