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 없는 콘텐츠는 존재할 수 없다. 콘텐츠는 결국 수용자에 수용될 때 존재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용자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한때 ‘대중’이라는 표현으로 일반화하던 수용자 개념에 새로운 정의가 요구되는 이유다.
지난 4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관객들은 모두 공연장에서 나눠준 손목밴드를 차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어둑해지는 시간, 불빛이 꺼지고 공연장은 관객들이 찬 손목밴드의 LED가 뿜어내는 하나의 색으로 물들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국적, 언어, 피부색, 성별, 나이가 제각각인 관객들은 그 순간 하나로 묶였다. 콜드플레이라는 하나의 세계에 들어간 그들은 노래를 함께 부르고 때론 동작을 따라하면서 노래가 전하는 전 지구적인 메시지를 떼창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 심지어 러시아에서까지 온 관객들도 한국 관객과 어우러졌다. 국적과 언어, 세대와 성별로 막연히 나누던 대중의 개념은 거기에 없었다. 다만 콜드플레이라는 하나의 취향과 메시지로 단단히 결속된 새로운 대중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난 4월 수원에 있는 메가박스 4DX관에는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을 보려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조사병단의 날개 모양 인장이 찍힌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4DX를 볼 수 있는 ‘입체기동관’에서 인물들이 튀어 오를 때 의자가 움직이는 체험 속에서 때론 웃고 때론 울며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영화관이 마련해 놓은 조사병단 의상을 입고 포토존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들이 막연히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라거나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일 거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했다.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 세대까지 극장을 찾았고, 메가박스에서 단독 상영한 이 애니메이션은 무려 85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작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이 극장판 <진격의 거인>은 TV 시리즈 파이널 부분을 영화 버전으로 만들어 상영한 것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전체 회차 90회에 가까운 TV 시리즈를 봐야 한다. 그만큼 마니아들에게 어울리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의 성공은 극장이 소구해야 하는 대중 개념을 달리 보게 만들었다. 한때 천만 관객을 목표로 세우고 그것을 ‘대중’의 지표로 보던 시선에서, 이제 확고한 취향을 갖고 극장까지 찾아오는 이들을 새로운 대중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 포스터 ©㈜애니플러스
콘텐츠에서 대중 개념의 변화는 미디어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 ‘매스미디어’ 시대에 대중이란, 그 표현에 담겨 있듯이 ‘매스’ 즉 대량의 덩어리 집단을 뜻했다. 따라서 이들의 개별적 취향이나 개성이 고려되기보다는 그저 한 덩어리로 뭉쳐진 수치적 개념의 집단에 가까웠다. 이 시대의 대중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콘텐츠 지표가 바로 시청률 같은 것이다. 많게는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들은 그 뒤에 존재하는 소비자를 취향과 개성이 고려되지 않은 하나의 대중으로 묶어내곤 했다. ‘국민 드라마’, ‘국민 배우’ 같은 표현들이 가능했던 시절의 대중 개념이다.
하지만 모집단만으로 전체를 가늠할 수 없는 다매체 시대로 들어오면서 시청률 같은 ‘덩어리’ 수치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졌다. TV만이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옛 시청률 수치가 잡아내지 못하는 대중이 점점 많아졌다. 대신 OTT를 통한 구독자 취향별 콘텐츠 조회수가 대중을 보다 정확히 잡아냈다. OTT는 개별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개인화 서비스가 더해지면서 각 개개인의 취향 소비를 더욱 고도화하는 경향을 띠게 됐다. 게다가 OTT라는 공간은 ‘1인치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대중들을 한 자리로 끌어모았다. 국가와 언어의 경계가 무너졌다. 우리가 미국 드라마는 물론이고 남미, 유럽, 일본, 중국 드라마를 취향별로 골라서 보게 된 것처럼, 전 세계인들도 우리의 드라마를 취향에 따라 보게 됐다. 때로는 사회 개념으로, 나아가 국가 개념으로 말하곤 했던 ‘대중’이라는 지칭은 이제 자연스럽게 ‘글로벌’ 개념으로 확장됐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음악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매스미디어 시절에 차트 순위는 대중음악의 절대적인 소비 지표로 제시되곤 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차트는 힘을 발휘하지만, 구독 개념으로 디지털 음원을 마음껏 소비하는 시대에 들어서 더 중요해진 건 개인의 취향이다. ‘국민 가수’라는 표현이 더 이상 어려워졌고 개별화된 취향을 가진 새로운 대중이 음악 소비에 등장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OTT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음악에도 글로벌 소비 경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K-팝의 빌보드 차트 입성이라는 현상은 이러한 미디어 변화가 일으킨 문화 다양성의 욕구가 집적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대중은 이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간 로컬에 머물던 대중의 개념이 글로벌로 확장되면서 콘텐츠 업계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글로벌 반향을 보여주는, 남미(브라질)에서의 단체관람 풍경 같은 것이 그것이다. 사실 제주 사투리가 제목일 정도로 이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담은 드라마로, 애초 글로벌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방영 내내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들이 쏟아져 넷플릭스 순위 비영어권 1위, 전체 3위를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권의 대부분 국가가 열광하는 것을 넘어서 브라질, 콜롬비아 같은 남미권에서의 반응이 이례적으로 뜨거웠다. 인터넷에 올라온 브라질 한 마트에서 펼쳐진 마지막 회 단체관람 영상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웃고 우는 광경이 펼쳐졌다. 또 SNS에서는 해외 팬들의 이른바 ‘나의 관식’ 인증 릴레이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자신이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당신의 아빠가 당신의 관식일 때’, ‘나는 나만의 관식이랑 결혼할 것입니다’ 같은 글귀를 붙이는 릴레이였다.
