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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Picture

3차 한류와 섬네일의 경제학

글. 김윤지(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경제학 박사)

최근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tvN), 〈이태원 클라쓰〉(JTBC) 등이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끌며 3차 한류가 재점화되고 있다. 2000년대 초 〈겨울연가〉(KBS2) 열풍을 1차 한류, 2010년대 동방신기 등이 주축이 된 K팝 열풍을 2차 한류라 할 때 최근 한국 드라마 열풍은 3차 한류다. 이러한 3차 한류 콘텐츠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됐다는 것이다.

3차 한류의 중심에 넷플릭스가 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일본뿐 아니라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도 한국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끈 적은 있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한두 편만의 효과가 아니라 여러 드라마들이 한꺼번에 돌풍을 일으킨다는 데 차이가 있다. 〈쌍갑포차〉(JTBC), 〈더킹: 영원의 군주〉(SBS), 〈사이코지만 괜찮아〉(tvN) 같은 최신 드라마에서부터 〈도깨비〉(tvN), 〈응답하라 1988〉(tvN), 〈조선로코-녹두전〉(KBS2), 〈닥터 프리즈너〉(KBS2) 등 다소 시간이 지난 드라마에까지 최근 3차 한류의 바람이 모두 미치고 있다.

왼쪽부터 tvN 〈도깨비〉, 〈응답하라 1988〉

출처 : tvN 홈페이지

이런 차이가 나타난 배경에는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있다. 최근 3차 한류 드라마들은 모두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됐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 점도 3차 한류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그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하라, 클릭은 늘어날 것이다

넷플릭스는 알고리즘을 통해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추천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와 취향이 유사한 집단을 찾아 공통적으로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하기도 하고, 콘텐츠의 배우, 장르, 감독, 스토리 특징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놓고 내가 과거에 본 콘텐츠와 유사한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 넷플릭스가 추천 알고리즘에 기반해 추천작을 잔뜩 나열해주지만 콘텐츠가 너무 많아 선택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다양할수록 자신에게 꼭 맞는 선택을 할 것 같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선택지가 많아지면 결정을 내리기 더 어려워한다. 미국의 사회행동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선택의 역설’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보다 효과적인 추천이 가능할까? 넷플릭스는 이를 위해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의 ‘휴리스틱(Heuristics)’을 잘 활용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휴리스틱이란 시간이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때, 혹은 굳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을 때 사람들이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을 말한다. 사람들이 선택을 해야 하는 매 순간,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판단해야만 한다면 인지적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꼭 그럴 필요가 없는 순간이라면 저마다의 직관 도구를 꺼내 빠른 판단을 처리하곤 한다.

이런 정보처리 과정에 대해 행동경제학의 대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시스템1’과 ‘시스템2’로 설명한다. 카너먼에 따르면, ‘시스템1’은 별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신속한 결정에 이르게 하는 심리기제이고, ‘시스템2’는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판단을 위한 심리기제다.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 두 시스템은 동시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무의식적 영역’인 시스템1이 먼저 발동할 때가 많다. 인지적 부담감을 덜어주는 휴리스틱이 나도 모르게 먼저 가동된다는 것이다.

특히 시스템1은 특정한 상황에서 더 잘 가동되곤 한다. 예컨대 수치 비교를 해야 하는데 어떤 기준 숫자가 제시된다면 시스템1이 이 기준에 따라 판단하도록 도와준다. 자주 접해 낯익은 것이 있으면 인지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데 이런 상황에도 시스템1이 발동해 무의식적 선택을 유도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인지적 편안함에서 오는 편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들의 추천을 선택으로 이끌곤 한다.

예컨대 첫 화면부터 이들의 계획이 숨어 있다. 로그인을 하고 들어선 넷플릭스 첫 화면은 보통 흰 바탕이 대부분인 여타 포털 사이트들과는 조금 다르다. 까만 배경에 여러 카테고리별로 드라마, 영화의 섬네일들을 빽빽이 줄 세워놓았다. 이 화면에서 연상되는 게 있을까? 바로 티켓을 산 뒤 서성이던 극장 안 풍경이다. 붉은 카펫과 붉은 좌석 너머 어두운 조명이 흐르고, 복도엔 영화 포스터들이 쭉 드리워져 있는 그 극장 말이다.

