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이제 Z세대를 움직이는 가장 유연한 언어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감정을 통해 세상을 확장해가는
Z세대 팬덤의 변화를 비춘다.
사람들은 언제 친밀감을 느낄까. ‘친밀’은 감정의 영역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친밀의 감각은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왔다. 최근에는 이 친밀감이 미디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타인과 대면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친밀감의 영역 또한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 혹은 두 영역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누군가는 온라인만으로는 친밀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오프라인 없이도 충분히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이처럼 다양한 논의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인간은 누군가와 대화하길 바라고 그를 통해 ‘연결의 감각’을 얻길 원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 ‘친해진다’라고 느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나 실제 생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을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나아가 공유하길 원한다. “세상 사람들아, 내가 좋아하는 것 좀 봐봐!”하고 외치고 싶은 감각 말이다. 현대의 인간관계는 오프라인 공동체가 느슨해지는 반면, 온라인 공동체는 더 세분화되고 밀착되고 있다.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이 대면보다 비대면 환경에서 더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낸다. 심지어 바로 앞의 사람을 두고도 말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 있다’라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것은 곧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며,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준이 된다. 이제 이 ‘좋아함’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사회적 의미가 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팬덤은 ‘좋아한다’라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 함께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을 온·오프라인에서 구체화한다. 과거의 팬 문화가 스타를 향한 일방향적 응원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팬덤은 서로의 감정과 취향을 나누며 ‘공동체적 자아’를 형성하는 공간이 되었다.
SNS에서 공유되는 ‘최애’ 콘텐츠, 팬들끼리 나누는 리액션 영상이나 팬픽 같은 2차 창작물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소속감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언어로 기능한다.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세미나에서 “이제 콘텐츠가 언어가 되는 시대가 왔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팬덤이 있다.
Z세대 팬덤에는 ‘소속감’과 ‘보상감’이 맞물리는 순환 구조가 있다. 소속감은 ‘나와 같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심리학에서는 이를 소속 욕구(affiliative need)라 부른다. 보상감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 ‘댓글’, ‘공유’의 형태로 돌아올 때 느끼는 즐거움이다. 이때 뇌의 도파민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나의 행동이 의미 있었다’라는 감각이 강화된다.
이 두 감정은 팬 활동의 원동력이 된다. 한 번의 응원이 다른 팬의 반응으로 돌아오고, 그 반응이 또 다른 창작을 낳으며 감정은 순환한다. 이렇게 형성된 정서적 교류는 ‘나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다’라는 확신을 만들어낸다. 팬들은 영상을 보며 자신의 반응을 찍는 리액션 콘텐츠를 통해 감정을 시각화하고, 감정은 개인의 것이 아닌 공유 가능한 자산이 된다. 팬픽이나 팬아트와 같은 2차 창작물은 원작의 서사를 새롭게 해석하며, 팬들이 공동으로 만든 또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사회심리학적으로 이는 팬덤 안에서 개인이 ‘사회적 자아(social self)’를 표현하고 인정받는 방식이다.
이처럼 개인의 ‘좋아함’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 바로 현대의 팬덤이다. 나이키, 애플, 넷플릭스뿐 아니라 러닝, 펜싱 같은 생활 스포츠 문화도 하나의 팬덤으로 확장된다. 팬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연령대나 장르에 한정되지 않는다. 팬덤은 문화적 현상을 넘어 경제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팬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순환과 2차 창작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 자원이다. 플랫폼은 팬들의 반응, 댓글, 시청 시간, 해시태그 같은 감정의 흔적을 데이터로 전환해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을 만든다. 이 알고리즘은 팬들의 ‘좋아함’을 더 자주, 더 강하게 자극한다.
유튜브는 사용자의 감정 반응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 영상을 추천하고, 팬 플랫폼은 ‘투표’, ‘등급’, ‘기여 점수’ 같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놀이 요소의 도입)을 통해 참여를 수치화한다. 팬들은 그 과정에서 감정적 만족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끼며, 플랫폼 속에서 더 깊이 관여하게 된다.
특히 팬덤은 문화적으로 자발적 2차 창작을 지속해왔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팬 대상의 확산을 돕는 ‘비공식 마케터’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이러한 무형의 감정 자산을 산업적 자원으로 전환하고, 알고리즘과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더 큰 이윤을 추구한다.
많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팬들이 촬영한 공연 영상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도 같다. 팬들의 자발적 기록이 또 다른 홍보 수단이자 경제적 가치, 즉 ‘바이럴’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감정의 흐름과 경제의 흐름은 이처럼 하나의 사이클로 맞물려 있다.
Z세대 팬덤은 단순한 소비 집단이 아니라, 감정을 생산하는 공동체이자 데이터를 창출하는 생산자다. 팬들의 감정이 모여 거대한 사회적 흐름을 만들고, 이 흐름이 다시 콘텐츠 산업과 플랫폼 전략을 바꾼다. 결국 Z세대의 팬덤은 하나의 ‘감정경제(emotional economy)’다. 좋아함과 소속감이 모여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가 다시 감정을 낳는다. 팬덤은 그렇게 감정이 자본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관계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팬덤과 콘텐츠는 하나의 언어로 작동한다. 그들은 동시에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유통자이자 새로운 콘텐츠 양식을 창조하는 잠재적 창작자다. 팬덤의 언어는 결과적으로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감정의 언어로 움직이는 팬덤은, 오늘날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팬덤 생태계가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경제체제로 작동하고 있는 플랫폼 사회에서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위치 지을 수 있는가일 것이다.
장민지 /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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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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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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