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흔히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그 세계에서 나는 어떤 곳으로 갈까, 또 거기서 나는 누구를 만날 것인가, 어떻게 지낼 것인가. 고민하다 보면 이는 현실의 고민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의 매일은 ‘천국보다 아름다운’ 순간들일지도.
Q.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죽음의 무한함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전작인 <눈이 부시게>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그러한 주제가 감독님께 어떤 영감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눈이 부시게>가 ‘지금 눈부신 이 순간을 오롯이 살아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면,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죽음이 단순한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과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전제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좋든 싫든 얻고 쌓게 되는 많은 관계, 인연들. 과연 그것들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릴까? 어쩌면 삶과 죽음을 반복해가며 꼬인 것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여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
Q. 천국과 지옥 등의 장소를 표현하는 데 있어 특별히 염두에 둔 것이 있을까요?
드라마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국이라는 공간은 현생의 모습과 흡사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결국 천국에서도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주 공간에 시각적으로 이질감이 없었으면 했습니다. 다만 천국을 출입할 때 모습이라든지, 하늘을 비롯한 풍경들에서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반대로 지옥이라는 공간은 가벼워 보이지 않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질릴 정도로 극악무도하지는 않도록, 스토리와 패러디를 가미해봤습니다.
드라마 속 지옥의 모습 ©JTBC
Q. 이번 작품은 배우를 설정한 상태에서 기획 단계부터 만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그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일 먼저 김혜자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기획하게 됐고, 천국을 주 배경으로 한다는 개략적인 얼개를 갖고 인물을 섭외해나갔습니다. 배우를 먼저 섭외하게 되면 극중 인물의 구체적인 캐릭터나 관계를 실제 배우에 맞춰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배우만이 가진 힘을 캐릭터에 직접 반영할 수 있고, 배우 간의 시너지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재회하는 남편을 젊은 모습으로 설정함으로써 기본적인 코미디의 단초를 만들고자 했는데, 젊은 남편 역할에는 김혜자 선생님의 제안으로 손석구 배우를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손석구 배우는 코믹과 멜로를 오가며 김혜자 선생님과 부부로서의 케미스트리를 터뜨려주어야 했는데 그걸 위해서 손석구 배우의 기존 장점에 더해 아직 보여주지 못한 숨은 매력을 캐릭터나 스토리에 반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극 중 천국지원센터장 역할의 천호진 배우 또한 진지함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동시에 다양한 코미디를 보여줘야 했는데 평상시 그가 코미디에도 관심이 많음을 알았던지라 함께 대화하며 캐릭터를 완성해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목사 역할에는 최근 미디어 노출이 많지 않은 배우를 원했는데 마침 류덕환 배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혜자 선생님과는 <전원일기>에서의 인연까지 있어서 최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출연했음에도 특유의 능청스러움은 물론 극 후반을 뒤집는 반전 연기까지, 류덕환 배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정은, 한지민 배우는 김혜자 선생님과 친분이 두터워 현장에서 같이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정은 배우의 경우 그가 가진 터프함을 캐릭터로 승화해 김혜자 선생님과의 언밸런스한 조합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지민 배우가 연기한 ‘솜이’의 경우, 극 중 김혜자 선생님의 ‘인격화된 회한의 기억’이었지만 그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삼각관계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역할이었는데요. 그래도 한지민 배우가 연기한다면 조금은 욕을 덜 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극 후반에는 흑화된 솜이가 해숙의 목을 조르고 공격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한지민 배우 덕에 김혜자 선생님도 믿고 몸을 맡기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Q. 전작에도 함께 했던 김혜자 배우와는 오랜 인연이라 들었는데요. 감독님께 김혜자라는 배우는 어떤 의미일까요?
2010년 인연을 맺고 이번 작품까지 세 번째 함께 했습니다. 매번 저를 감탄하게 했지만, 특히나 이번 작품에선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명불허전의 클래스를 보여줬습니다. 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많은 감독으로 하여금 의미를 갖게 만드는 배우지만 특히나 저에겐 남다릅니다. 함께한 세 작품 모두 처음부터 김혜자 배우를 정해 놓고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만큼 저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함께 할 때마다 ‘완결’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직 보여지지 않은 김혜자 배우만의 매력이 항상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경력에도 화수분과 같은 김혜자 배우의 연기 혼에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촬영 현장에서 김석윤 감독과 배우 김혜자의 모습 ©SLL
Q.<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시청자들에게 연일 감동을 전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도 모두의 감동을 자아냈던 장면이 있을까요?
