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사업의 성패는 실질적 수익화 전략과
체계적인 기업 육성 정책에 달려 있다.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기업의
안정적 수익 모델 확립을 위한 정책 과제를 모색한다.
전통적 시장경제 체계에서 정부는 산업을 규제와 방임의 사이에서 바라보고, 기업은 통제와 자유의 선상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하게 된다. 경쟁 속에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선수인 기업의 몫이며 정부는 심판 역할을 하면서 때로는 엄격하게 방향을 제시하고 때로는 자유롭게 경쟁이 활성화 되도록 한다. 이러한 현상은 겉보기에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상 선수와 심판 모두 자원과 역량을 갖춘, 즉 이른바 선진국형 모델에 해당한다.
정부가 기업이나 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압축 성장을 추구했던 후발주자들의 전략이었다. 제한된 자원을 승부처가 될 산업에 집중하면서 생태계 조성과 참여 기업 성장을 위한 단계적 진흥 계획을 수립·실행하는 것이다.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으므로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동시에 역량도 키워 나가야 한다. 이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도전이었지만, 실제로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대표적 성공 사례가 대한민국이며, 일정 수준의 압축 성장 이후에는 다양한 산업 분야의 진흥원들이 기업 육성을 주도하는 모델을 따르게 되었다.
정부의 기업 지원이 창업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창업 초기 업무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창업보육센터를 통한 입주 공간이나 공동 실험·실습 장비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제1세대 인프라 지원이 창업 시작 기회를 제공한다면 제2세대 기술·사업화 지원은 기업들의 역량 강화 및 내재화를 통하여 사업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확보하게 되면 도약을 위한 네트워킹 지원의 제3세대 지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표> 세대별 주요 기업지원 서비스
| 세대 | 지원유형 | 주요내용 |
|---|---|---|
| 1세대 | 인프라 지원 |
규모의 실현
(물리적 자원) 사무실 공간 지원
(공유자원) 회의실 등 공용시설 및 실험장비 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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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대 | 기술·사업화 지원 |
학습 곡선 가속화
(기술지원) R&D, 산학공동연구, 기술 노하우 등 지원
(사업화지원) 인력 지원, 광고, 마케팅 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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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세대 | 네트워크 지원 |
외부 자원 및 지식 접근 촉진
(기술 및 전문적 접근) 코칭, 멘토링, 컨설팅 등
(네트워크) 잠재 고객, 제조업체, 기술 파트너 및 벤처 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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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기업 육성 지원정책도 ‘예비창업 → 초기창업 → 도약성장’의 생애 주기를 전제로 창업기업의 인프라, 기업 성장,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타 부처의 창업 지원과 다른 점은 콘텐츠 기업 수요 맞춤 특성화 지원을 추진한다는 것이며, 프로젝트 지원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단위 지원을 통한 초기 콘텐츠 기업 육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년간 콘텐츠 산업 생태계 조성에 유용했으나,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해 보완해야 할 부분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업지원 프레임워크는 내용적 측면에서 콘텐츠 기업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데, 제작 특성 반영 추가를 추천한다. 콘텐츠 기업은 ‘프로젝트 창·제작 조직’의 특성을 띠는 부분에서 기술지향 벤처기업과는 차별되는 점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콘텐츠 기업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 방향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기술 기반 벤처기업들은 단일 기업 내에서 기술을 내재화하며 경쟁력이 높아진다. 기술의 공유보다는 보안이 중요해지고, 협업보다는 독자적 역량 강화를 빠르게 이루어야 한다. 반면, 콘텐츠 기업은 서로 다른 이종 역량을 가진 다양한 조직들의 협업을 통해 콘텐츠를 생산한다. 기술·사업화 지원을 통해 독자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 뒤 펀딩을 위한 네트워킹이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창·제작 단계부터 협업이 필요하므로 이를 위한 네트워크 및 생태계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기술벤처육성 프레임워크는 수혜 기업을 가치사슬의 중심 기업(focal company)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기술벤처기업이 자사의 핵심 기술에 기반해 자신만의 완성품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중심 기업이라면, 콘텐츠 기업은 협업 과정에서 요소 기술이나 역량을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애플 아이폰에는 ‘대만의 팍스콘에서 제조되었다’거나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가 제공되었다’라는 정보는 찾아볼 수 없지만, 제작사가 있음에도 영화의 엔딩크레딧에는 조명, 로케이션 협력 등 다양한 참여자들이 모두 소개된다. 뮤지컬 커튼콜에서 오케스트라에 감사를 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가치 10억 달러의 유니콘 기업을 키우는 것이 기술벤처모델이라면, 협업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기업 풀뿌리가 강해야 하는 것이 콘텐츠 기업 육성 지원모델의 주요한 특성이어야 한다. 협업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요소기술 보유기업들, 역량 제공기업들의 풀뿌리가 국내에서 내재화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 기업의 소부장1) 지원체계가 요구되는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소재는 한국에서 제공했지만 완성은 글로벌 기업이 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소재에 IP를 주장할 수 없고 글로벌 OTT 대상 경쟁력을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글로벌 창·제작 협업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One Source Multi Use)를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야기하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캐릭터를 무한히 확장해 가는 슈퍼 IP의 힘을 논의하지만, 정책 지원은 개별 기업의 성장 경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약 요인이 된다. IP의 탄생, 성장 및 확장을 기반으로 국내외 창·제작이 확대되는 생태계 조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웹툰이나 웹소설 등의 IP는 핵심 향유 그룹 및 향유 특성이 데이터로 남아있으며 계량적으로 검증되는 특성이 있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OSMU에서 여러 주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도 성공 확률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모든 콘텐츠 기업이 자기만의 IP를 확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검증된 IP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도 열려 있어야 한다.
