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생성형 AI로 제작한 영상 콘텐츠는 실제와 얼마나 비슷하게 만들어내느냐로 그 가치를 판단해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가짜 이미지 특유의 어색함과 기괴함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화제인 ‘이탈리안 브레인롯’이 대표적인 사례다.
매일 아침, 필자는 초등학생인 아들이 숏폼 영상을 보면서 어딘가 이상한 이탈리아어를 따라 말하는 모습을 본다. 요즘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자주 마주치는 영상이다. 범람하는 숏폼 콘텐츠 사이에서 어딘가 묘하게 끌리는 요상한 영상으로, SNS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본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뭐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바로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이라는 새로운 밈 문화다.
‘브레인롯(Brainrot)’은 영국의 옥스퍼드대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직역하면 원래는 ‘뇌가 썩는다’는 말이지만, 요즘 인터넷에서의 뜻은 조금 다르다. 어떤 것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집착하는 상태를 자조적으로 표현할 때 쓰인다. 알파세대가 즐기는 저급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인터넷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옥스퍼드대는 브레인롯이란 단어를 사용한 빈도가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에 230% 증가했다고 밝혔다. 1) 인스타그램 릴스와 틱톡에서 무심코 몇 시간씩 스크롤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브레인롯에 시달리는 것일 수 있다.
유튜브 쇼츠에 ‘Italian Brainrot’을 검색하면 뜨는 영상들
이탈리안 브레인롯의 AI 기반 밈 콘텐츠는 이상한 AI 합성 이미지, 말이 안 되는 이탈리아어 음성이 반복된다. 그런데… 계속 보고 싶어지는 그 무언가가 있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현대인들의 피로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린 삶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오늘도 쉴 틈 없이 알림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사람들, 그들에게 이탈리아는 ‘와인 한 잔과 햇살, 그리고 느긋함’이라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결국, 현실에서 얻기 어려운 여유에 대한 간절한 판타지다.
이 유행이 재미있는 점은, 결코 무겁지 않다는 것이다. 진지한 감정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밈 문화의 묘미다. 의미 없는 콘텐츠를 반복 소비하며 멍해지는 상태를 즐기는 것이다. 이탈리아풍의 과장된 음성과 AI 생성 콘텐츠의 조잡함을 결합한 독특한 밈 포맷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우리 모두가 잠깐씩은 가져보는 일종의 ‘심리적 망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오후, 파스타 한 접시, 포도밭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삶. 우리가 꿈꾸는 여유는 멀리 있지 않다. 잠깐의 유머, 그리고 약간의 공감만으로도 충분히 이탈리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파스타를 삶으며 이렇게 중얼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진심, 난 원래 이탈리아 사람이었어야 해.”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 번째, 과장된 세계관과 AI 생성 이미지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상 속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누구나 쉽게 새로운 캐릭터를 AI를 이용해 만들어 낼 수 있다. 두 번째, 이탈리아식 이름과 음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트랄랄레로 트랄랄라(Tralalero Tralala), 붐바르딜로 크로코딜로(Bombardiro Crocodilo), 발레리나 카푸치나 (Ballerina Cappuccina) 등 실제 이탈리아어와는 무관한, 기계음으로 만든 이탈리아어 풍의 음성을 삽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 숏폼 플랫폼 최적화 콘텐츠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의 숏폼 플랫폼에서 빠르게 소비되고 중독성을 유발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해,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제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돼 각각의 캐릭터 팬들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캐릭터 이름 맞추기, 팬아트, 영상 리뷰 콘텐츠까지. SNS 중심의 밈 확장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 밈을 즐기는 사람들은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vs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와 같이 각 캐릭터 간 대결 구도를 만들어 이들이 싸우거나 화해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파생 콘텐츠를 만들어 다양한 곳에서 공유하고 있다. 단순히 밈 영상을 소비하는 수준이 아닌 제작자이자 유행의 전파자로도 참여하는 것이다.
트랄랄레로 트랄랄라(Tralalero Tralala)
나이키 신발을 신은 세 다리 상어가 등장하는 이 캐릭터는 2025년 1월에 처음 등장하여, 틱톡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탈리안 브레인롯 밈의 시초격 캐릭터로, 게임 ‘포트나이트’를 즐기는 설정과 ‘붐바르딜로 크로코딜로’와 라이벌 관계로 유명하다.
붐바르딜로 크로코딜로(Bombardiro Crocodilo)
폭격기와 악어가 결합된 이 캐릭터는 2025년 2월에 등장했으며, 강력한 폭격 능력을 가졌다는 설정이다. 캐릭터 배틀 영상에서 자주 등장하며 독특한 비주얼로 화제를 모았다.
퉁 퉁 퉁 사후르(Tung Tung Tung Sahur)
야구방망이를 든 나무조각 캐릭터로, 다양한 거인 버전으로 등장하며 이름을 세 번 부를 동안 대답하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온다는 설정이다. 원래 이름은 퉁이 아홉 번인 ‘퉁 퉁 퉁 퉁 퉁 퉁 퉁 퉁 퉁 사후르’이지만 줄여서 ‘퉁 퉁 퉁 사후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레리나 카푸치나(Ballerina Cappuccina)
발레리나의 몸과 카푸치노 컵 얼굴이 결합된 이 캐릭터는 2025년 3월에 등장하여, 감각적인 영상미로 주목받았다. 그 외 아래처럼 여러 캐릭터가 합쳐진 모델들도 있다.
Trippa Troppa Tralala Lirilì Rilà Tung Tung Sahur Boneca Tung Tung Tralalelo Trippi Troppa Crocodina(트리파 트로파 트랄랄라 리릴리 릴라 퉁 퉁 사후르 보네카 퉁 퉁 트랄랄레로 트리피 트로파 크로코디나)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사회에서 사람들은 잠시나마 느긋한 삶을 꿈꾸며 상상을 통해 현실의 피로를 잊으려 한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그들의 로망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 것이다.
이러한 유행은 디지털 문화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콘텐츠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진지함’을 고수하지 않는다. 대신, 유머와 아이러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위로를 찾고 있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단순한 밈을 넘어서 다양한 콘텐츠로 파생되었다. 관련 게임이 등장하고,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티셔츠 등 다양한 물품들도 판매되고 있다.
아마존을 통해 판매되고 있는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관련 상품들 ©아마존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를 중심을 한 패러디 영상들을 시작으로 SNS에 다양한 패러디와 2차 창작물이 관심을 받고 있다. 단순한 밈을 넘어 밈 코인(meme coin, 밈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암호화폐를 지칭하는 용어. 특정 밈의 인기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해석되기도 한다)도 등장했다. AI 기술과 알파세대의 감성이 결합된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논리와 의미를 초월한 이탈리안 브레인롯의 기묘한 콘텐츠는 현대인의 피로를 해소하고 창작의 자유를 상징한다. 퉁 퉁 퉁 사후르, 트랄랄레로 트랄랄라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다면 지금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이 기묘한 여정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웃어넘기는 것이다.
김광집 / 스튜디오메타케이 대표,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전라남도 나주시 교육길 35
T. 1566.1114 | www.kocca.kr
2025년 5월 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N콘텐츠>에 실린 글과 사진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N콘텐츠>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이며 본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ISSN 3022-0580(online)
Copyright.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