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 해외 핫트렌드 1
일본 애니메이션 부럽지 않은 K-애니메이션이 되려면
글. 신창환((사)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회장, 스튜디오게일 대표이사)

최근 큰 인기를 끈 일본 애니메이션이 K-애니메이션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얼까? ‘IP’와 ‘플랫폼’으로 요약되는 뉴미디어 전환기를 맞아 재도약을 노리는 K-애니메이션을 위한 방향성 제시와 몇 가지 제언.

애니메이션 <베스티언즈> ©티모스미디어

2023년 상반기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역대 국내 개봉 일본 영화 흥행 순위를 바꿔놓으며 코로나 엔데믹 이후 불황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충격을 몰고 왔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 질주가 전통적인 비수기에 대적할 만한 흥행작이 없었고, 중장년층의 추억 소환 덕분이라며 다소 자위하던 영화계는 460만 명이라는 메가 히트를 기록한 <스즈메의 문단속> 앞에서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두 재패니메이션의 흥행이 K-애니메이션 산업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다수의 언론 기사는 이 두 작품의 히트는 단지 ‘일본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콘텐츠’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성과를 내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히트를 기록하는 현상은 ‘좋은 콘텐츠’와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 장벽이 낮아진 현재 글로벌 트렌드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재패니메이션의 저력과 성공 요인을 단순히 낮아진 문화 장벽에서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풍부한 스토리, 오랜 역사, 큰 내수시장 등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이다. ©Shutterstock

다시 증명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

일본 애니메이션이 약 24조 원의 시장 규모를 가지게 된 것은 일본 출판 만화에서 시작되어 자국 경쟁력을 확보한 IP를 애니메이션 제작위원회 구성을 통해 사업 성과를 극대화하는 특유의 산업 구조에 기인한다. 그에 더해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팬덤 문화가 이제 전 세계로 확산되어 우리나라에서도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는 것이 이번 두 재패니메이션 작품의 n차 관람과 굿즈 판매 실적으로 입증되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자국 안에서 소비되어도 충분히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1억3천만 명이라는 시장 규모와 다양한 장르로 자유롭게 성장해온 특수성을 바탕으로, 재난과 상처를 보듬는 보편적인 정서가 작품에 잘 녹아들게 한 제작진의 노력을 성공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일본 애니메이션은 오랜 역사와 풍부한 IP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들며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어 K-애니메이션과의 경쟁력 차이가 날로 커지고 있다.

K-애니메이션은 주로 어린이 대상 작품이 많다. 성인을 위한 작품은 매우 부족하다. 또한 K-애니메이션은 작은 국내 시장 규모로 인해 태생적으로 해외 수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국내 관객의 니즈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K-애니메이션 산업은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독자의 검증이 1차 완료된 웹소설, 웹툰 IP와의 협업으로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수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국내 관객에게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도 그에 못지않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을 자극제로 삼아 K-애니메이션산업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K-콘텐츠 경쟁력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 ©쇼박스

웹툰 IP는 K-애니메이션 재도약 비결

방탄소년단이 OST에 참여한 <베스티언즈>. K-콘텐츠와의 협력은 K-애니메이션의 재도약 발판이 될 것이다. ©티모스미디어

영화의 경우 일찌감치 웹툰으로 검증된 IP를 원작으로 제작해 히트시킨 <신과 함께>, <내부자들> 등의 사례가 있다. 드라마의 경우 <킹덤>,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수많은 웹툰 IP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돼 한국 IP의 경쟁력과 시리즈 제작 노하우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검증되었고 그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웹툰은 K-콘텐츠 원천 IP의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콘텐츠산업의 키워드는 단연코 우수한 원천 IP라고 할 수 있다.

K-애니메이션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한 집중적 창작 애니메이션 지원으로 <뽀로로>, <타요>, <폴리> 등의 프리스쿨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K-애니메이션산업은 20여 년간 주로 키즈 타깃의 작품만 양산하는 등 다양성이 매우 위축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뉴미디어의 글로벌 주도권이 더욱 강화되는 이 시점이 K-애니메이션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최적기라는 믿음으로 K-애니메이션산업 재도약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1. 애니메이션의 OTT 유통 활성화
미디어 환경이 OTT로 급속하게 전환되어 신규 애니메이션 기획 개발 또한 OTT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개별 제작사가 글로벌 OTT의 편성과 투자를 받기에는 그 벽이 너무 높고, 국내 토종 OTT는 자금 부족을 이유로 애니메이션 편성과 투자를 꺼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약 220억 원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사업 결과물이 OTT 유통에서 봉쇄되고 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글로벌 OTT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안을 정부 단계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토종 OTT들이 더 용이하게 K-애니메이션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 제도와 펀드 투자를 연계해, 신규 제작지원 작품의 사업화가 OTT 유통 단계에서 가능하도록 추가 예산과 지원사업의 조기 집행이 필요하다.

2. 성인 타깃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신규 트랙 확대
올해 상반기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총 1천만 명에 육박하는 성인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것은 이제 한국 관객도 성인용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영진위를 통한 기존 소규모 장편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의 확대보다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한 신규 사업으로 15세 이상 타깃의 장편 애니메이션 지원사업 예산을 기존 예산 규모(약 220억 원) 이상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3. 한국애니메이션아카데미 설립 및 AI 기술 개발 R&D 확대
장기적으로 K-애니메이션산업 체질 개선과 안정적 기반 마련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애니메이션 전문 인력 양성이다. 3년 전 문체부를 통해 애니메이션 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매년 6개월 정도의 단편적인 사업으로는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를 낳기는 어렵다. 이에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모델로 하는 한국애니메이션아카데미의 설립을 제안한다. 봉준호 등 쟁쟁한 감독들과 한국 영화산업의 일꾼들이 한국영화아카데미를 통해 배출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애니메이션아카데미의 설립 필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최근 챗GPT 열풍으로 기술력과 자금이 AI 관련 시장으로 모이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세한 K-애니메이션산업은 기술 개발과 도입에 차질을 빚고 있다. 때문에 K-애니메이션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의 우수한 AI 기술을 애니메이션산업에 시급히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뽀로로> 시리즈의 수많은 디자인/어셋/애니메이션 제작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고 게임 엔진의 활용성을 합친다면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 놀라운 결과를 갖고 오면서 제작 인력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R&D 지원사업을 통해 애니메이션 제작에 AI를 도입해 효과적인 모델을 만든다면 많은 K-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수혜를 받을 것이다. 이 기술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키면 K-애니메이션 산업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R&D 사업이 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