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열렸던 밴드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다양성, 환경 문제 등 여러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콜드플레이 공연의 여러 논점을 짚어보고, 해당 공연이 K-팝 시장에 던진 질문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총 6회, 회당 5만 명, 내한 팝스타 사상 역대 최다인 31만 명의 관객이 다녀간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한국 공연. 지난 4월 대중음악계 ‘최대 이벤트’였던 밴드의 공연은 K-팝 기획사 관계자들의 워크숍을 방불케 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다녀가서다.
블랙핑크 로제가 게스트로 나온 4회차 공연을 관람했다는 국내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K-팝은 이제 K를 떼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밴드의 음악성, 공연의 구성은 물론이고 곳곳에 숨은 메시지가 영감과 충격을 동시에 줬다”고 말했다.
8년 만에 내한한 21세기 가장 성공한 밴드는 여섯 번의 공연을 통해 K-팝 업계에 경종을 울렸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흔들림 없는 가치의 추구, 그것을 행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왜, 아직도’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는 이방인이다(Everyone is an alien somewhere)’.
콜드플레이가 3년째 이어가고 있는 월드 투어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Music Of The Spheres)>를 관통하는 주제다. 밴드는 굳이 ‘선한 메시지’를 설파하려 하지 않지만, 공연 곳곳에선 다름을 인정하고, 가치를 나누며 연대하는 밴드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공연이 무르익을 무렵, ‘피플 오브 더 프라이드(People Of The Pride)’가 나올 때 콜드플레이의 프론트맨 크리스 마틴은 성소수자(LGBTQ+)를 상징하는 ‘프라이드 플래그’를 흔들었다. 밴드는 “여러분은 키가 크든 작든, 부자든 가난하든, 이성애자든 성소수자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밴드의 목소리는 ‘침묵이 미덕’이었던 국내 음악계에 최근 일고 있는 변화와 맞물리며 달라진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그룹 저스트비(JUST B) 멤버 배인은 콜드플레이가 한국 공연 중일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어진 본인의 콘서트에서 “내가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보다 앞서 하이브의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 라라도 “성 정체성은 나의 일부이고, 이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커밍아웃했다.
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배인은 공연에서 커밍아웃했다.
©인스타그램 6a1n__
단 한 번도 없었던 ‘아이돌 커밍아웃’ 사례가 등장하자, 업계도 다소 놀란 눈치였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하이브라는 대형 기획사에서 커밍아웃을 허락할 줄 몰랐다”고 귀띔했다. 다만 K-팝 그룹의 커밍아웃을 바라보는 국내외 팬덤의 온도 차가 보인다. 주체의 변화는 시작됐지만, 수용자의 변화는 아직 더디다. 캣츠아이 라라의 커밍아웃은 해외 팬덤 사이에선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최근 발표한 신곡 ‘난리(Gnarly)’ 역시 영국 오피셜 차트, 미국 빌보드 차트에 입성하며 그룹의 최고 성적을 기록 중이지만 국내에선 큰 화제가 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선 “커밍아웃 사례에 노골적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아니나, 국내 팬덤의 심리적 거리를 만든 부분도 있다”고 보기도 한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다. 무대와 무대 아래에선 ‘연대의 노력’이 이어졌다. 매 공연 10여 명의 농인을 초대했고, 현장에선 수어 부스가 운영됐다. 크리스 마틴은 노래 중 한국 수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많은 공연 수익을 올리는 팝스타지만, 콜드플레이는 월드 투어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다. 공연하는 나라와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굳이’ 번거로울 수 있는 협업 사례를 만들었다. 콜드플레이와 함께하는 퍼펫(Puppet, 인형) 밴드 위어도스의 움직임을 위해 공연 국가의 ‘퍼펫 장인’과 협업한 것이다. 미국, 유럽, 아시아로 향하는 K-팝 그룹의 공연에선 만나기 힘든 사례다.
한국에선 오브제 디자이너이자 퍼펫 마스터인 문수호 극단 목성 대표가 참여했다. 문수호 퍼펫 마스터는 “전 세계 공연을 다닐 때는 기존의 퍼펫 배우들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편한 일인데 굳이 현지에서 퍼펫 마스터와 협업하는 것은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라며 “‘현지에서의 협업’을 통해 생명체가 아니었던 퍼펫을 또 하나의 생명체로 살려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취지와 의미에 공감해 협업에 응하게 됐다”고 했다.
