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편리함에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AI에 종속된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AI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도구로써 활용’과 ‘맹목적 의존’ 사이에서 스스로 중심을 잡는 데 있다.
속도를 좇기보다 인류 고유의 가치와 주체적 선택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인지人조화’의 시작이다.
‘AI 월세’는 어느새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AI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이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구독료를 지불한다. 생각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훨씬 더 큰 경험 가치를 얻을 수 있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누구나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본격적인 콘텐츠 제작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발판으로 AI 툴을 사용하고 있다.
무한 경쟁의 AI 서비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반 사용자와 전문가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몇 년 전만 해도 AI는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구독료만 내면 클릭 몇 번으로 전문가 수준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이 편리함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한 비용이 숨어 있다. 방대한 자본으로 학습된 모델이,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지구 반대편의 GPU 서버에서 구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지구 반대편의 GPU 서버가 멈추거나 학습된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AI를 ‘이용’하는 단계를 넘어 ‘의존’의 문턱에 서 있는 셈이다. 그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채, 매번 새로운 모델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콘텐츠는 오랫동안 주로 소비의 대상이었고, 일반인이 직접 제작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AI 모델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이제는 소비자 단계에서 1인 크리에이터로 도약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혼자서도 기업 수준의 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전문가만 다룰 수 있었던 제작 도구와 환경이 AI 기반의 직관적인 웹 인터페이스 형태로 대중에게 제공되면서, 누구나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콘텐츠 시장에 이전과는 다른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은 곧바로 AI 도구 활용으로 이어지고, 비전문가의 창작물이 새로운 관심을 받는다. 이 관심은 다시 기존 전문가들에게 신선한 통찰을 제공하며,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AI 도구의 등장은 비전문가의 창작 참여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더 이상 과거의 전문 제작 방식만을 고수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제 경험이나 기술이 없어도, 아이디어로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반면에 전문 제작자들은 AI를 전략적 무기로 삼아 고도화된 연출과 효율성을 실현하고 있다. 반복 작업은 자동화하고, 그만큼 창의적 기획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생산성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빠른 시장 대응과 차별화된 퀄리티를 동시에 달성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매일 아침 소셜 미디어에는 “이런 모델이 나왔는데 진짜 대박이야!”라는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 것이 먼저 공개된 결과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정보는 넘쳐나고, 그 전달 속도는 모델 출시 속도조차 따라잡지 못할 지경이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AI 모델의 수명주기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한때 1년 주기로 업그레이드되던 모델이 이제는 6개월, 심지어 1~2주마다 새 버전을 내놓으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 ‘속도전’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소셜 채널 전반을 ‘키워드 선점’의 전장으로 만들었다. 기업과 크리에이터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최신 모델을 확인하고 바로 적용한다. 그렇게 쌓이는 매일의 소식은, 어제의 화제가 순식간에 빛이 바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비즈니스 현장도 다르지 않다. 잊히지 않으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고성능 모델을 훈련·배포하고, 또 다른 모델을 뒤쫓는다.
이 속도 경쟁의 부작용 역시 크다. 정보 생산이 소비 속도를 압도하면서 ‘무분별한 따라잡기’ 압박이 시작된다. 사실 확인이 불명확한 공포 마케팅 및 과장·추측성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다. 대중은 “일단 써보고 보자”라는 태도로 AI를 사용하지만, 곧 피로를 느낀다. 이른바 ‘무의미한 추격’이 반복될수록 AI 도구 본연의 가치는 사라지고, 결국 모든 시간이 비용으로 환산되고 만다.
AI 모델의 학습과 출시 속도는 이제 인간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매번 새로운 알고리즘이 공개될 때마다 우리는 그 속도를 좇아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나 단순히 최신 모델을 사용하는 전략으로는 더 이상 의미를 찾기 어렵다. 기술은 계속 나아가지만, 인간은 결국 쉬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한다. 이 회복의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에이티브(creative)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현상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시선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영사기 같은 기계적 복제가 예술 작품 고유의 ‘아우라’를 어떻게 침식시키는지 설명했다. 원작이 지닌 시간적·공간적 유일성은 사라지고, 복제물은 대중 속으로 무차별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오늘날 AI가 쏟아내는 무수한 결과물도 마찬가지다. 인류만의 고유한 창작의 순간과 맥락이 사라진 채, 필요에 따라 무수히 복제되고 소비된다면 우리는 그 ‘아우라’를 지킬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결과물을 멈춰 세우고 묻지 않고 있다.
“이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가?”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가치를 남기는가?” 과거 벤야민이 제기한 문제를 되새기며, 맹목적인 속도 경쟁을 멈추고 ‘생산’의 목적과 ‘소비’의 가치를 동시에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AI는 생산성을 위한 도구로 평가받지만, 우리는 ‘이용’과 ‘의존’의 경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분명 그동안 AI는 다양한 어려움을 타파해 준 강력한 보조수단이었다. 반면, 어느 순간부터는 AI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 AI 도구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쓸 수 있는 ‘도약대’가 된다. 사용자는 반복적인 작업을 AI로 자동화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창의적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도구 사용의 목적과 결과물의 한계(추론의 오류 등)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일이다. AI가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에 매몰되지 않으며, 언제 어떤 이유로 해당 모델을 활용할지 또한, 결과물의 질(수준)의 적합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AI에 지나치게 기대하고 의존하면, ‘인간 고유의 판단력’이 약화될 수 있다. 결과물을 AI에게만 맡기고 검토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인지人조화 시대에서 핵심 과제는 AI의 이용의 한계성을 인지하고, ‘인류의 중심(中心)’을 지키는 데 있다. 기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학습하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발적 학습과 지속적 성찰을 통해 AI에 대한 의존을 경계하면서도, 도구로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아직 스스로 그 중심을 잡기 어려운 사용자라면 경험을 가진 멘토나 부모의 올바른 지도를 받아 AI 툴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AI의 비약적인 진화 속도와 인간의 성장 속도가 같아질 수 없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의 갈림길을 논했듯, 어쩌면 이 순간이 인류가 분화하는 중요한 분기점일지 모른다.
과거의 수많은 모래성처럼 쌓여가는 결과물(콘텐츠)들이 가장 빛났던 이유는 ‘흠 없는 기술적 완성도’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실수와 고유한 색채를 지닌 ‘인류’ 자체의 다양성과 개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인지人조화’라는 말이 시사하듯, 우리는 AI라는 강력한 도구와 조화롭게 융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언제·어떤 목적을 위해 활용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무의미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최돈현 / (주)소이랩엑스 대표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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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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