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현재의 글로벌 환경에서 탄생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콘텐츠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히 소재와 장르 결합을 넘어 제작 방식과 수용 방식에서의
하이브리드(Hybrid, 결합)를 보여주고 있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기획부터 절묘하다. 먼저 ‘K-팝’과 ‘데몬 헌터스’의 결합이 기발하다. ‘데몬 헌터스’는 영어식 표현이지만 이 작품에서 의미하는 건 서구의 오컬트에 등장하는 구마사제가 아니다. 한국 고유의 무속에 등장하는 무당을 의미한다. 왜 하필 무당일까. 이는 무당과 K-팝 아이돌이 가진 은유적 유사성 때문이다. 무당이 하는 굿은 춤과 노래로 이뤄져 있고, 그들이 하는 굿은 누군가를 살려내는 힘을 발휘한다. 이는 K-팝 아이돌이 노래와 춤으로 팬덤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위로와 힐링을 선사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슈퍼스타로 활동하지만, 사실은 무당의 후예(데몬 헌터스)다. 주인공 루미, 미라, 조이가 대중을 현혹시키는 악령들을 그들의 춤과 노래(K-팝)로 물리치는 이야기다. 이 얼마나 기발한가.
하필 K-팝과 K-오컬트로도 불리는 무속이 결합한 데에는 이 두 소재가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먹히는(적어도 힙한)’ 아이템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해 현재의 에스파나 세븐틴 같은 아이돌그룹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한때 서브컬처 정도로 여겨지던 K-팝은 어느새 메인컬처의 위상을 갖게 됐다. 이 작품이 팝(Pop)도 아니고 J-팝(J-pop)도 아닌 K-팝을 소재로 삼았으며, 그저 소재적 차원의 활용을 넘어 진짜 K-팝 음악과 독특한 팬덤 문화까지 작품에 담아낸 것은 현재의 K-팝 문화가 그만큼 트렌디한 장르로 자리매김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애초에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감독 매기 강(Maggie Kang)이 오히려 관심을 가진 건 무속이었다. ‘악귀 디자인이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이를 물리치는 ‘섹시하고 터프하고 멋있는’ 여성 데몬 헌터 캐릭터가 먼저 구상됐다. K-팝은 데몬 헌터가 정체를 숨기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더해진 요소일 뿐. 그렇다면 무속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그 저변이 마련된 걸까.
이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비롯해 김홍선 감독의 <손 the guest>, 연상호 감독의 <방법>, 김은희 작가의 <악귀> 그리고 장재현 감독의 <파묘>까지 하나의 새로운 장르처럼 구성된 K-오컬트의 계보를 통해서다. 사실 K-오컬트 자체가 오컬트와 한국의 무속이 하이브리드되어 탄생한 장르다. 구마사제와 악령들 대신 무당과 한이 맺힌 귀신들이 등장하는 K-오컬트는 그 태생적 특성처럼 다양한 장르와 결합했다. 범죄스릴러(<손 the guest>), 히어로물(<방법>), 액션(<파묘>) 등과 결합하면서 마니악한 오컬트 장르를 보다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변환시켰다. <파묘>가 천만 관객 영화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하이브리드를 통한 장르의 창의적 변환 덕분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마찬가지다. 역시 무당들이 악귀들과 싸우는 액션 히어로 여전사들로 변모하며 훨씬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글로벌하게 수용될 수 있는 대중성을 갖춘 K-오컬트의 하이브리드적 특성이 이 작품에 담겼다.
