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커지며
연관 사업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산 캐릭터와 브랜드 IP의 성공을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존재한다.
현업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IP 시장의 현실과
돌파구를 모색해 본다.
최근 한국 패션의 성장세가 무섭다. 패션 업계에 몸담은 지 15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 정도로 해외에서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K-콘텐츠, K-팝, K-뷰티, K-푸드에 이어 K-패션이 글로벌 무대에서 신뢰와 주목을 얻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대기업이 아닌 한국 중소 패션 브랜드가 해외 주요 도시에 매장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요즘은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 심지어 소품숍까지 글로벌 진출을 하는 추세다. 한국 소비재 전반에 대한 글로벌 선호도가 크게 높아진 결과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국내 캐릭터 IP와 브랜드 IP 사업이 동반 성장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현업의 눈으로 볼 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고자 한다.
진로 X 얼킨 콜라보레이션 의류 외 업사이클링 가방 ©이성동
2014년, 필자는 얼킨(ULKIN)이라는 업사이클링(UP-CYCLING) 기반 패션 브랜드를 론칭했다. 당시는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해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버려질 회화 작품의 원화를 활용해 가방을 제작하며 많은 신진 작가와 협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재산(IP, Intellectual Property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1) 작가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목격하며 습작을 받아 새 캔버스로 돌려주거나 일부 작품을 매입해 전시를 열어주는 ‘재능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당시 작가들이 작품 활동으로 버는 월평균 수익이 72만 원에 불과했고 사실 현재도 큰 차이가 없다. 이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작가들의 작품을 상품화하는 파트를 신설했고 더 나아가 플랫폼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IP는 물론, 국내 아티스트, 셀럽, 기업들과 라이선싱(Licensing) 계약을 맺으며 IP 산업 전반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현재 법인 사업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현재 국산 IP들도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은 영향력이 막대하게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산 캐릭터나 브랜드의 IP들은 그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우리나라의 문화적 자산이 쌓인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특정 캐릭터가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흥행과 더불어 누적 시간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베티붑을 입은 트와이스 사나 ©사나 인스타그램
본사가 운영하는 베티붑(BETTY BOOP) 캐릭터의 경우, 1930년대에 처음 만들어진 캐릭터로 오랜 시간 다양한 분야에서 재생산되며 대중에게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다. 산리오 역시 1960년대에 회사가 설립되었고, 인기 캐릭터인 헬로키티는 1974년에 개발되었다. 이처럼 긴 시간이 쌓인 캐릭터들은 역사성을 띠게 되고 전시도 가능해진다. 실제로 지난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헬로키티 단독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국산 캐릭터들은 어떠한가? 꾸준히 관리하며 키워갈 만한 자산임에도 아직까지 사례가 없다. 실제 산업계에서는 캐릭터에 대한 권한이 분산되어 있기도 하고, 그만큼 투자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는 글로벌 히트작의 부재다. 역사성을 뒤집을 정도의 흥행을 통해 시간을 단축할 만한 대작이 나오지 못했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긴 했지만, 정작 우리나라 기업이 직접 소유한 IP는 음원에 국한되어 있다. 그래서 기존의 ‘호작도’나 ‘갓 모자’ 같은 원천 IP를 억지로 연관 지어 상품화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국 전통 소재들을 외국 기업이 외부의 시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우리의 전통 원천 IP를 활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해외 IP를 국내 회사가 라이선스화하여 흥행시키고 더 나아가 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MADE IN KOREA’이거나 한국 브랜드 상품으로 인식해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이나 유럽, 미국 등 유명 캐릭터 IP를 활용해 규모 있는 매출을 내는 회사도 있으며, 심지어 아무 관련이 없는 기업 IP를 들여와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경우도 존재한다.
특히 45조 원 규모로 시장이 큰 패션 산업에서는 타국의 브랜드 IP로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초대형으로 성공시켜 글로벌로 진출하는 기업들의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성과는 글로벌 IP를 활용하는 사업자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다만 국산 IP도 잘되면 정말 좋겠지만, 앞서 언급한 여러 사정으로 현실은 쉽지 않다. 일부 기업들은 국산 IP를 키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일부는 에이전시 계약을 맺어 직접 지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창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확장되기 위해 필수적인 상업적 이해와 활용의 중요성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IP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도 전에, 자기 고집에 갇혀버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필자 역시 패션 창작자로 출발했기에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창작자는 자신의 세계관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삼되, 그 위에서 트렌드와 시장의 흐름을 읽고 유통업계 및 플랫폼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스타트업 관점에서 창작자의 IP를 하나의 사업으로 본다면, 의사결정은 최종적으로 창작자가 내려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 안에서 브랜드, 소비자, 유통 등 다양한 측면의 시각을 대변할 수 있는 팀원과의 소통을 통해 포괄적인 사고를 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최소한 영업을 맡아줄 파트너는 필요하다. 작가 혼자 모든 것을 해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좋은 성과를 내는 회사들은 각자의 노하우를 갖고 있기에, 이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
무인 IP 스토어 형태로 운영되는 베티붑 매장 ©이성동
캐릭터 IP인 베티붑은 패션·잡화 카테고리에 머무르지 않고 뷰티와 스포츠 분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베티붑은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마케팅과 유통 전략을 통해 소구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는 유통 채널 다각화(대리점, 백화점, 면세점) 시도를 통해 브랜드 확장 진행 중이다. 특히 직영점과 대리점은 무인 IP 스토어 형태로 기술과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국내 톱 아이돌과 배우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으며 매장 평균 40%에 달하는 높은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베티붑의 성공만으로도 충분히 큰 매출을 창출할 수 있지만, 이 사례는 다른 IP의 사업 확장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한국의 IP 시장이 급격히 성장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내 IP가 반드시 함께 성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외 IP의 소유권을 확보하거나 이를 활용해 성장하는 기업들이 앞으로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국내 IP 자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투자와 가치 공유가 필수적이다. 앞서 이야기한 역사성 혹은 흥행성, 이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충족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야만 한국 출신 IP가 자생적으로 자라날 수 있다. 결국 IP는 사회적·문화적 자산의 한 형태다. 한국 문화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하겠지만, 동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의 문화 자산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성동 / (주)옴니아트 대표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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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9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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