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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 Policy 2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과 과제

글. 하주용(인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지난 6월 22일 정부가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국무조정실 주도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의 정부부처가 참여하여 마련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그 실현 가능성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미디어산업의 변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방송영상 콘텐츠 유통에서 온라인의 영향력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콘텐츠 제작 관행에 변화를 야기하고 있는 한편, 외부활동의 제약으로 가정 내 미디어 소비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플랫폼의 이용 증가로 이어졌다. 미국 방송영상 콘텐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메이저 스튜디오들도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유통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미디어산업의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간의 방송영상산업에 내재되어 있던 변화의 동인이 현실화되고 촉진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간 우리나라 미디어산업은 거친 풍랑을 만난 듯 위태로운 상태였다. OTT의 확산에 따라 미디어 소비가 분산되고,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전통 미디어산업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해외 OTT 미디어의 국내 시장 잠식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OTT는 가입자 및 콘텐츠 유통시장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력으로 우리나라 콘텐츠의 생산요소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의 국내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우리나라 방송영상 콘텐츠 제작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내 제작 산업을 글로벌 사업자의 하청기지로 전락시킬 우려도 낳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미디어사업자들의 공세로부터 국내 방송영상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 마련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는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이하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이 발전방안에서는 4대 전략과 55개 세부과제를 제시했다. 4대 전략은 플랫폼 규제완화, 콘텐츠 창작 지원, 해외진출 기반조성, 국내외 사업자간 공정경쟁 및 상생 여건 조성 등으로 구성됐다. 미디어 생태계를 구성하는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CPND)의 가치사슬 중 디바이스를 제외한 3분야를 포괄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 규제완화]

플랫폼 분야에서는 규제완화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혁신적 플랫폼 육성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대원칙은 불필요한 플랫폼 규제를 완화하여 국내 플랫폼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완화에는 △시장점유율 폐지, △지역방송 상호겸영규제 완화, △방송국 설비 준공 검사 폐지, △유료방송 플랫폼 이용요금의 신고제 전환, △전문편성PP의 주된 방송 분야 편성비율 규제완화, △방송통신 분야 인수합병 시 유관기관 심사 효율화 및 간소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이러한 정책방안은 업계나 학계에서 낡은 규제로 지적해왔던 것들로 크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제한된 수의 사업자가 방송시장을 주도하던 시대의 공익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 되었던 규제들이 시대 변화에 따라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고 이번 정책방안에서 이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소 우려할만한 점도 있다. OTT 콘텐츠의 자율등급제 도입 추진이다. 이는 OTT 사업자를 통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비디오물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전등급분류(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 50조)를 거치지 않고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등급 분류를 하도록 한 조치이다. 자율등급제로의 전환이 사전등급 분류제도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율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어 규제실효성이 적다고는 하지만 해외 영상물의 유통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용자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폐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향후 인수합병의 활성화 등으로 거대 방송영상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용자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콘텐츠 창작 지원]

이번 발전방안의 상당 부분은 콘텐츠 제작 활성화와 투자 확대에 할애되어 있다. 특히 창의적 콘텐츠의 제작 활성화를 위해 1인 미디어 창작자 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신예 창작자 발굴, 교육과 멘토링, 제작지원 등의 창작자 직접지원 방안과 1인 미디어 클러스터 조성, 지역거점 확충, CKL(콘텐츠코리아랩)기업지원센터를 통한 콘텐츠 기획, 제작, 사업화, 해외진출 등 콘텐츠 생산 및 유통을 위한 기반조성뿐만 아니라 제작비 세액공제, 1조원 이상의 문화콘텐츠 펀드 조성 등 재정적 지원방안까지 망라되어 있다. 게다가 온라인, 모바일 콘텐츠와 숏폼 영상 등의 신유형 콘텐츠의 개발과 콘텐츠 제작 및 활용에 최신 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어 미래지향적인 정책방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전방안의 실현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특히 세제나 재정지원 방안은 현재로선 실현가능성이 낮다. 우선 펀드의 성격, 조성 및 운영 방식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콘텐츠 펀드의 경우 1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누가,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콘텐츠에 중점 투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방송콘텐츠 투자조합 회수금 150억 원을 활용하여 정책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제시되었지만 그 액수는 글로벌 사업자의 투자 규모와 비교할 때 턱없이 작은 규모이다. 게다가 펀드는 특성상 수익률 등의 성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수익 실현의 불확실성이 높은 콘텐츠 분야의 투자에 적합한 방식이 될지 의문이다. 성과의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에 대한 지원은 기금의 형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보이나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7개의 기금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중 금융성 기금을 제외해도 59개나 되는 기금이 조성, 운용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또 다른 기금 조성에 국회나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펀드의 성패가 관련 사업자들의 기금 출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콘텐츠 투자 확대 방안의 현실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제외하면 콘텐츠 지원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신예 창작자 발굴이나 제작 및 유통 지원은 이 발전방안이 나오기 이전에도 관련 부처와 산하기관을 중심으로 지속해오던 사업이니 크게 어려울 것도없다. 발전방안에 포함된 웹드라마, 웹예능, 숏폼 콘텐츠, 1인 미디어 등 기존 콘텐츠와 차별화된 인터넷 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위한 지원방안도 비교적 가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사업자들이 신유형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실험(혹은 모험)을 진행하고 있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당장 37억 원을 지원할 계획까지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다.