엄밀히 말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미국의 소니픽쳐스 애니메이션이 제작을 맡았기에, 미국 작품이다. 자본의 관점에서는 미국 작품이 맞지만, 실제 제작 과정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하이브리드적 협업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을 기획하고 탄생시킨 매기 강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경계인’이다. 그 경계의 위치가 무속과 같은 한국 문화를 담은 작품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기에 남산타워 등 서울의 풍경과 거리를 재현한 아트디럭터 다혜 셀린 김 트와이스, 오드리 누나, 이재(EJAE) 등 한국 혹은 한국계 아티스트들, 테디를 비롯한 더블랙레이블 소속 프로듀서들, 리정과 잼 리퍼블릭의 안무가들이 함께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소니픽쳐스에 소속된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K고증’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소니픽쳐스 박상욱 애니메이터는 조선시대 궁궐 장면에서 왕과 양반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나, 식당에서 반찬들이 놓여 있는 위치, 수저와 숟가락을 냅킨 위에 올려놓는 장면, 목욕탕 장면에서의 때밀이 타월이나 샤워기 등 다양한 장면에 대해 디테일한 레퍼런스를 찾는 고증을 자발적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진우와 루미의 로맨스 장면을 위해, <선재 업고 튀어>, <사랑의 불시착>, <눈물의 여왕>, <사내맞선> 등 다양한 작품들을 참고했다. 즉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탄생에는 K-팝 K-드라마 같은 K-콘텐츠를 수용해 온 이들의 팬픽에 가까운 창의적 변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현재의 제작에서 이뤄지는 하이브리드가 국가나 기업의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취향을 구심점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소니픽쳐스에서 제작했지만. 그곳의 다국적 제작진들은 K-팝과 K-드라마라는 하나의 취향으로 결집해 독특하면서도 글로벌한 대중성을 갖춘 하이브리드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이 작품이 단순히 한국 문화의 전유물이 아닌 존중이 담긴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건 거의 팬픽을 다루듯 이 작품을 만든 제작진들의 진심 어린 애정과 열정 덕분이다. 이러한 진정성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초국적 다양성 문화 콘텐츠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저 의무적 차원의 고증을 넘어선 애정과 진심이 담긴 고증만이 해당 문화권의 진정한 호응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국의 제작사가 한국 문화를 소재로 삼아 글로벌 성공을 거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의 콘텐츠 제작 방식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타국의 문화를 소재로 삼아 창의적으로 변용하는 제작 방식은 ‘문화원형’이라는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원형은 ‘고유의 민족적 특성을 담고 있는 공감대의 산물’로서, 이를 작품화한 대표적 사례가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다. 북유럽의 신화를 바탕으로 마법의 세계를 그려낸 이 작품은 영국에서 제작돼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켰다. 또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쿵푸팬더>도 중국의 문화원형(쿵푸, 팬더)을 소재로 글로벌 인기를 끈 작품이고, 애플이 1,000억을 들여 제작한 <파친코> 또한 우리의 문화원형을 활용한 글로벌 작품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러한 문화원형이 그 문화를 가진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타국에서도 소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콘텐츠 제작도 국내에서 만들어 해외로 내보내는 전형적 방식을 벗어나, 해외 제작사와의 협업을 더욱 활발히 해내고 있다. 한 곡에 전 세계의 작곡가들과 안무가들이 제작에 참여하는 K-팝은 이 협업을 일찍이 시작했다. 2024년 JTBC가 베트남 VTV와 합작해 제작한 베트남판 <솔로지옥>인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처럼, 동남아 시장에서는 현지 제작사와 협업해 기획·개발된 예능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다. 또 CJ ENM이 일본 TBS와 함께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을 만들어 tvN에서도 동시에 방영하는 등, 이런 방식의 글로벌 협업이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미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장성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 역시 이러한 협업과 문화원형의 관점에서 향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장성호 감독이 연출, 각본, 제작, 편집을 맡아 미국의 배급사와 기획자 그리고 배우들이 협업한 이 작품은 찰스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를 원작으로 한다. 예수의 서사라는 이미 글로벌한 문화원형을 창의적으로 해석해낸 작품이다. 이처럼 이제 협업은 단순한 제작 과정의 차원을 넘어 타국의 문화원형을 발굴해내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의 콘텐츠 업계가 그간 쌓아온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제는 제작이든 소재든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시선을 넓히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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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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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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