이화여대 최선영 교수 연구팀은 〈넷플릭스 미디어 구조와 이용자 경험〉이라는 연구에서 “넷플릭스 화면의 극장 메타포는 온전히 스크린에 몰입하는 극장 경험을 유도하고 인지적 편안함도 향상시킨다”고 설명한다. 넷플릭스 화면 자체가 ‘극장’이라는 환경을 연상시키면서 “극장에 오셨으니 영화를 한번 골라 보셔요” 하고 이야기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전문가들도 넷플릭스의 어두운 바탕 화면이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도록 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밝은 화면은 단시간 생산성을 더 향상시키는 반면, 어두운 화면은 무언가를 계속 보게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개인화 추천, 딱 당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추천할게요

극장에 입장했으니 이제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추천 콘텐츠들이 존재해 뭔가를 선택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런 이용자들을 위해 넷플릭스는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내세운다. 추천을 하되 불특정 다수들에게 눈에 띄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에게만 눈에 띌 수 있는 방식으로 추천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구독자에게 인지적 편안함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은 낯선 것에 손을 잘대지 않는다. 외국어로 가득한 메뉴판을 볼 때 겁이 덜컥 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메뉴판에서 잘 아는 메뉴가 보이거나, 사진이 있으면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같은 메뉴판이라도 내가 좋아하고 익숙한 배우, 장르, 스토리로 꾸며져 있다면 눈도 편하고 클릭도 늘어난다.

개인화 방식은 OTT 플랫폼 서비스가 영화나 방송 매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수익모델을 가졌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영화나 방송은 특정한 시간대, 기간에 대규모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게 중요한 비즈니스다. 제한된 시간 안에 티켓 또는 광고 수익을 최대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시대 타깃층이 두루 공감할 수 있는 코드를 활용해 크게 한판 모으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OTT 서비스는 특정 시간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보다 많은 구독자를 모아 오래오래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들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딱 그 사람에게만 맞춰진 상차림을 잘 차리는 게 중요하다. 구독자가 매우 특이한 선호와 취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취향에 맞는 상차림을 차리는 게 관건이다. 한 콘텐츠에 여러 명이 모이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 가입자가 오래 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넷플릭스는 상차림표 구성 자체를 개인에 맞춰 달리 보여준다. ‘지금 뜨는 콘텐츠’, ‘넷플릭스 오리지널’, ‘흥미진진 TV프로그램’, ‘○○님의 취향저격 콘텐츠’, ‘***와 유사한 콘텐츠’ 등 다양하다. 특징은 사용자가 다르면 이 카테고리 분류도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사용자라도 어제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어떤 날인지 등에 따라 카테고리가 계속 바뀐다.

심지어 구독자의 시청 이력에 따라 콘텐츠의 섬네일 이미지도 변한다. 〈킹덤〉 드라마라 하더라도 〈하이에나〉(SBS)를 본 사람이라면 주지훈이 있는 섬네일이, 〈비밀의 숲〉(tvN)을 본 사람이라면 배두나가 있는 섬네일이 뜨는 식이다. 또는 같은 드라마나 영화라 하더라도 사용자가 더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차용해온다. 액션 영화를 자주 보았더니 〈미스터 션샤인〉(tvN)을 추천하면서도 총 쏘는 실루엣의 섬네일을 보여주는 식이다.

넷플릭스 연구자들에 의하면 구독자의 시청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시각 이미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섬네일을 보며 콘텐츠를 선택할 때 겨우 1.8초를 소비한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가장 익숙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 넷플릭스는 사용자의 취향과 시청 이력에 따라 섬네일 이미지도 변한다

    출처 : 넷플릭스

이러한 전략들의 영향으로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한국 드라마들이 동시에 붐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보다 더 다양한 한국 드라마들이 계속 보강되는 상황이라 한동안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한국 시청자들뿐 아니라 세계 시청자들의 취향과 선택 가능성까지 고민하는 드라마 제작 풍토도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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