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N N개의 생각
‘K-애니메이션의 희망’에 대한 N개의 생각

K-애니메이션은 어디에서 희망의 날개를 찾아야 할까? K-애니메이션 현장 안팎에서 그 발전을 고민하고 염원해온 각계 전문가들의 애정 어린 목소리를 다채롭게 들어본다.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콘텐츠 필요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은 4~5세 영유아 콘텐츠에 집중되어 있다고 본다. 다른 콘텐츠 장르의 경우, 인기를 얻게 되면 하나의 문화처럼 발전해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 나가기도 하는데, 영유아 애니메이션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지금 K-애니메이션이 영유아 콘텐츠에만 집중해야 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할리우드처럼 가족 시장을 개척하거나, 아니면 웹툰 기반으로 가더라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의 파급력이 꽤 큰 만큼 이를 위한 투자와 집중적인 지원 활성화 또한 중요하다.
홍성호 대표(로커스)

애니메이션의 산업화 시급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이 충분한 내수 시장을 만들어 왔던 것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그러지 못했다. <아기 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날아라 슈퍼보드> 등처럼 국내 시장을 만들고 정착할 수 있는 시기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말이다. 현재 K-웹툰이 해외로 뻗어 나가고 있는 만큼, 웹툰 기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IP를 확보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이 진행되어 K-애니메이션만의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형윤 회장(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아기 공룡 둘리>

K-웹툰을 K-애니메이션으로

‘웹툰의 시대’라는 말도 이제는 진부하다. 길가며 웹툰을 읽는 사람들, 웹툰과 컬래버레이션한 상품, 웹툰 광고 등 우리는 웹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OTT를 켜도 웹툰 원작이, TV를 틀어 드라마를 봐도 웹툰 원작이 밀려든다. 하지만 거기서 찾기 힘든 것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일각에선 웹툰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웹툰은 그림이 약해서 애니메이션으로는 맛이 살지 않는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웹툰은 팬덤이 약해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본격적인 웹툰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하기는 했는지 말이다.

웹툰의 애니메이션화 중 거의 유일하게 실험 성격이 아니라 본격 편성되어 지속된 애니메이션은 시즌 4까지 편성된 <마음의 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작 애니메이션’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대작’ 애니메이션의 첫 시도는 2020~2021년 사이에 있었던 네이버웹툰의 <신의 탑>,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 애니메이션화일 것이다. 이 작품들은 네이버웹툰이 일본의 제작사와 만들어 전 세계 동시 공개한 애니메이션이다. 첫 시도가 이제 끝났고, <신의 탑>은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 말하자면 이제야 웹툰의 본격적인 애니메이션화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웹툰이 막 드라마화되던 10여 년 전을 생각해보자. <미생>의 등장 전까지 웹툰 원작 드라마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웹툰 원작 드라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웹툰의 애니메이션화에 대해 ‘실패했다’는 평가는 시기상조다.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이제 막 시작됐다. 2022년 연말 <외모지상주의>를 시작으로 2023년 4월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 여름에는 <연의 편지> 극장판과 <유미의 세포들>이 예고되어 있다. 또 연말에는 글로벌 히트작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이 기다리고 있다.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안 되는가 여부는 그 이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이재민(웹툰평론가)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교는 그만

최근 K-애니메이션의 방향성은 ‘굿즈 사업을 겨냥한 3D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다. 해외에서의 성과도 준수하다. 이렇듯 나름의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교 우위를 점하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제작 시스템과 시장 규모가 현저히 다른데도 같은 지향점을 추구하길 바라는 관람객의 요구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잘 따라 한 ‘K-아니메’가 아닌 ‘K-애니메이션’으로 해외를 개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튜버 ‘덕분’