웹툰·웹소설 등은 거대 플랫폼 기업이 대량 보유하고 있으나, 해당 플랫폼들도 적기 OSMU를 통한 수익 창출에는 한계가 있어 다양한 형태의 협업에 개방적이다. 계량적으로 검증된 IP를 중소 콘텐츠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도 고려할 만하다. 플랫폼 기업이 보유한 IP를 중소 콘텐츠 제작사 창·제작 과정에서 현물 출자 형태로 제공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지원도 가능하다.
기존 인프라 및 금융 지원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현 인프라 지원은 사무공간 제공을 넘어 네트워킹과 사업화 지원 등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융합기술 자산(ex. 렌더링용 서버팜)이 집적화된 융합기술 자산기반 인프라 지원이 되어야, 고정비 투자 규모도 증가하고 기술 진부화 가속이라는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콘텐츠 특화 금융지원에서는 잠재 수혜 기업을 군집화하여 집단별로 차별화해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중견기업에는 기업 단위에서 여러 작품을 묶어 투자하여 평균 수익률을 확보하는 슬레이트 펀딩을 도입할 수 있다. 또한 지속적 창·제작을 위해 미래 수익의 일정 비율을 일정 기간 상환하게 하고, 매출 연동 상환을 통해 기업 현금흐름에 맞추며, 상환 자금을 다시 새로운 투자에 활용하는 수익연동상환&리볼빙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해외 진출 지원은 그동안 펀딩과 비즈니스 매칭에 집중됐으나, 앞으로는 현지 파트너십 구축과 사업 운영 전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확장이 필요하다. 해외시장 진출, 개척 및 관광 연계에 대한 시각 확장이 요구된다. 콘텐츠 기업이 스스로 창·제작한 IP 및 캐릭터 제품만으로는 이익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우에 따라 해외 IP를 K-콘텐츠화하거나, K-콘텐츠를 현지화해 시장을 개척하는 시도를 장려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또한 콘텐츠 향유 증가가 한국 방문 의향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관광 산업과 연계해 콘텐츠 기업의 부가적 수익화 채널을 개발하는 지원도 필요하다. 비즈니스 연계 차원에서도 콘텐츠 관련 중소기업은 일반 및 벤처 중소기업보다 바이어와의 미팅에서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특성이 있다. 따라서 해당 기업이 보유한 콘텐츠 및 IP의 도전적 해외 판매를 장려하는 정책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역량 강화는 기존 지원체계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콘텐츠 제작은 이미 상업화할 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조직들의 협업 산물이기 때문에 별도의 역량 육성이 덜 중요하게 여겨졌을 수 있다. 하지만 창·제작 성과가 수익화로 이어지는 만큼 관리 역량에 대한 지원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콘텐츠 창·제작이 명확한 시작과 끝, 제한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프로젝트 특성을 고려할 때 ‘프로젝트 관리’, ‘재무관리’, ‘리스크 관리’, ‘협상 전략’ 등 관리역량 중심의 아카데미 지원이 요구된다. IP의 해외 진출 및 도용 사례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법률·언어·기술 교육 및 역량 지원의 중요성도 크다.
연계를 위한 지원도 요구된다. 해외자본으로부터 보유 IP, 아티스트, 콘텐츠 및 역량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률적 조력 연계가 필요하며, 창·제작 과정에서 협업할 요소 기술 및 역량 보유조직을 발굴·연계하고 협상·계약 시 전문적 업무 지원을 받게 하는 체계도 요구된다. 또한 장르 및 분야별 신기술 연계의 중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콘텐츠 기업을 위한 지속적인 창·제작 및 판로 개척을 위해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한국적 소재가 콘텐츠의 주요 매력 요인인 만큼, 한국 문화 기반 소재 아카이브 구축과 문화예술 부문과의 연계를 통해 창·제작에 필요한 소재 및 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연계 플랫폼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현재 지역별 현지 마케터를 배치해 시장 정보를 수집·활용하고 있지만, 이제는 정보 중심 마케팅 활동을 넘어 네트워크 중심 마케팅 활동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이미 지역별 수많은 지사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과 연계를 강화해 업무의 중점을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정보 측면에서는 OTT 영향력 확대에 따라, 과거 IP에 대한 선호가 해외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해외 지역별 선호 IP 분석 및 연계 강화가 요구된다. 나아가 해외 지역별 특성 및 변화 양태를 파악하기 위한 정보 수집형 마케팅 활동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콘텐츠 기업이 ‘프로젝트 창·제작 조직’이라는 인식과 창작·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콘텐츠 소부장 기업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IP 중심 개방형 생태계 조성, 인프라 및 금융지원 정책의 개선과 해외 진출에 대한 관점의 확대 등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서 자리매김해 가는 한국의 콘텐츠 기업은 신기술과 시장별 공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콘텐츠 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한 기회 제공과 함께 핵심 지원 조직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더 큰 역할과 책임을 기대한다.
조부연 / 제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전라남도 나주시 교육길 35
T. 1566.1114 | www.kocca.kr
2025년 9월 29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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