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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성과 차별성의 즐거운 긴장

글.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웹툰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바로 웹툰이 지닌 원천콘텐츠로서의 매력 때문이다. 웹툰이 드라마로 전환될 때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차별적인 즐거움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 〈편의점 샛별이〉(SBS), 〈이태원 클라쓰〉(JTBC)의 사례를 통해 분석해보자.

원천콘텐츠로서 웹툰의 미덕

원천콘텐츠는 독립적인 콘텐츠로서 대중성을 검증 받아 이미 브랜드 가치를 확보한 콘텐츠를 말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완결성을 확보해야 하며, 적은 시간과 경제적 비용으로 대중의 선호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소설, 웹소설, 만화, 웹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거점콘텐츠는 원천콘텐츠의 후광효과를 기대하고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여 매스미디어 기반으로 큰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는 드라마, 영화, 게임 등의 콘텐츠를 말한다. 원천 콘텐츠의 가치를 지속시키고 확장하기 위하여 거점콘텐츠로 전이시키는 것을 전환(Adaptation)이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원천콘텐츠로서 웹툰의 미덕은 ① 만화라는 대중적이고 접근이 용이한 미디어를 상호작용성이 강화된 웹 공간에서 결합하고 있다는 점, ② 텍스트 그 자체가 스토리보드와 같은 기능을 함으로써 영상화에 용이하다는 점, ③ 비교적 분명한 1318, 2030의 타깃층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 ④ 활발한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향유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 ⑤ ICT와의 생산적 결합을 통하여 다양한 표현 기제를 다채롭게 수렴할 수 있는 고도의 개방성을 지향한다는 점, ⑥ 추천, 공유, 댓글, 비평 중심으로 커뮤니티 기반의 충성도 높은 팬덤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콘텐츠 전환의 동기는 몇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첫째,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다수의 채널이 확보됨으로써 양질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는 점, 둘째, 콘텐츠가 경험재라는 측면에서 향유자는 이미 체험한 바 있는 콘텐츠를 안전하게 선택한다는 점, 셋째, 리스크 헤지(Risk hedge) 전략의 일환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이미 확보한 원천콘텐츠를 활용하여 제작의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웹툰은 웹 공간에서 역동적인 상호작용 과정을 통하여 작품성과 대중성을 검증할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향유 취향, 향유 요소, 향유 패턴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의 후광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까닭에 리스크 헤지에 최적화된 콘텐츠라고 평가할 수 있다.

더구나 주요 포털을 비롯하여 양질의 콘텐츠를 다수 확보한 웹툰 플랫폼이 등장함으로써 웹툰의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다양성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웹툰 전환의 양적인 증가와 전략적 수요가 확대되면서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환 전략은 더욱 중요해졌다.

웹툰과 드라마 사이 동일성과 차별성을 위한 전환 전략

웹툰 콘텐츠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환 전후 콘텐츠 간의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향유자가 차별성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말은 두 작품이 같은 작품이라는 연결 의식과 동시에 서로 다른 즐거움을 창출한다는 면에서 독립성을 지녔다는 의미다. 전환이 ‘전혀 다른 기호체계로의 전이’라는 점에서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대중성을 확보한 원천콘텐츠는 그만큼 충성도 높은 향유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이며, 향유는 텍스트와의 개별적 체험으로 구체화되기에, 향유자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원천콘텐츠의 미디어적 특성에 대한 학습과 지지,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공감과 완결 의식, 향유 과정에서 자기 안에 그려진 개별화된 이미지 등이 어우러져 드러난다. 원천콘텐츠의 대중적 지지가 견고할수록 전환 후 원작에 대한 충실성 논란, 미스캐스팅 논란 등이 빈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웹툰의 전환이 활성화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양적으로 풍성해진 전환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① 전환 전후의 미디어별 특성과 재현 양상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지, ② 동일한 정체성의 요소로 무엇을 부각시키고 있는지, ③ 새로운 즐거움의 요소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④ 전환 과정에서 기대하는 향유자의 요구는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⑤ 전환 시점의 사회적 컨텍스트와는 상호작용을 활성화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전략적 고려와 선택이다.

