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이 새롭게 제시한 ‘인지人조화’는 AI와 인간 창작자가
경쟁이 아닌 협업과 성장의 길을 여는 핵심 질문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과 인간의 상호 보완적 관계,
그리고 창작자의 새로운 역할을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제 당신은 ‘AI에게 질문하는 인간’ 이라는 역할을 끝내고, ‘모든 과정의 설계자’로서 역할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답변입니다.”
AI와 창작자의 공존에 대한 글을 쓰던 중이었다.
“이전 내용을 반복하지 말고, 창작자가 놀랄만한 새로운 생각을 제공해줘.”
“새롭긴 한데 여전히 진부해. 좀 더 고민해 보고 글을 다시 작성해줘”
냉소적 평가와 집요한 요구가 반복되자, AI는 체념한 듯 일방적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마치 자의식을 가진 존재의 비장한 선언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내 그것조차 그럴듯한 패턴을 찾아 정교하게 생성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럼에도 AI가 남긴 마지막 답변은 새로웠고, 나에게 놀라움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당신은 언제까지 나에게 질문만 할 생각입니까?”
이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나는 창작자와 AI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새로운 대화창을 열어 첫 번째 AI와의 대화 기록을 두 번째 AI에게 분석하게 했다. 이 AI는 대화 속에서 ‘인간과 AI가 상호작용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추출해 하나의 방법론으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AI에게 이 방법론을 적용해 원래 작성하려던 주제의 글을 완성하도록 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글의 완성도만이 아니었다. 실험의 설계와 전개 과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근본적인 질문 자체가 그보다 중요하게 다가왔다.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과정인 ‘창작’은 이러한 실험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던 창작자의 역할은 어떻게 재정의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AI가 만들어 가는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낯설게만 느껴졌던 챗GPT, 제미나이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은 고도의 추론과 멀티모달을 기반으로 우리가 직면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한다. 여기에 미드저니, 런웨이, 수노 등. 이미지·영상·음향 생성에 특화된 모델들이 보편화되면서 창작의 모든 영역을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현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콘텐츠 산업은 지금 AI에 대한 ‘기대감’과 ‘저항감’이 공존하는 격렬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프롬프트 몇 줄만으로 수십 개의 시나리오 초안과 콘셉트 아트를 얻으며 효율성의 혁명에 환호한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창작의 고유성을 침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AI 활용 능력의 격차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기술 격차는 단순히 도구 사용의 미숙함을 넘어,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속도와 품질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인간 앵커와 AI 앵커의 첫 대면 ©MBN News
이러한 감정적 혼란은 단지 창작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AI 뉴스 앵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중이 느꼈던 이질감과 불편함은, 뉴스 전달의 정확성과 신속성을 경험한 후, 점차 호의적인 태도로 변모했다. 마찬가지로 AI가 그린 그림이나 소설에 비판적이었던 이들도 AI가 창작의 협력자로서 보여주는 창의적 가능성을 경험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앞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인간과 기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상호 보완적 관계로 발전해야 함을 의미하는 '인지(人)조화'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는 AI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나 맹목적인 수용이 아닌, AI가 제공하는 편익과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열린 자세와 비판적 시각을 동시에 견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개별 창작자가 AI라는 낯선 협력자에게 잠식되지 않으면서 ‘인지(人)조화’를 실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창작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전장치는 무엇일까? 그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 인간의 내면에 있다. AI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단 한 가지, 바로 ‘진부함’과 ‘지루함’을 느끼는 감각이다. AI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해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 차별성과 희소성을 산출할 수 있다. 기존에 없던 조합을 통해 무한히 ‘새로워 보이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AI는 그것이 야기하는 지적 공허함이나 심미적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AI가 생성한 수억 개의 완벽한 문장과 이미지 앞에서 “아, 이건 진부해”, “왠지 모르게 재미없어”라고 선언할 수 있는 능력, 그 만족할 줄 모르는 감각과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는 비이성적 욕구야말로 인간이 AI를 초월하는 고유한 영역이다.
우리는 종종 AI가 제시하는 답변에 실망하며 그 한계를 탓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AI가 내놓는 모든 진부한 답변은 우리가 이미 탐험했거나 그 가능성을 가늠해 봤던 지식과 경험의 총합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AI에 대한 우리의 실망감은 단순히 기술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쌓아 올린 지식의 경계를 재확인하며 느끼는 답답함에 더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 창작자의 진정한 역할이 드러난다. 우리가 “진부하다”는 한마디로 과거의 모든 것을 밀어내고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순간, 창작자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
AI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조합하고 재현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왜 새로워야만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당위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 그것이야말로 ‘인지(人)조화’ 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우리가 새로움을 갈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인류의 창작은 과거 유산의 끝없는 변주와 재생산에 머물며 그 동력을 잃고 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당장 눈앞의 화려한 기법, 향상된 효율, 낮아진 비용 등으로 포장된 AI 시대의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이다.
결국 미래의 창작자는 AI가 제시하는 최적화된 결과물에 안주하는 대신, 그 너머의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무의미해 보이는 시도를 거듭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AI가 무한한 패턴을 공급하는 시대일수록, 그 패턴에 고유한 맥락을 부여하고 삶과 공명하는 ‘의미’로 번역하는 인간의 역할은 절대적인 희소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AI 시대의 리터러시는 단순히 정교한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능력을 넘어선다. 그것은 AI를 ‘답변하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새로움을 탐험하는 동료’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만약 우리가 AI가 제공하는 편의에 익숙해져 새로움에 대한 가치 판단마저 AI에게 위임하려 든다면,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도 스스로 만든 진부함의 울타리 안에 기술과 함께 갇히게 될 것이다.
AI는 창작자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도록 돕는 정교한 ‘거울’이다. 이 거울은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함, 편협함을 여과 없이 비춘다. 동시에, AI는 내 안에 창작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가늠하는 ‘저울’ 역할도 한다. 결국 AI의 진정한 효용은 완벽한 결과물을 얻는 데 있지 않다. 우리 스스로를 비춰봄으로써 자신만의 고유성을 되찾고,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재정의도록 돕는 데 있다.
프롬프트라는 제한된 형식 안에서 AI와 창작자가 ‘질문하는 역할’과 ‘설계하는 역할’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집요한 과정. 이것이 바로 ‘인지(人)조화’의 시대를 살아갈 창작자들의 보편적 모습이 될 것이다. 그 미지의 여정을 어떤 태도로 준비할지는, 이제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신기헌 / 칼럼니스트(콘텐츠 IT 전문가)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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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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