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웹툰은 해외에서 이제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애니메이션’ 하면 여전히 일본의 창작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웹툰이라는 콘텐츠 IP를 어떻게 확장시킬지, 웹툰이 나아갈 길을 고민해본다.
‘웹툰이 글로벌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오래된 이야기다. 이전보다 웹툰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조금씩 사람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일본 현지에서도 웹툰의 흥행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출판사 슈에이샤(集英社)는 2024년 5월 ‘점프툰’의 서비스를 시작하며 <원피스>, <블리치>등의 편집을 담당한 아사다 타카노리를 편집장으로 임명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작가를 모으고 있다. 아사다 타카노리는 “세로 만화(웹툰 형식)를 그리고 싶어 하는 잠재적인 작가의 수가 확실히 늘고 있음을 실감했다” 1) 고 말했다. 이제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있는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피부로 느껴지는 건 일본 망가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확장성이 훨씬 높은 애니메이션을 타고, 소위 ‘미디어믹스 전략’을 앞세워 삶의 깊은 곳까지 침투한 일본의 망가가 보여주는 ‘피부로 느껴지는 대중화 전략의 차이’는 꽤 크다. 웹툰이 망가와 경쟁을 본격화하게 될 지금, 우리는 웹툰의 ‘다음 단계’를 고민해봐야 한다.
2025년 현재 가장 주목받는 IP 확장의 열쇠는 애니메이션이다. 웹툰이 실사 드라마로 주목받고, 실사 드라마가 방영되면 특정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지만, 웹툰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다. 실사 작품을 중심에 두고 웹툰을 부수적으로 감상하는 것이라면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원래 웹툰을 보던 사람들이 아니라, ‘원작이라니까 들춰보는’ 정도라면 ‘판’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 즉, 실사 드라마의 시청자가 웹툰의 팬이 아닐 가능성, 그리고 앞으로도 웹툰에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걸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실사화’의 시청자가 2D로 표현된 작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독자들이라면,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일단 지금까지 검증된 것은 애니메이션이다. ‘아니메(Anime)’로 불리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2D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소수지만, 아시아 시장에서의 점유율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주목도는 높은 편이다. 그리고 ‘공개된 장소’에서 공유하던 영상매체가 OTT 서비스로 등장하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면서 ‘개인화된 매체’로 전환되었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OTT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서비스된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진격의 거인>(2013~2023)이 이 변화의 최대 수혜작 중 하나다. 또한 <주술회전>은 “2023년 수요가 많은 애니메이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2) 되는 등 영상시대를 맞아 애니메이션이 약진하고 있다.
웹툰에서도 수혜작이 있다. 2025년 1분기 최고 히트작은 명실공히 <나 혼자만 레벨업>이다. 2024년 1기 방영을 시작한 <나 혼자만 레벨업>을 유통하는 디앤씨미디어는 2024년 1분기 실적이 2023년 1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186% 성장했다. 정작 한국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을 통해 ‘애니메이션 효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첫 사례다.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한 <나 혼자만 레벨업> ⓒ디앤씨미디어
넷플릭스 통계를 제공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하는 장르 4위가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범죄, 드라마, 액션 등 대중성이 높은 장르들에 이어 애니메이션의 점유율은 9.7%로 나타났다는 점은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아동용 콘텐츠’에 한정된 시장이 아니라 더 넓은 가능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실제 시장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의 엔터 전문 잡지 폴리곤(Polygon)이 미국인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3) 를 보자. 2024년 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젠지 세대(GenZ, 1995~2010년생)의 42%가 “매주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답했다. 밀레니얼(1981~1995년생)의 경우는 25%, 젠지 세대의 부모격인 X세대는 12%, 베이비부머 세대는 3%로 나타났다. 가장 젊은 세대가 강하게 몰입하는 콘텐츠가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영화/TV쇼 장르별 순위 ©플릭스패트롤
우리가 ‘한류의 다음’을 논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다양성이다. 최근 미국의 연예잡지 <틴 보그(Teen Vogue)>에 실린 “나는 20년간 흑인 K-팝 팬을 문화적 도용과 인종차별적 비방 끝에 그만둔다”4) 에서 글을 쓴 태비 키부기(Tabby Kibugi)는 2008년 원더걸스의 ‘노 바디’이후 K-팝에 사랑에 빠졌지만, 흑인 문화에 대한 존중이 없는 K-팝을 보내주려고 한다고 적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미국에 가깝지만, 그중에서도 ‘백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에 가깝다. 또한 인종 구성 역시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건 당위나 선의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전략이다.
<틴 보그>에 실린 태비 키부기의 글 ©Teen Vogue
애니메이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매체다. 앞선 폴리곤의 조사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팬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 인구 13%를 차지하는 흑인에 비해 애니메이션 팬은 17%로 4%p 높고, 아시아계 미국인 역시 10%로 일반 인구 6%보다 많다. Z세대로 한정하면 흑인 팬은 23%, 아시아계 팬은 13%인데, 미국 내 젊은 ‘비-백인’ 층이 애니메이션에 반응하는 비율이 높다.
인종적 구성뿐 아니라 성적 지향 역시 다양한데, 일반 인구의 16%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LGBTQ+ 인구에 비해 애니메이션 팬은 27%, Z세대는 39%가 자신을 LGBTQ+로 정체화하고 있다.
표면적 다양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K’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초석이 되어줄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강점 중 하나는 바로 강한 감정적 연결이다. 감정적으로 이입해 호감을 가지고, 원작을 찾아보고 다양한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폴리곤 조사에서도 Z세대 애니메이션 시청자의 약 3분의 2가 전통적 미디어보다 애니메이션에 더 강한 감정적 연결을 느낀다고 답했고, 전체 애니메이션 팬의 44%가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이 문항에서 Z세대는 전체의 58%가 “경험 있음”으로 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의 65%는 다른 미디어보다 애니메이션이 감정적으로 더 몰입된다고 응답했는데, 바로 이 지점이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이다.
폴리곤의 애니메이션 관련 조사 일부. 팬의 44%가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Polygon
지금을 ‘팬덤 비즈니스’의 시대라고 말한다. K-팝이 주목받은 것도 역시 팬덤의 힘 덕분이다. 팬덤은 콘텐츠에 충성도를 가지고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체험’한다. 소위 ‘덕후’로 살게 된다는 건, 일상에 콘텐츠가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깊게 빠져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일상에 두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콘텐츠에 깊게 빠져드는가? ‘재미있는 콘텐츠’에 깊게 빠져든다.
답이 나왔다면, 이제 우리에겐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공이 단순히 ‘특별한 사례’로 남지 않도록 하는 숙제가 남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 즐거움이 되어주는 콘텐츠가 되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재민 / 웹툰 평론가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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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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