웹툰 활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

Ⓒ<마당을 나온 암탉>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이 220만 명을 모은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고려하면 최소 50~60만 명의 관객은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의 쇠퇴까지 더해져 현실적으로 어렵다. 즉 내수 시장의 한계로 단번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진검승부하는 것은 무리지만, K-콘텐츠가 각광받는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은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K-애니메이션의 희망은 K-웹툰에서 찾을 수 있다. 굳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K-웹툰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이미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결국 오리지널 창작 웹툰의 IP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인기 웹툰 <노블레스>와 <갓 오브 하이스쿨>이 각각 일본 제작사 Production I.G와 MAPPA에서 제작되었고, 우리나라의 스튜디오미르가 제작한 <외모지상주의>는 작년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했다. 이미 시행착오를 거치고 노하우를 축적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 제작 및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의 경우, IP의 활용이 한국 영화를 나라별로 리메이크 제작(판권 수익)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K-웹툰의 애니메이션화에 성공할 경우 문화적 장벽이 높지 않은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K-애니메이션을 직접 해외에 판매해 훨씬 수익을 다각화(더불어 부가 판권과 캐릭터 비즈니스)할 수 있다.

지금껏 K-웹툰이 영화, 드라마, OTT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각 기호에 맞게 제작되며 가능성을 실험하는 1단계였다면, 다음 단계는 한 편의 웹툰이 창구효과를 일으키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TV나 OTT용 애니매이션을 거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가는 방법(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이 타깃)이다. <유미의 세포들> 등이 이와 유사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주제나 소재의 특장점이나 효율성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궁극적으로 어울리는 작품들이 있기 마련이다. K-드라마가 독창성과 완성도로 인정을 받았듯 이 과정에서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된 K-애니메이션만의 정체성과 색깔을 찾아야 하는 것은 필수 조건이다. 2022년 EBS에서 선보인 <좀비딸>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제작 지원한 것처럼 K-웹툰이 K-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전종혁(영화평론가)

Ⓒ<좀비딸> EBS

독창적 콘텐츠 개발과 다양한 지원이 필수

최근 국내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애니메이션은 잘 될 리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뽀로로>만 해도 해외 로열티 100억대에 달하는 브랜드 가치를 가졌다. 다양하면서도 독창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지원과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소비 창구와 해외시장 개척, 뉴미디어에 맞는 콘텐츠 개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제작 능력과 배급사의 마케팅 능력 제고 등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꾀해야 할 것이다.
한창완 교수(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K-애니메이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애니메이션은 메타버스, NFT, VFX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강문주 부회장(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이름이 필요해

우리는 K-애니메이션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에 관해 지난 20여 년간 수없이 물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애니메이션산업은 왜 발전하지 않는 걸까?

K-애니메이션산업 발전에 의문을 갖는 이유는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산업은 가능한데 왜 애니메이션은 안 되는 걸까?’라는 물음. 한편 한국은 애니메이션 수요가 적지 않은 시장을 가진 나라다. 올해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이 일으킨 반향을 보면 더욱 그렇다. 모든 애니메이션이 잘 되는 시장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애니메이션의 수요는 확실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K-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건 시장의 수요에 어울리는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은 냉정하다. 국적보다 중요한 건 작품의 매력이다. 그렇다면 팔리는 애니메이션은 대체 왜 팔리는 걸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을 말할 때 스토리나 캐릭터를 논하기도 하지만 결국 해당 작품을 만든 창작자, 즉 감독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와 신카이 마코토, 그러니까 믿고 보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와 미키 마우스 ©Shutterstock

K-애니메이션에 없는 건 바로 그런 작가다. K-애니메이션에 기대를 걸고 기꺼이 선택할 작가나 감독이 부재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지브리나 한국의 디즈니는 정부가 육성하기 힘들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월트 디즈니가 있어야 가능한 결과다. K-애니메이션산업은 아직 그만한 대가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이 준비 중이라는 애니메이션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결국 멋진 창작자가 만들어줄 세계가 마련되면 기술도 그에 걸맞은 쓰임새를 발휘할 것이다. 지금 K-애니메이션 산업에 필요한 건 바로 그런 상징적인 이름이다.
민용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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