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모든 산업군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콘텐츠산업에서는 생성형 AI로 인해 발생하는 저작권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이에 관해 해외에서는 어떤 논의가 이뤄지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2025년 현재, 콘텐츠 제작 현장은 AI라는 새로운 조력자와 함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 미드저니나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이미지 생성 모델은 더 이상 실험적 도구가 아니다. 광고, 영상, 웹소설, 게임 시나리오, 영화 콘티에 이르기까지 이들 AI 툴은 실전에서 활용되며, 콘텐츠 제작의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기술의 도입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하나의 근본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AI가 만든 결과물은 어디까지 ‘창작’이며, 누구의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저작권 문제를 넘어, 창작의 주체와 의미, 인간과 기계의 역할을 다시 묻는다. 산업계는 생산성 향상과 효율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윤리적 책임과 법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챗GPT로 시를 쓰고, 미드저니로 일러스트를 그리며, AI를 활용해 단편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 한 줄의 프롬프트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디지털 도구의 진화는 창작의 문턱을 낮췄지만, 생성형 AI는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창작의 주체로 기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의 감정과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결과물도 예술로 인정될 수 있는가? 타인의 데이터로 학습된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이처럼 예술과 창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철학적인 논의를 넘어서, 실제 산업·법제 영역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AI 작사가가 만든 곡이 음원 차트에 오르며, AI 기자가 작성한 기사로 수천만 클릭을 유도하는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 인간과 기계는 다른 방식으로 창작하더라도, 그 결과물을 해석하고 귀속시키는 구조는 여전히 인간이 중심을 정한다. 우리는 지금, 창작의 경계를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어졌다.
국제적으로도 생성형 AI의 창작물에 대한 법적 정의는 치열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은 “저작물은 인간의 창작을 전제로 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며, 인간 개입 없는 AI 결과물의 저작권 등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드저니라는 생성형 AI로 만들어낸 이미지에 대한 등록을 거부한 미국 저작권청의 결정이 있다. 다만 인간이 편집, 구상, 재배치 등 창의적으로 관여한 경우에는 제한적 보호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에 따라 AI와 인간의 협업을 전제로 한 새로운 계약 모델과 산업 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 저작권청도 AI 생성물을 인간이 개작을 한 경우라면 해당 결과물은 인간에게 저작권이 발생한 것으로 본다.
유럽연합(EU)은 AI 학습의 적법성과 결과물의 투명성을 중시한다. 디지털 단일 시장(Digital Single Market)1) 저작권 지침을 개정하고 AI 법(AI Act)에서는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DM, Text Data Mining)의 범위와 조건을 명시하고 있으며, 결과물의 출처 공개와 책임 분배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AI 시대의 저작권 질서를 재설계하려는 규범적 시도라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산업 진흥적 관점에서 데이터 마이닝을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으며, AI의 자유로운 학습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이는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의 AI법 내용을 볼 수 있는 페이지 ©EU
우리나라는 콘텐츠 산업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국가다. 특히 웹툰, 드라마, 게임, 음악 등에서 AI의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법적 기준과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부재하다. AI 결과물의 저작권 귀속, 창작성의 인정 범위,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동의 여부 등 핵심 쟁점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창작자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무단으로 학습에 사용되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고, 제작자들은 도입을 주저하며, 이용자들 역시 프롬프트 몇 줄로 만든 결과물이 ‘자기 창작물’인지 혼란을 겪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비다. 첫째, AI 창작물의 법적 보호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인간의 창의적 개입이 어느 수준이어야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학습 데이터의 투명성과 정당한 이용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기계학습에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이해관계자의 충돌로 개정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저작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저작물의 동의(opt-out)와 보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AI와 인간의 협업에 대한 새로운 법적 모델이 필요하다. 공동저작, 책임 분배, 사용권의 범위 등을 명시한 법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생성형 AI가 콘텐츠 산업에 빠르게 안착하면서, 창작의 개념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쟁점이 등장했다. 바로 AI 창작물의 산업화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다. 이미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생성형 AI 기반 이미지나 영상 제작 도구 등을 상용화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침범하거나 불명확한 법적 지위를 가진 콘텐츠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창작의 자유와 저작권 보호 사이, 산업 경쟁력과 공정이용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점을 요구한다.
특히, 국가 정책은 ‘기술 진흥’과 ‘권리 보호’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술의 발목을 잡지 않으면서도,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정책철학이 필요하다.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거나 기술을 방임하는 이분법을 넘어서, 예측 가능한 이용 원칙과 공정한 보상 구조를 제도화하는 ‘조정형 정책’이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공공데이터셋2) 을 활용한 AI 학습에는 보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이 가능하지만, 상업적 저작물의 학습에는 투명한 출처 공개와 저작권자의 선택권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해 일정 기준 이상의 인간 개입이 있다면 ‘창작자 권리’를 인정하되, 순수 자동 생성물에는 별도의 공공저작물 또는 데이터 성격의 관리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AI 창작물이 산업화하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술·법·시장·윤리의 다층적 조율이다. 국가는 기술 주도 산업의 생태계를 지원하되, 그 바탕에는 반드시 인간의 창작 역량이 지속 가능하게 하는 공공 책임이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설계하는 기준과 균형이 바로, 다음 세대의 창작 환경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설계되느냐에 따라 사회적 효과가 달라진다. 생성형 AI는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고 창작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상상력, 감정, 맥락을 대체할 수는 없다.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의적 개입을 보호하고 장려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완성도 높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지금, 우리는 창작자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다. 창작의 정의를 재구성하지 않으면, 법은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앞으로의 저작권법은 ‘보호 여부’만을 따지는 법제가 아니라, 공정한 데이터 생태계, 투명한 저작물 이용 구조, 인간 창작자의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결국, AI 시대의 저작권법이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창의성이다.
김윤명 / 디지털정책연구소장, 법학박사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전라남도 나주시 교육길 35
T. 1566.1114 | www.kocca.kr
2025년 5월 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N콘텐츠>에 실린 글과 사진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N콘텐츠>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이며 본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ISSN 3022-0580(online)
Copyright.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