마지막 회, ‘환생 문’ 앞에서 낙준과 해숙 부부가 헤어지는 장면. 손석구 배우가 촬영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었으며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이별 모습에 모든 스태프가 숨죽여 눈물 흘렸던 장면이었습니다.
Q.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나 고충이 있었다면요?
아무래도 내용 대부분에 김혜자 선생님이 출연하다 보니 선생님의 컨디션 관리가 가장 중요했고 또 가장 어려웠습니다. 배우의 체력도 많이 떨어졌고, 촬영 기간이 6~10월이어서 너무 더웠기에 촬영을 빨리 진행해야 했습니다.
동물 출연도 많았는데 여름이라 오전 내 촬영을 마쳐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 고충이라면 고충이었죠. 그 와중에도 눈부신 연기를 해준 짜장(샤넬, 프렌치불독)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짬뽕, 만두도 수고했고!
천국에서 재회하는 주인과 반려동물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안겼다. ©JTBC
Q.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넷플릭스를 통해 동시 서비스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해외 시청자를 고려해 제작된 부분이 있다면?
일단 사후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관이 필요했는데 구조론적인 관점에서 납득되며, 종교적으로도 치우침 없는, 그래서 국내외 시청자들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사후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나 ‘지옥’에 관해서는 많이 고민했는데 일단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지옥이란 설정을 뭔가 다른 느낌으로 비틀어 보고 싶었습니다. 현대식 죄를 벌하는 지옥이라든지, 형벌의 경우에는 뭔가 현실에서 볼만한 것들을 패러디해보기도 했고요. 극 후반부에 등장하는 ‘잿빛 지옥’은 가장 끔찍한 지옥으로서 죄책감의 지옥을 의미하는데요. 이 지옥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지옥입니다. 극 중 인물들이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죄책과 회한을 결국 해결하게 되는 공간으로서 앞서 보였던 지옥과는 시각적으로도 차별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Q. 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살면서 필연적으로 맺고 쌓게 되는 ‘인연’이라는 것. 그것이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우리는 반드시 그것과 얽히고설키게 되는데, 그 인연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삶과 죽음을 넘어 반복되는 우리의 여정이라는 것. 그래서 이왕이면 덕을 쌓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Q.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소재나 구상하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너무나도 현실적인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의 사랑, 그리고 중년의 사랑도요.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OTT특화 제작지원(IP확보형)’드라마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드라마 제작사인 SLL의 황라경 EP에게 지원의 내용과, 앞으로 K-콘텐츠 제작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Q.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OTT특화 제작지원(IP확보형)’드라마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은 어땠고,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이 드라마는 약 1년 반의 제작 기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상승할 제작비에 대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드라마 시장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오늘이 가장 싼 날이다”라고 할 정도로 제작비가 하루하루 오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예산안을 확정 짓는 시기와 제작비 집행 시점의 차이가 있다 보니 지원사업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의 경우 천국과 지옥이라는 판타지적인 공간을 구현해야 하는 작업이 많았는데 지원금 덕분에 다채로운 VFX(시각 특수 효과)에 많은 기술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었으며 이는 영상의 퀄리티를 향상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사는 계속해서 제작비를 스태프에게 지급해야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 또는 납품돼야 제작비를 받는 구조이기에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입니다. 이 지원사업 선정에 따른 빠른 지원금 조달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어서 저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스텝들 또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안정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Q. 콘텐츠 제작에 있어,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다양한 기관의 지원과 정책 마련이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할까요?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작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제작사에 돌아오는 수익률은 크게 떨어지고 있어 콘텐츠 제작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다양한 기관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K-콘텐츠의 퀄리티는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콘텐츠사업에 대한 정부 및 기관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고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매년 새롭게 사업의 종류가 바뀌는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만, 드라마 제작에 대한 지원사업의 수와 금액이 조금 더 증가했으면 하는 욕심과 바람이 있습니다.
나아가 지원사업이, 한국 드라마가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제작비 상승에 따라 소위 말하는 ‘팔리는 드라마’, ‘돈이 되는 드라마’만을 제작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받는 요즘입니다. 그렇다 보니 신인들에 대한 기회는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소재와 신인 작가, 연출, 배우, 프로듀서들이 계속해서 나와야만 K-콘텐츠 시장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에 다양한 기관의 지원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예지 / 편집실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전라남도 나주시 교육길 35
T. 1566.1114 | www.kocca.kr
2025년 5월 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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