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 인터뷰
드라마라는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 조의석 감독
글. 심우리  사진 제공. 넷플릭스

영화 <일단 뛰어>, <조용한 세상>, <감시자들>, <마스터> 등을 연출한 조의석 감독이 7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를 만났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영화 <마스터> 이후 7년 만입니다. 꽤 오랜만에 작품을 내놓으셨네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캐스팅까지 들어간 작품이 무산되었죠. 해외 로케이션이 60%나 되는 영화였거든요. 그 사이 <택배기사> 제안을 받고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은 기분은 어떠세요?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원래 빨리빨리 찍는 스타일은 아닌데, 40대 중반이 되다 보니 이제는 빨리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드라마가 처음이다 보니 이번 작품을 찍으며 부족한 면을 많이 배울 수 있었고요.
웹툰 원작의 드라마를 연출하신 소감은?

처음 연출 제의를 받고 <택배기사> 웹툰을 봤는데, 세계관이 굉장히 좋았어요. 택배기사가 인류를 먹여 살리는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것, 택배기사는 강해야 한다는 것 등 이야기가 재미있더라고요. 제 스타일 대로 고치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다행히 작가님께서 마음대로 각색해도 된다고 허락해주셔서 편하게 작업했어요.

주로 어떤 부분을 각색하셨나요?
주인공 5-8은 각 구역별로 나뉜 계층 문제를 뒤집으려고 해요. 저는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영화의 영어 제목을 ‘블랙나이트’라고 정하고, ‘5-8 같은 난민 출신 택배기사가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각색했어요. 원작이 방대하다 보니 캐릭터들을 압축하는 작업도 많이 했고요.
원래 여성이었던 ‘사월’을 남성으로 바꾼 설정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출연하면 멜로 느낌이 강하게 날 것 같았어요. 제가 가장 자신 없는 장르가 멜로와 호러, 에로거든요(웃음). 이 점을 작가님한테도 말씀드렸고, 다행히 작가님과 제작자 모두 동의해서 남성으로 바꿨어요. 대신 설아라는 여성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었고, 여자 대통령 캐릭터도 추가했어요.
한국판 <매드맥스> 같다는 평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매드맥스>를 비롯한 디스토피아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디스토피아물들의 세계관은 비슷하거든요. 억압에 저항하고 평등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그런 공식에 더해 캐릭터 서사로 다르게 보여주자 결심했어요. 뻔한 스토리일 수도 있는데 배경이 서울이란 점부터 차별성을 줄 것 같았고요.

기존 디스토피아 작품과 달리 서울의 모습과 지명을 황폐한 느낌으로 변화시킨 세계가 신선했어요. 구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컴퓨터그래픽 팀이 정말 열심히 해주셨어요. 모래가 가득 흩날리는 서울을 구현하기 위해 몽골까지 가서 모래 장면을 찍어오고, 6개월 간 수천여 장면의 CG를 구현해줬어요. 경북 안동의 5만여 평 정도 부지에 도로를 만들고, 블루 매트를 깔아 촬영하기도 했죠. 겨울에 찍다 보니 바람이 많이 불어 블루스크린이 찢어지기도 했고요.

배우들과의 특별한 인연

이번 작품은 배우 김우빈의 복귀작으로도 화제를 모았어요. 김우빈 씨와는 영화 <마스터> 이후 두 번째 만남인데, 다시 작업하니 어떠셨나요?

연기 잘하고, 피지컬도 좋은 거야 다들 아시잖아요. 아프고 나서 눈이 더 깊어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는데, 그 모습이 5-8과 잘 어울렸어요. 김우빈 씨가 회복되고 ‘어떤 작품을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제가 이 작품을 제안했어요. 처음엔 체력이 많이 안 올라와 힘들 수 있겠다 싶어서 액션 장면은 대역을 많이 쓰려고 했는데,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어려운 액션 아니면 직접 소화했고, 다행히 잘 해줬어요.

김우빈 씨의 흡연 장면도 화제에요. 아직 회복 중인 상태에서 줄담배를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CG로 구현했어요. 원작에서부터 주인공 5-8이 늘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돼서 살리고 싶었거든요. 그렇다고 우빈 배우한테 담배를 피우게 할 순 없어서 모든 흡연 장면을 CG로 처리했어요.
악역 ‘류석’으로 등장한 송승헌 씨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으시잖아요?

영화 <일단 뛰어>로 처음 만났으니 21년의 인연이네요. 그 전부터 어떤 작품을 하든 같이 하고 싶다고 얘기해왔는데, 이번에 기회가 좋았어요. 류석을 통해 승헌 배우의 잘생김이 아니라 악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잘해줘서 감사하고 있어요.

새롭게 눈 뜬 드라마의 매력

영화만 하다 첫 드라마 도전이에요
영화와 화법이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영화는 예매율을 보면 판단이 되는데, 드라마는 처음 하다 보니 어떻게 되는 건지 근거를 따질 수 없더라고요. 작품 공개를 기다리면서 초조하기도 하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궁금했어요.
영화 찍을 때와 드라마 찍을 때의 차이점이 있다면요?

영화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쭉 이어지는데, 드라마는 각 에피소드마다 기승전결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없어 3~4 테이크 안에 ‘오케이’기 나와야 했고요. 6부작 찍는데 영화 2편 찍는 것처럼 힘들더라고요(웃음).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드라마 감독님들이 대단한 분들이었구나 싶었어요.

만약 영화와 드라마, 둘 중 한 장르만 골라야 한다면?
영화를 오래 해왔으니 영화를 고를 것 같아요. 하지만 <택배기사>를 하면서 드라마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더 열심히 하면 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요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K-드라마 시리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이런 성공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드라마 한 편밖에 찍지 않은 제가 감히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네요(웃음). 이미 우리나라에는 좋은 작품과 훌륭한 감독이 많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영화감독들도 시리즈물을 많이 시도하고 있고요. 그런 만큼 재미있고 독특한 소재의 스토리를 더 많이 찾아내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가면 지금의 세계적인 성공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택배기사> 시즌 2가 나오면 다시 해보고 싶은데, 그건 넷플릭스의 결정이 필요하겠죠. 우선 영화를 새로 준비하려고 했는데, 6개의 드라마로 쪼개서 해볼까도 생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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