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넘기는 잡지에서 스크롤을 내리는 잡지까지. 콘텐츠를 담는 그릇만 다를 뿐 사람들은 여전히 잡지를 본다.
세대에 맞춰 변모하는 잡지의 최전선에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있다.
뉴 미디어 과도기에 서 있는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명과 암을 살펴본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콘클라베에서 새로운 교황이 탄생했다는 신호다. 나는 그 소식을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알았다. 지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도,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알았다. 모두 ‘인스타그램 매거진’이라고 일컫는 뉴스 계정에서 퍼다 나르는 카드형 게시물이었다. 우리는 손바닥만 한 화면을 엄지로 스크롤하면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이슈가 실시간으로 도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너 그거 봤어?”로 시작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의 중심에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있다.
인스타그램 매거진이란 개념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잡지는 전통적인 기성 미디어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플랫폼이다. 잡지는 텍스트 기반의 지면형 매체고, 인스타그램은 이미지 친화형 디지털 매체다. 대척점에 있을 법한 두 개념이 뭉쳐 오늘날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됐다. 그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필연의 이유는 돈에 있다. 잡지사의 매출은 대부분 광고 수익에서 발생한다. 개인형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않았고, 시의성 없는 정보는 시장에서 죽은 정보 취급받았다. 지면 광고 시장에 변동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이 움직인다면 잡지는 한 걸음 더 빨리 반응해야 한다. 월간 단위 출력물로 발행되는 잡지 정보는 타이밍도, 분량도 모두 애매한 위치에 놓인 셈이 되었다. 잡지사는 대중이 관심 있는 정보를, 원하는 형태로, 적합한 때 제공해야 광고로 돈을 번다. 지면을 만들던 잡지사는 각 매거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고 자신들의 콘텐츠를 그곳에 홍보했다. 종이 잡지 속 기사 내용을 요약하거나 이미지 카드 형식으로 재가공해 빠르게 소비되는 SNS 성격에 맞춰 발행했다. 사내에는 디지털 부서가 신설되었고, 인스타그램용으로만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매거진이란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종이 잡지가 전성기를 맞던 시절 동영상 중심 인터넷의 등장은 시장에 큰 파도를 몰고 왔다. 광고 경쟁력을 잃은 수많은 잡지가 폐간됐다. 새로운 플랫폼에 타협한 잡지사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웹진’이란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가까스로 발행을 이어갔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역시 오늘날 잡지사의 새로운 홍보 수단이자 수익 모델인 것이다. 지면을 발행해 본 적 없는 회사 혹은 개인이 매거진 시장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이즈 매거진(@eyesmag)’, ‘데일리 패션 뉴스(@dailyfashion_news)’ 등이 있다.
아이즈 매거진(좌), 데일리 패션 뉴스(우) ©각 인스타그램 갈무리
인스타그램 매거진 시장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오늘날 대중의 관심은 상당 부분 인스타그램에 있다. 사람들은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정보를 보고 쓰고 토론한다. 그들이 모이는 곳에 돈이 있다. 사람의 관심과 집중을 끌어내는 곳에서 매출을 발생시키는 광고 업계와 광고주 역시 그쪽으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SNS는 특성상 대부분 최신 뉴스를 반영한다. 거기에 더해 정보 공유가 쉽고 피드백이 간편하다. 이로 인한 콘텐츠의 확산 속도는 종이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초월적인 경지에 있다. 독보적인 광고 경쟁력을 가진 시장이란 뜻이기도 하다. 이 모든 건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가진 분명한 장점이다.
이러한 장점을 앞세운 디지털 매거진 시장은 이미 종이 매거진 시장 규모를 넘어섰다. 대형 라이선스 매거진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에서도 투자와 합병이 발 빠르게 이루어졌다. <엘르>, <코스모폴리탄>, <하퍼스 바자>, <에스콰이어> 등의 잡지를 발행하는 HLL중앙은 아이즈 매거진과 합작하여 조인트 벤처 ‘아이즈중앙’을 설립했다. 아이즈 매거진의 2025년 5월 기준 팔로워 수는 109만이다. <보그>와 <W>, <얼루어>, <GQ>를 발행하는 두산매거진도 자체 디지털 플랫폼 브랜드 ‘패스트페이퍼’를 창간하고 공신력과 기획력을 앞세워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팔로워 수는 51만이다.
