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N N스토리 2
K-애니메이션, ‘적자생존’을 기억하라
글. 박재우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교수

영유아 콘텐츠에 강점을 지닌 K-애니메이션 산업에 변화의 모멘텀이 생겼다. OTT 등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이 부상한 것. 이제 더 다양한 K-애니메이션 작품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K-애니메이션이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도약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전 세계 온·오프 라이프스타일이 광속도로 교차하며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고,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세력을 확장해 온 OTT 플랫폼은 거대 자본력,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 시청 트렌드의 변화라는 강력한 무기를 등에 업고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아우르는 영상산업의 패권을 차지했다. 이제 관객들은 극장보다는 모바일과 OTT로 재편된 새로운 형태의 ‘홈엔터’를 보다 선호하고, 시청자들은 ‘본방사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2014년 5월, 한 애니메이션 관련 포럼에서 앞으로 미국의 넷플릭스와 같은 OTT가 글로벌 메인스트림 미디어가 될 것이라는 필자의 발표에 국내 방송국 관계자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지금 우리 애니메이션은

2023년 국내 미디어 시장의 상황은 어떠한가? 박스오피스 수익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대형 극장 체인도 사업성을 재검토하고 있다. OTT는 10~20대뿐 아니라 30~40대 이상의 시청자도 포용하고 있으며, 시청자는 월정액을 지불하고 원하는 시간대에 다양한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는 자유를 선호하고 있다. 더군다나 OTT의 K-무비, K-드라마 등 다양한 K-콘텐츠들은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한국 고유의 독창적인 콘텐츠 풀로부터 다양한 내러티브 소스를 공급받고 있다. 이런 K-콘텐츠의 가능성을 꿰뚫어본 넷플릭스는 향후 4년간 2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K-콘텐츠의 르네상스가 찾아온 듯하다.

K-애니메이션은 영상산업 패권을 차지한 OTT 플랫폼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애니메이션 업계에 몸담고 지금은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르네상스에 마냥 찬사를 보낼 수만은 없다. ‘과연 K-애니메이션도 넷플릭스의 투자 계획에 포함되어 있을까?’ ‘K-콘텐츠에서 애니메이션의 위상은 어디쯤 위치할까?’ 답을 하기에 참 애매한 질문인 것 같다. K-애니메이션의 과거와 현재는 어디에 있고 미래를 향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애니메이션 시장의 위기는 팬데믹 이전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영유아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로 인해 장난감 등 애니메이션 관련 오프라인 머천다이징의 매출이 감소로 돌아서는 추세였다. 어린이들이 TV보다 모바일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지상파·케이블 채널의 애니메이션 시청률 또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중소 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과감한 정부지원과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결국 매년 제시된 숫자와 변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OTT에 기대를 걸었지만, K-무비와 K-드라마의 과감한 투자와는 달리 오리지널 K-애니메이션의 투자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팬데믹 이후, OTT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지만, 소수 제작사를 제외하고는 오리지널 K-애니메이션 콘텐츠가 낄 수 있는 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부흥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제작사들의 다양한 기획과 애니메이션 산업 전반의 정책구조 개편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만화 보던 애들’이 어른이 되며 새로운 재미를 갈구

팬데믹 이전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영유아물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등의 성공과 함께 수많은 제작사가 영유아물을 기획 제작했고,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역량의 대부분이 영유아물에 집중되어왔다.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영유아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애니메이션의 국내 방송국 편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수익 창출을 위해 장난감 회사와의 연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작자들은 이에 맞춰 저연령 중심의 애니메이션 기획 개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애니메이션 총량제’ 등 관련 법 및 지원 정책도 이런 상황에 포커스를 두고 실행되어왔다. 하지만 OTT 전성시대로 바뀌어버린 지금의 시점에서 ‘지상파가 새로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1%를 편성하도록’ 의무화한 ‘애니메이션 총량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 © OCON STUDIOS

K-애니메이션이 한국 대표 콘텐츠의 하나로 거듭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 업계와 정부는 과감히 변화해야 한다. 이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웹툰과 웹소설의 사례를 보자.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구독자들의 별점을 통해 냉정한 평가가 진행되는 ‘콘텐츠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대중성과 창의성을 갖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살아남는다. 웹툰·웹소설의 유료 결제 연령층이 2030을 넘어 3040까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면 ‘애들만 보던 만화’가 아닌 ‘만화를 보던 애들’이 성장해 앞으로는 대중 전체를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이 분명하다.

스토리 풀 확장 등 다양한 시도와 지원 필요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도 이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해야 한다. 우선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의 풀을 과감히 확장하여 다양한 기획을 시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독창적이고 풍부한 스토리 풀을 이용해 15세 이상을 위한 청장년층 타깃 콘텐츠를 기획하고 OTT와의 연계와 투자 유치를 해야 한다. 제작사는 국내외 다양한 OTT의 편성 방향성을 연구하고 K-애니메이션이라는 강력한 한류 콘텐츠를 편성하여 글로벌 시청자에게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들의 전통적인 출판문화산업의 풀이 스토리 창작을 뒷받침하고 있기에 애니메이션 산업의 부활이 가능했다. 우리도 이젠 어떤 국가도 넘보지 못할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탄탄한 디지털 스토리 플랫폼이 있지 않은가? 이미 스튜디오미르의 〈외모지상주의〉, 스튜디오게일의 〈나노리스트〉 등과 같이 웹툰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작품에 주요 OTT의 투자배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향후 한국 상업 애니메이션이 나아갈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외모지상주의> 등 웹툰 각색 작품의 성공은
K-애니메이션의 한 지향점이다.
© 스튜디오미르

성인층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요는 이미 증명되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일부 OTT는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편성하고 있다. 최근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의 국내 박스오피스 성공을 분석해 보면 20대 이상의 성인이 주요 관객층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공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공이라 단정 짓지 말고, 새로운 마니아층을 생성하고 긴 세월 동안 지속되어 다양한 형태의 스핀오프로 확장할 수 있는 15+ 타깃의 K-애니메이션의 시장성과 가능성을 분석해 봐야 한다. ‘만화를 보던 애들’이 어른이 되며 새로운 재미를 갈구하고 있다. 이들의 향수와 감성을 자극할 만한 K-애니메이션을 기획하자.

정부의 지원 정책도 이에 맞춰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현재의 정책과 관련 법안은 예전의 방송국과 극장 체제에 맞춰져 있다. 현재의 지원정책과 제도가 OTT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빠르게 재정비해야 한다. 프랑스나 기타 EU 국가들은 이미 법안을 통과하여 OTT 관련 제도를 수립하고 있다. 글로벌 OTT들은 이들 국가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정 부분을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에 의무투자해야 함은 물론이고, 원작자와의 저작권 공동 소유 등의 과감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도 하루 빨리 OTT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OTT는 유행이 아닌 미디어 스탠다드다. OTT는 빠른 소비 성향의 이용자들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콘텐츠를 찾고 투자한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기획 전략 수립과 체질 개선을 해야 하고, 정부는 이들과 상생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학계는 산업과 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와 제언을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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