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N N스토리 1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 어디까지 왔을까
글. 최윤주(웹툰평론가)

K-애니메이션이 날아오르려면 ‘스토리’라는 날개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K-웹툰이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온 웹툰의 애니메이션화. 그 흐름을 살펴보고 두 장르 간의 ‘스토리 시너지’를 모색해본다.

©Unsplash, Tim Mossholder

4DX <문유>, 어설프지만 확실한 새 걸음

3,896. 지난해 4DX로 개봉한 <문유>의 관객 수다. 참고로 조석 작가의 원작 웹툰 첫 화에 달린 댓글 수가 만 개를, 마지막 화의 댓글 수가 4천 개를 넘는다. 30만이나 3만 관객은커녕 원작의 애독자들 마음도 사로잡지 못한 셈이니 좋은 성적을 거뒀다 평가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량평가가 아니라 정성평가라면 이야기가 좀 다를까? 3,896명 관객 중의 한 명으로서 감히 말하자면, 그것도 좋은 평가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화장실 변기가 폭발하는 장면에서 물세례를 맞은 건 확실히 잊히지 않는 생생한 불쾌감을 남겼으나 웹툰을 4DX로 제작했다는 의의 외에 완성도 면에서 거둔 성과는 미미했다. 영상에 그대로 삽입된 말풍선이나 어설픈 움직임이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플래시 영상에 가까워 보였다. 분류상 애니메이션으로 구분되긴 했으나 정확히는 ‘극장에서 몸으로 읽는 웹툰’을 표방한 것이니 매끄러운 영상물과 비교하는 것은 다소 부당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관객으로서 느끼는 직관적인 감상을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스크린이 민망할 정도로 부실한 50분이었다.

4DX <문유> ©CGV

그런데도, 그날 본 것은 웹툰 애니메이션이 걸어가고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의 길목이라 생각됐다. 아쉬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비관이 아니라 낙관을 했던 셈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지난 10여 년간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다져온 자기만의 기반 덕이다. 영화나 드라마화에 비해 흥행 성과가 뒤처져왔음에도 계속 시도해온 결과, 조금씩 그 성과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개그툰으로 시작한 웹툰의 애니메이션화

애니메이션 <마음의 소리> ©두루픽스

웹툰 애니화의 행보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개그 웹툰 원작 시기다. TV 방영 애니메이션 중 최초로 원작이 된 웹툰은 지강민의 <와라! 편의점>으로, 2012년에 방영되었다. 이후 2014년에는 <놓지마! 정신줄>이, 2016년에는 <마음의 소리>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세 작품 모두 이등신 형태의 귀엽고 단순한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하며 일상의 감각에 가까운 소소한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개그툰이라는 사실이 눈에 띈다. 각 회차가 독립적으로 구성된 원작의 성격에 맞춰 애니메이션의 호흡도 짧은 편이고 잔잔히 웃음을 주는 분위기다.

다만 원작을 배제하고 자체의 완성도만을 따진다면 다소 미묘한 느낌이다. 특히 컷과 컷을 내릴 때마다 툭툭 무심한 듯 괴상한 말과 행동을 던져 독자를 웃기는
<마음의 소리>는 생략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영상과 개그 면에서 시너지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을 감안하더라도 개그툰을 애니메이션화한 것은 합리적인 전략이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나오던 2010년대에 이미 굵직한 서사를 가진 스토리 웹툰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하필 개그툰을 선택한 것은 일종의 안전한 모험이었던 것 같다. 형과 색이 단순한데다 서사의 큰 생략이나 변형 없이 매체 전환이 가능하고, 많은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아도 움직임이 비교적 덜 어색하니 애니메이션화의 첫걸음을 떼기에 적합한 장르였을 것이다. 나아가 초기 네이버웹툰의 정체성을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장르를 가장 먼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니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기도 한다.

웹툰 애니메이션의 도약과 지속되는 과도기

두 번째 시기부턴 본격적으로 스토리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2020년에는 네이버웹툰의 <신의 탑>, <슈퍼 시크릿>, <기기괴괴 성형수>의 애니메이션이 공개되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기 연재를 이어온 대서사 판타지 <신의 탑>과 귀여운 그림체의 로맨스 웹툰 <슈퍼 시크릿>, 호러 웹툰 <기기괴괴>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에피소드 ‘성형수’까지. 장르도 작화 스타일도 제각각이지만 앞서 애니 원작이 되었던 개그툰들과 비교한다면 서사가 훨씬 굵직해지고 분위기가 한결 무거워졌다는 점에서 뚜렷한 공통점을 보인다.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 ©스튜디오애니멀

영화관 상영을 전제로 만들어진 <기기괴괴 성형수>는 좀 더 밀도 있는 몰입감을 주는 편이지만, 이때도 완성도만을 가지고 논하기에는 애매하다는 인상이다. <신의 탑>의 경우 원작을 따른 것으로 보이긴 하나, 서사와 액션 규모에 비해 작화가 단순해 몰입감이 떨어진다. <슈퍼 시크릿> 역시 원작의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어정쩡한 크기로 확대돼 안정감 있는 느낌은 아니다. 단순한 배경과 클로즈업이 유독 도드라지는 구도 등을 근거로 추정컨대, 감상 디바이스가 TV나 PC가 아닌 모바일을 전제로 한 것 같다. 모바일 웹툰이 모바일 애니메이션으로 고스란히 이식되는 과정을 보여준 시기이자 웹툰 애니메이션의 완성도가 자리 잡기 직전 과도기라고 생각된다.

웹툰과 애니메이션의 상호작용과 잠재력

마지막 세 번째 시기는 스토리 웹툰이 넷플릭스나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있는 최근이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에서 <외모지상주의>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올해 2023년 상반기에는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이 방영 중이다. 그리고 2024년에는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이 방영을 앞두고 있다.

작화가 훨씬 유려하고 밀도 있으며 구도나 움직임도 자연스럽다. 이전의 작품들은 때때로 회당 20여 분의 러닝 타임이 과하다고 생각됐다. 서사에 모자람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구현력이 따라오지 않으니 애니메이션이라는 옷이 몸에 맞지 않는 인상이었다. 반면 지금은 내용과 형식 모두 규격이 맞는다는 느낌이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디앤씨웹툰비즈

웹툰의 애니화가 이토록 자연스러워진 것은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콘텐츠 시장 내 웹툰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그만큼 많은 자본을 투입할 수 있게 된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웹툰 자체가 이전보다 ‘애니화’에 걸맞게 변해온 것 역시 또 하나의 이유라 생각된다. 원작 웹툰의 작화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디자인과 높은 해상도를 갖추게 됐으며, 스크롤 형식이 무르익으면서 자체의 연출이 한층 더 영상적 성격을 보이게 된 것이다.

완성도에 상한선이란 없고, 제작과 유통 역시 좀 더 안정적인 통로가 모색되어야 할 테지만, 웹툰과 애니메이션이 전보다 시너지를 일으킬 가능성만은 높아진 상태라고 평하고 싶다. 그러니 4DX 애니메이션으로 대작 웹툰을 만나는 일은 물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앞으로의 가능성을 목도하는 일도 그리 먼 일은 아닐지 모른다. 물론 그 성과가 어떠한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와 관객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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