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신드롬은
K-웹툰과 캐릭터 IP가 음악·애니메이션·굿즈·게임으로 확장되는 ‘멀티 IP’ 시대의 가능성을 증명했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제작과 수익 및 IP 주체는 해외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과제를 남겼다.
이번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은 국내외 웹툰산업의 패러다임을 다시금 냉철하게
바라볼 계기를 마련한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인기는 K-팝과 K-푸드를 넘어서 전 세계에 ‘케데헌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할 정도로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문화를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삼았지만, <케데헌>은 넷플릭스의 전액 지원 아래 ‘흥행 가능성이 없다’라고 포기했던 소니픽처스에 의해 제작되었다. <케데헌>의 경제적·문화적 낙수효과가 K-콘텐츠 전반에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부나 콘텐츠 산업 관계자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편 ‘케데헌’ 현상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끊임없이 성장할 줄 알았던 웹툰 산업의 패러다임을 다시금 냉철하게 바라볼 계기를 마련한다. 먼저 국내외 웹툰 산업의 침체와 웹툰 플랫폼 및 제작사들의 구조 조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시점에서, 정부의 달라진 웹툰 산업 지원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K-원천 콘텐츠 IP에 대한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지속적인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웹툰 콘텐츠는 과연 고부가가치 미디어믹스를 유발하는 원천 IP로서 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 Ⓒ넷플릭스
작년 이맘때만 해도 2025년 만화·웹툰 산업 규모가 2조 5,000억 원을 무난하게 넘어설 것이라는 청사진과 웹툰 IP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OTT 플랫폼 및 제작사들의 마르지 않는 원천 소스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2024년 국내 콘텐츠 산업의 해외 수출에서 캐릭터·만화·애니메이션을 합쳐서 7%에도 미치지 못했고 2025년 상반기 만화·웹툰의 해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가 감소했다.
여전히 웹툰 산업계는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빅히트 킬러 콘텐츠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글로벌 웹툰 시장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유럽 시장을 철수해 미주와 일본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 웹툰 플랫폼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럽 시장을 철수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넓은 땅덩어리와 인구에 비해 다양한 언어 사용자에 맞춘 현지화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재로선 웹툰의 주된 소비자가 프랑스 젊은 층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있다. 둘째, 유럽 시장에서 장기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 악화가 이어져 영어권과 일본 등 수익이 나는 시장에 집중하려는 비즈니스 포지셔닝 변화 때문이다.
국내 웹툰 산업은 작품당 수익률 하락, 제작비 상승, 웹툰 플랫폼의 작품 수급 한계, 작품당 방문자·수익 감소, 해외 에이전시 부재, 인건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웹툰 비즈니스 전략은 OTT 영상 콘텐츠의 원천 IP로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현재로선 전 세계적으로 OTT 플랫폼이 웹툰의 2차 콘텐츠 확산을 위한 마지막 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애니플렉스
최근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국내 극장가에서 개봉 11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사례는 웹툰의 OTT 비즈니스 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성공 요인으로는 ‘귀멸폐인’이라는 충성도 있는 팬뿐 아니라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OTT 서비스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때 웹툰이 넷플릭스의 영상화 원천 IP로 각광받았으나, 최근 그 자리를 점차 일본 애니메이션이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 박람회’에서 넷플릭스의 구독자 가운데 50% 이상인 3억 명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시청한다고 밝혔으며, 2024년 유료 이용자 수가 2022년 대비 64% 증가했다.