자이로밴드 수거율 ‘한국 99%’, ‘일본 97%’, ‘헬싱키 97%’, ‘홍콩 94%’. 이번 한국 공연에선 ‘경쟁의 민족’을 자극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관객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 환경보호에 경쟁심리 한 스푼을 얹어 난데없는 한일전이 시작된 것이다. 첫 공연(4월 16일) 당시 자이로밴드 회수율이 일본에 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분발해야 한다는 각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종 수거율은 99%로 껑충 뛰었다. 자이로 밴드는 회당 5만 관객의 손목에 착용하는 친환경 식물성 소재의 LED 팔찌다.
이번 내한 공연의 자이로밴드 회수율 ©콜드플레이
콜드플레이는 앞서 지난 2019년 말 여덟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월드 투어 중단을 선언했다. 2016~2017년 진행한 월드 투어의 탄소 배출량이 250만 톤이나 나왔다는 분석에 충격을 받은 뒤 내린 ‘결단’이다. 당시 크리스 마틴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향후 1~2년간 우리 투어가 친환경적인 동시에 수익성이 있을지 고민하겠다”며 환경오염을 줄이는 ‘탄소중립’ 투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2021년 10월, 콜드플레이는 ‘지속 가능한 투어’를 선언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전기·이동·무대공연·팬·물·쓰레기·음식·상품·선의·자연·투명성 등 12개의 실천 강령을 내세웠다. 햇수로 5년. 콜드플레이의 ‘친환경 투어’는 진화했다. 투어 경로 최적화를 통해 이동 거리를 줄이고, 항공 이동 땐 지속 가능 항공 연료(SAF) 사용 비율을 높여 탄소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삼았다. 육상 운송에선 전기 트럭이나 바이오디젤 차량을 쓰고 있다. 티켓 한 장당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지금까지 총 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산림 복원은 물론 티켓 수익금 일부를 해양 정화·탄소 포집 기술 지원·환경법 제정에도 쓰도록 했다. 관객들의 자발적 참여도 독려했다. 공연용 전력을 얻기 위해 플로어 석 일부에 마련한 ‘키네틱 플로어’와 자전거 파워 바이크는 공연을 즐기며 ‘지속 가능한 가치’를 만드는 장치가 됐다. 밴드의 무대는 재사용 가능 소재를 쓰고, 자이로 밴드는 100% 퇴비화가 가능한 식물성 소재로 제작해 재활용한다. 그 결과 이번 월드 투어에서 이전보다 탄소 배출량이 59%나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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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콜드플레이의 실천은 사상 최대 규모로 성장한 K-팝 시장의 얼굴을 붉힌다. 지금 K-팝 산업은 명실상부 ‘투어의 시대’에 돌입했다. K-팝 월드 투어는 엔터사의 주요 수익원이다. 각사 분기별 매출 보고서 등을 보면, 하이브는 지난 1년간 총 147회 콘서트와 25회 팬미팅을 열며 창사 이래 최대 공연 매출인 4,508억 6,500만 원을 기록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공연, 영상 콘텐츠 제작 등으로 3,825억 8,090만 원, JYP는 공연으로 1,035억 8,146만 원을 벌어들였다. 업계에 따르면 관객 1만 명 이상의 대형 공연 1회당 운송, 전력 소비, 쓰레기 발생으로 약 100만 톤의 탄소가 배출된다.
하지만 K-팝 업계에서 월드 투어를 통한 환경적 책임을 향한 움직임을 보인 곳은 YG 뿐이다. YG는 지난해 <지속가능공연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관리, 환경오염 저감, 사회 취약 계층 배려를 위한 기반을 마련, 2030년까지 국내외 모든 공연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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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팬덤 기후 위기 대응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과 기후 테크 기업 ‘오후두시랩’에 따르면 현재 콘서트, 앨범 판매, 음악 스트리밍 등을 통해 발생하는 K-팝 산업의 연간 탄소 배출량 추정치는 59만 3,380tCO2에 달한다. 콜드플레이의 방식은 지속 가능한 K-팝 산업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한 K-팝 기획사 관계자는 “이번 공연을 보며 밴드가 메시지를 내보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게 됐다”며 “이젠 세계 팬덤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받아들여 긍정적인 영향을 줘야 할 필요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다만 변화를 만들어가기에 치러야 할 비용 등 현실적 문제의 어려움이 커 우리의 여건에 맞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고승희 / 헤럴드경제 기자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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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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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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