최근 화제인 〈편의점 샛별이〉는 매우 영리한 전환 전략을 구사했다. 샛별의 액션씬에서 주로 활용되는 웹툰의 만화적 표현을 과감하게 드라마로 수용하였고, 성인 남성 독자의 여성에 대한 로망과 성적 판타지를 공략한 웹툰의 전략 대신 여성 시청자들의 로망과 판타지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 캐릭터 샛별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잘 것 없는 처지지만, 강하고 굳은 의지의 소유자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압도적인 미모와 따듯한 마음씨로 착하고 잘생긴 사람과 사랑하게 된다. 이 서사 전개는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그만큼 보편적이다. 더구나 전환하는 과정에서 구현 플랫폼에 대한 고려로 지상파 드라마의 요구와 수준에 맞는 필터링을 통하여 극적 서사를 보강한 점, 아역 출신 배우 김유정을 캐스팅하여 선정성 논란을 잠재웠다는 점, 빈부 격차의 문제라든가 사랑과 사회적 성취 사이의 선택 등의 문제는 시청자의 공분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웹툰과 드라마라는 미디어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 재현 전략, 새로운 즐거움의 요소, 향유자의 요구 분석 등을 통하여 성공적인 전환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전환 사례는 〈이태원 클라쓰〉다. 이 작품은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자본을 대표하는 장가그룹에 상처 입은 청년 세대들의 저항과 전복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주시청자인 청년 세대의 공감을 확보했다. 거기에 복수담의 통쾌함과 성장담의 낙관적 기대를 토대로, 매력적인 캐릭터군으로 서사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박새로이 중심 서사에 개성과 능력을 겸비한 조이서의 조력과 러브스토리 전개를 통하여 중심 캐릭터의 역할을 분할함으로써 매력적인 소구 요소를 복수화했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와 개인적 옳음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성취를 드러냈다.

특히 이 작품은 웹툰 원작자가 작가로 참여함으로써 전환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었다. 원천콘텐츠를 얼마나 충실하게 전환하느냐를 넘어서 웹툰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캐릭터성과 주제적 울림을 한층 강화함으로써 차별적인 체험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들 각자의 개성을 통하여 캐릭터성이 더욱 강화돼 한층 심화된 차별적인 체험의 성취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합법적이며 현실적 대응을 보여줬다. 갈등은 있으되 갈등이 향유자를 괴롭히지 않는 즐거운 수준의 대립을 구사함으로써 통쾌하고 매력적인 텍스트를 구현할 수 있었다. 향유자가 웹툰의 어떤 요소에 공감하고 환호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드라마의 미디어 문법에 최적화된 캐스팅과 구현을 통하여 상황의 공감을 극대화하면서 현실성을 소환하는 영리한 전환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트랜드미디어 스토리월드 구축을 위한 고민

최근의 콘텐츠 전환에서는 텍스트, 미디어, 플랫폼, 향유자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새로운 플랫폼을 통하여 다수의 채널을 확보하게 되면서 이러한 전환의 다양성이 시도되고 있는데,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웹툰에서 드라마나 영화로의 전환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전환을 매개로 확장적인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넥슨은 1조 8,450억 원을 투자해 게임 IP를 인공지능, 전자상거래, 웹툰, 영화 등과 결합한 종합콘텐츠 기업으로 발돋움을 시도하고 있다. 카카오M은 음악 레이블과 함께 배우 매니지먼트사와 드라마·영화·공연제작사 등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인수합병을 통해 다수의 IP 확보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곧 성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축 과정에 어떤 전략을 구사할 것이냐다. 그것은 웹툰의 전환 사례 분석을 통하여 부분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야할 방향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그것을 구체화하는 매우 섬세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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