<폭싹 속았수다>는 2막이 공개된 이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작품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tudum
<폭싹 속았수다>가 보여준 글로벌 반응을 보면 콘텐츠 소비에 있어서 국적이나 언어 같은 과거의 개념은 더 이상 중요한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대신 중요한 건 가족에 대해 비슷한 정서를 갖는 문화권의 콘텐츠들이 장벽을 넘어서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대중의 개념은 그래서 이전 매스미디어 시대의 로컬에 머물던 대중의 차원을 넘어서는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찍이 이러한 글로벌 대중의 이례적 풍경을 보여준 건 K-팝이었다. 방탄소년단을 위시한 K-팝 아티스트들의 글로벌 팬덤이 보여주는 리액션 영상들은 언어가 달라도 통하는 음악 취향의 지대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줬다.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덤 ‘아미’를 하나로 결집한 건, ‘서브컬처’ 같은 소수자여서 소외되었던 이들에게 노래로 전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메시지였다. 전 세계 소수자들은 그 지역이나 국가에서는 비주류 취급을 받았지만, 글로벌로 연결된 새로운 네트워크를 통해 단단히 연결되면서 새로운 주류, 새로운 대중으로 등장했다.
주류를 기준으로 비주류로 치부되던 ‘서브 컬처’라는 용어는 그래서 이제 저물고 있는 매스미디어 시대의 표현이 되고 있다. 소수들이 더 단단한 결집력으로 뭉쳐 힘을 발휘하고, 나아가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막강한 다수가 되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비주류로 취급되던 이세계아이돌이나 플레이브 같은 버추얼 아이돌의 오프라인 공연을 보면 이들의 당당한 취향 고백과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콘서트 포스터 ©블래스트 주식회사
이제 대중은 하나의 수치로 플랫하게(일반화)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천만 관객 영화가 등장했을 때 ‘국민 영화’라 부르며 꼭 봐야 할 것만 같은 욕망을 부추기던 당시의 대중 개념은 이 시대에는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렵게 됐다. 갈수록 천만 영화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건, 일반적으로 통했던 작품이 저마다 고도화된 취향을 가진 현재의 대중을 만족시키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새로운 대중은 자신만의 확실한 취향을 드러내고 있고, 따라서 보편적인 작품보다는 취향에 맞는 차별적인 작품들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국내만이 아닌 글로벌 대중의 변화이기도 하다.
매스미디어 시절에 콘텐츠 기획에서 자주 등장하던 ‘벤치마킹’ 개념은 그래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성공한 작품을 벤치마킹한다는 건 갈수록 고유성과 차별성을 희석시키는 일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해진 건 유니크해 다소 낯설다 하더라도 그 작품만의 진정성이 담보되는 일이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로컬 정서를 진정성 있게 꺼내놓는 작품이 더 경쟁력을 갖게 됐다.
이른바 K-콘텐츠라는 표현은 그래서 이 달라진 새로운 대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너무 한정적인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K’를 통해 한국 작품이라는 걸 굳이 카테고리화 하는 것보다는 그 작품 고유의 진정성을 그대로 내놓는 것이 이 새로운 대중의 입맛에는 더욱 잘 맞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대중은 우리가 이른바 ‘Next K’를 고민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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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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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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