[해외진출 기반조성]

다음은 글로벌 진출 지원 등 생태계 조성 방안이다. OTT 등 미디어시장 변화에 발맞춰 방송콘텐츠분야 인력양성 및 교육 강화방안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미디어플랫폼에게 콘텐츠 현지화, 재제작 지원과 법률 지원을 통해 수출전략형 콘텐츠 육성 및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겠다는 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콘텐츠와 플랫폼사가 참여하는 ‘OTT 콘텐츠 글로벌 상생협의회’ 운영안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인터넷 기반 콘텐츠서비스 플랫폼이 가지는 글로벌 유통 가능성을 고려할 때 국내 사업자들 간의 협업과 인적네트워크 구축을 촉진할 수 있으므로 매우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공정경쟁 및 상생 여건 조성]

마지막으로 이 발전방안에 사업자 간 공정경쟁과 상생 환경 조성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세부과제에는 해외사업자에 대한 국내대리인 지정 의무 부과뿐만 아니라 망 이용 및 플랫폼 공정성 강화, 콘텐츠 제작 및 유통상의 불공정 관행 개선, 콘텐츠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개선 등 국내외 사업자들 간 공정경쟁과 종사자 보호 방안을 담고 있다. 이 방안은 주로 규제정책을 담고 있어 앞의 진흥정책들과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규제 또한 진흥정책의 하나로 사용될 수 있기에 발전방안에 포함되기에 무리는 없어 보인다. 특히 방송영상 산업이 거대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공정한 거래관행을 위한 규제는 디지털 미디어시대의 다양성을 지켜나가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균형적인 미디어산업 활성화를 위한 과제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발전방안은 2013년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 2014년 ‘스마트미디어산업 육성계획’과 ‘PP산업 발전전략’ 그리고 2016년의 ‘유료방송 발전방안’ 이후 수년 만에 마련된 방송영상 미디어 분야의 종합적 정책 방안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국내 미디어 산업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미디어 생태계의 긍정적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하였다는 점에서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추진하기 위한 종합계획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특정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분야별로 제시된 정책방안들 중에는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도 있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 CPND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정책방안임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이 OTT 콘텐츠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OTT산업발전방안’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발전방안에서 한류를 이끌 대형·기획 콘텐츠 제작 지원을 제외하면 전통 미디어 콘텐츠 활성화 방안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OTT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는 현재에도 경쟁력 있는 프리미엄 방송 콘텐츠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영상서비스플랫폼의 성패가 플랫폼 이용자의 증대 및 충성도(지속 이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이용자를 획득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안정적 확보 능력에 달려있다. 특히 구독형 OTT의 경우 프리미엄콘텐츠, 즉 고품질의 방송영상 콘텐츠 확보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고품질 콘텐츠는 대부분 전문적 생산체제를 갖춘 지상파를 포함한 전통 방송채널들과 대규모 제작사들이 생산해왔다. 이런 점에서 참신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콘텐츠 제작 지원도 중요하다.

현재 국내 방송시장은 콘텐츠 제작 역량과 시스템이 서서히 와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콘텐츠의 가치사슬은 기획, 제작, 전송, 유통 등의 단계로 구분된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인적요소, 자본요소, 설비요소 등의 자원이 투입된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기획사, 제작사, 방송사, 투자사 등 다양한 참여자들이 콘텐츠 기획, 제작 및 유통 과정에 자원을 투입하고 그 결과로 적절한 수익을 기대한다. 이들은 수요불확실성이 높고 성과 예측이 어려운 방송 콘텐츠 생태계의 구성원들로 기획부터 유통 단계까지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요인을 흡수하고 있다. 이처럼 방송콘텐츠 제작 시장이 시장중심적이며 경쟁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가용재원이 부족한 지상파방송의 제작 역량은 감소하고 있고, 외주제작 시장은 소수 대형제작사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김유정, 2020). 이런 점을 고려할 때 1인 콘텐츠 창작자와 OTT 산업 지원책이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번 발전방안은 종합적 미디어 산업 활성화 방안을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국산 콘텐츠와 국내 OTT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전통 미디어의 외연 확대와 신규 미디어의 활성화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향후 이 발전방안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콘텐츠산업 가치사슬의 각 단계마다 적절한 진흥방안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 보도자료, 2020.6.22.

김유정, 〈플랫폼 시대의 방송콘텐츠 진흥, 방향성과 제도에 대한 고찰〉, 《방송문화》 2020 여름호 27-52쪽.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프랑스의 글로벌 OTT 대응: 자국 콘텐츠 산업보호전략〉, 《미디어 이슈 & 트렌드》 2020년 6월호 6-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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