국내 웹툰 기획·제작 시스템에서는 웹소설의 웹툰화(노블코믹스)가 웹툰 시장을 주도해 왔고, 웹소설-웹툰-드라마로 이어지는 문화산업적 파급효과도 컸다. 노블코믹스의 영상화는 OTT 플랫폼 시장에서도 성과를 거두었으며, 웹툰 제작사들 역시 노블코믹스 중심의 기획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네이버웹툰은 노블코믹스를 작품 비중을 줄이고 오리지널 스토리 기반 작품 기획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카카오웹툰도 오픈 마켓인 카카오페이지와 달리 네이버웹툰과 유사한 서비스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웹툰 산업은 출판만화, TV 애니메이션, 극장판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게임 등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미디어믹스 시스템과는 다르겠지만, 현재의 ‘따로국밥’ 식의 기획·제작 및 서비스 시스템에서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아니 시급하다. 현재의 국내 콘텐츠 제작 시스템으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는 우려가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흥행 가능성이 없는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으며, 트랜스미디어 시대에서 ‘대중성’이라는 미명 아래 획일화된 기획 잣대가 오히려 창작자의 ‘상상력’을 가둘 수 있다.
만화·웹툰 창작자들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사업은 매년 꾸준히 있어 왔다. 조금씩 지원사업의 명칭과 수행기관만 바뀌었을 뿐, 올해에도 ‘다양성 만화와 창작 초기 단계 지원사업’은 국내 만화작가들에게 창작 동기를 부여하는 주요 지원책이 되고 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글로벌 웹툰 IP 제작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이 지원사업은 이전과 달리 정부의 지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준다.
글로벌 웹툰 시장 공략을 위해서 지원사업은 한 업체당 평균 5억 원 규모로 8~10개 내외의 웹툰 제작사들에게 창작 비용을 지원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제2의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글로벌 히트작을 만들려는 바람이 고스란히 담겼다. 올해 선정작 중에는 프랑스 베스트셀러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웹툰화해 5년간 150화 연재를 목표로 하는 대형 프로젝트도 포함되었다. 이 같은 사업은 정부의 지원 패러다임 변화와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웹툰 <개미> Ⓒ케나즈
‘글로벌 웹툰 IP 제작 지원사업’이 웹툰 기획 및 창작에 직접적인 비용을 지원한다면,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웹툰 조세 특례 제도 개선’은 간접적 세금 지원 성격을 띤다. 이 지원사업의 특징은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아닌 기획재정부가 음악, 게임, 영상 콘텐츠 제작사에 이어 웹툰 제작사에게도 제작비에 대한 조세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웹툰 산업 조세지원에 대한 세부적인 지원 항목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지만, 웹툰 제작비에 내외부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산업구조상 지원 항목에도 인건비가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항목에는 기획, 창작, 편집, 디자인, 홍보, 2차 수익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 외에는 기자재와 웹툰 창작 프로그램 사용료가 지원 항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웹툰 기획 및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항목들이 추가되기를 바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 한국 작품이냐, 일본 작품이냐, 미국 작품이냐에 대한 논쟁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콘텐츠의 소재가 ‘한국적’이라는 점이다. 태권도가 전 세계인의 스포츠가 된 것은 어느 나라 어느 누구라도 태권도라는 한국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웹툰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오락문화가 되기 위해서 창작과 소비, 플랫폼, 그리고 미디어믹스가 융복합적 시스템에서 활성화·확대되는 것이 절실하다. 최근 네이버웹툰과 디즈니플러스의 공동 합작 웹툰 플랫폼 개발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또한 현재 다양성 만화와 창작 초기 단계 지원사업은 창작, 출판, 유통, 해외 만화 전문 에이전시라는 연결고리 속에서 실행되어야, 지원의 결과물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다. 한편 웹툰 조세 특례 제도 개선의 항목에 외주 제작비에 대한 면세 처리 방안, 작품 제작비 상승에 따른 손실 보전 세액공제, 비영리 협단체의 세액공제 범위 확대 등이 포함된다면 웹툰 산업의 활성화 동력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여느 정부도 강조해왔지만, 문화강국을 꿈꾸는 국민주권정부라면 지원은 하되 관여하지 않겠다는 구호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글로벌 웹툰 황금시대를 열 수 있다.
박세현 / (사)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장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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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9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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