디지털 매거진 매체에서 광고 영업을 하는 한 담당자는 “지금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 들어온다”고 시장을 표현했다. 해외 명품 브랜드는 여전히 지면 광고를 유지하는 반면, 중저가 브랜드는 오히려 디지털 광고를 선호한다고도 했다. 광고 효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콘텐츠 도달률 즉, 트래픽과 인사이트 공유가 가능한 점이 광고주에게 확실한 이점이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지면 광고 영업을 하면서 디지털이 서비스로 들어갔다면, 이젠 주객전도가 되어 광고주에게 지면 광고를 서비스로 주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금 인스타그램 광고는 시장의 고래가 되어 잡지 업계 전반에서 지각을 흔들고 있다.
우리나라 인스타그램 매거진 시장 증대에 큰 도움을 준 건 K-팝 아이돌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도 역할이 컸다. SNS는 현실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글로벌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당장 아무 인스타그램 매거진 계정에 들어가서 아이돌 사진이 걸린 게시물을 클릭해 봐도 한국어보다 외국어 댓글이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오늘날 잡지 시장에서 매출의 상당 부분은 아이돌과 인플루언서가 가져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잡지사는 더 이상 지면만 발행해서 생존할 수 없다. 웹 기사도 쓰고, 동영상도 만들고, 인스타그램 게시글도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엔 셀럽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제도 있다. 국내외 대형 브랜드 행사가 열리는 날엔 어떤 매거진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도 똑같은 셀럽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마이크를 들고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반응은 확실하고 돈도 벌 수 있지만, 콘텐츠의 다양성은 사라졌다. ‘좋아요’와 댓글 수가 곧 매체의 트래픽 성적표로 나타나니 자극적이고 가십성 짙은 정보로 콘텐츠를 채우는 것이다. 시장은 폭풍처럼 성장했는데 규모와 퀄리티 사이의 불균형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생각해 볼 문제도 있다. 잡지란 뭘까. 잡지의 한자어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다양한 정보가 섞인 기록’을 말한다. 조금 더 개념적으로는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출판물’이다. 간행 주기에 따라 주간, 월간, 계간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전통적인 잡지의 위치는 신문과 단행본의 중간에 있었다. 신문에서 다루는 최신 뉴스에 중간 정도 깊이의 통찰과 실체적인 사실을 담았다. 전문적인 정보를 깊게 다루는 단행본에 비해 발행주기가 빨라 시의적절한 때 시장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인스타그램 매거진은 과연 잡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도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발행하는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있다. 특정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뾰족한 큐레이팅을 앞세운 계정들이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 작은 규모의 집단이거나 개인이 운영하는 채널들이다. 이들은 음악, 예술, 문화, 사회, 스포츠, 일상 등등 세부 시장에 건강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이들의 성장 한계점이 분명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1년 전 유행처럼 생겼던 많은 개인 인스타그램 매거진이 지금은 대부분 활동이 뜸하다. 이러한 사정을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도 역시 돈이다.
매체를 운영하려면 비용이 든다. 정리되지 않는 정보를 가공하는 일, 그냥 보면 평범한 것들의 가치를 살피고 이를 보기 좋게 만드는 일, 이런 일을 하려면 현실 세계의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돈은 어쩔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이것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운영자의 열정이나 표현 욕구나 재미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러한 에너지는 고갈의 여지가 여실하다. 시장에 유의미한 콘텐츠를 공급하는 이들의 역할을 지켜주기 위한 현실적인 지원이나 제도는 물론, 현 인스타그램 매거진 시장에 대한 문제의식도 다 같이 생각해 볼 문제다.
콘텐츠 소비자 입장에서 다양한 플랫폼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산다는 건 큰 행운이다. 인스타그램 매거진도 정보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유익한 플랫폼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를 가치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본질과 목적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사실에 근거한 정보 전달, 쉽고 명확한 편집 방향, 다양한 담론을 섞은 균형 감각 등등. 이러한 것들이 모여 유용하고 지속 가능한 매거진 콘텐츠가 된다. 맹목적인 재미나 자극적인 소재를 쫓는 콘텐츠 끝에 남는 것은 단언하건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우리는 콘텐츠의 바다에서 무인도가 아닌 보물섬으로 가는 길에 대한 내비게이터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강성엽 / 프리랜스 에디터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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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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