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산업은 소수가 즐기는 ‘장르’가 아니라
모두의 경험과 열정이 더해지는 ‘장’이 되었다.
‘버추얼 아이돌’로 ‘게임’으로 ‘굿즈’로 또 ‘창작 그 자체’로도 드러나는 만화의 변화무쌍한 정체성에 주목하자.
<2025 월드 웹툰 페스티벌> 행사장 전경
<2025 월드 웹툰 페스티벌> 이 지난 10월 19일부터~10월 22일까지 열렸다. 수많은 사람이 현장을 찾았고, 웹툰 굿즈를 구매하고 전시를 즐겼다. 작년에는 가장 뜨거운 도시 성수동에서 열렸고, 올해는 잠실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독자들은 물론 언론사 취재진과 유튜브 크리에이터들도 모였다. 잠실에서 공개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전시인 <전지적 독자 시점: 구원의 마왕 展>은 1, 2차 얼리버드 티켓이 모두 완판됐고, <마루는 강쥐>와 <소심한 호랭이 코코>가 콜라보한 ‘마루의 숲속 베이커리’ 팝업, 넷마블의 신규 IP 부스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장 내 웹툰 페스티벌 부스
2020년대 웹툰의 위상은 이제 이전과는 다르다. 성수와 잠실, 가장 많은 유동 인구가 다니는 상징적 공간에서 펼쳐진 웹툰 전문 행사는 출판만화와 웹툰을 포함한 만화 전체에 큰 의미가 있다. 상상을 구현하는 만화를 현실에서 만나는 의미를 잘 아는 독자들을 위한 행사이면서, 만화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한다.
<2025 월드 웹툰 페스티벌> 포스터
<2025 하고싶은 만화전>포스터 ©독립만화사 SideB(사이드비)
잠실에서 <2025 월드 웹툰 페스티벌>이 열렸다면, 10월 말에는 성수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바로 독립만화사 사이드비가 여는 <2025 하고싶은 만화전>이다. 오직 만화 부스만 62개를 채웠고 올해가 2회째로, <2025 월드 웹툰 페스티벌>과 같은 해에 시작했다. 아무런 지원 없이 독립만화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만화전이 성수에서 열렸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본래 ‘잘 아는’ 사람을 위한 콘텐츠였던 만화가 가장 번화한 거리의 페스티벌을 통해 점차 ‘모두를 위한’ 콘텐츠로 나아가고 있다. 독자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페스티벌들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그런데도 만화는 그동안 비주류 콘텐츠로 여겨졌다. 만화는 비주류일 뿐만 아니라, 명확하지 않고 부유(浮游)하는 정체성도 가진다. 예술의 성격이 있지만 화이트큐브(전통적 미술관) 전시에는 들어가기 어렵다. 대중예술이면서 영화에 비하면 훨씬 개인적이다. 회화에 비해 글이 많고, 소설과 비교하면 그림이 중심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만화는 늘 떠돌고 부유하는 정체성을 지닌다. 이런 정체성의 불안이 만화를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웹툰 이전 한국 만화의 흐름과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 공간
만화가 주류가 되지 못하는 정체성 때문에 만화에서는 언제나 상업의 첨단과 작가주의적 극단 사이에서 고민하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성수동에서 열린 <2025 하고싶은 만화전>은 작가주의를 긍정하고 독자를 만나는 행사였다면 <2025 월드 웹툰 페스티벌>은 상업적 성공과 대중적 인기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만화가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독자를 만나는 자리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부유하는 정체성 덕분에 만화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애니메이션도, 실사 드라마도, 모바일 게임부터 보드게임은 물론, 소설이나 심지어 놀이공원 테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회화에 비해 연속된 움직임을 가졌고, 소설에 비해 확고한 이미지를 가졌다. 소리가 더해지면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 수 있고, 서사를 바탕으로 실사화를 할 수 있다. 상상의 영역이 더욱 넓은 만화의 정체성은 지금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확장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분명 실패 사례도 있다. 사람들은 ‘잘 만든’ 확장 콘텐츠를 원하지, 무작정 새로운 확장 시도를 한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즐기고 사랑하는 이야기의 연장선이거나 또는 다른 차원의 재현 과정을 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는 콘텐츠가 성공한다. 이를테면 <바른연애 길잡이>의 바름이가 쓰는 다이어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바른연애 길잡이> 다이어리 펀딩은 2022년 펀딩 당시 1억 원을 넘는 펀딩 금액을 모았고, <가비지타임> 오디오드라마는 시즌1과 2 모두 4억 원을 넘기며 펀딩을 성공했다.
버추얼 아이돌로 유명한 ‘이세계 아이돌’ ©지니뮤직
또, 버추얼 아이돌인 ‘이세계 아이돌’ IP를 활용해 만든 웹툰 <차원을 넘어 이세계 아이돌>과 <마법소녀 이세계 아이돌>의 펀딩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 역사상 가장 많은 단일 모금액을 달성했다. <차원을 넘어 이세계 아이돌>이 세운 88억 2,000여만 원에 이어 <마법소녀 이세계 아이돌>은 41억 9,000여만 원으로 단일 펀딩 사상 1, 2위 금액을 달성하기도 했다. 버추얼 아이돌이 만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팬덤에게 도착한 셈이다.
이런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팬이다. 작품을 반복해서 읽고, 그 세계를 마음껏 즐기는 사람들이 만화의 확장을 이끌어낸다. 이들을 간과한다면, 콘텐츠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이 어떤 지점에서 열광했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떤 것에 열광할지를 알아내는 방법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진심으로 그 작품을 사랑하고 빠져들어 ‘덕후’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가장 부족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작품을 선보이는 것 외에 어떻게 유통하고, 독자를 만나 작품에 빠져들고 이해하도록 만들 것인가? 이런 확장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를 방증하듯, 작품을 사랑하는 팬을 직접 만나는 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와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공간에서 독자를 직접 만나는 <2025 월드 웹툰 페스티벌>과 <2025 하고싶은 만화전>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만화의 정체성은 부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걸 현실에 강하게 묶어두고 만화가 ‘부유하는’ 특성을 이용해 다른 콘텐츠와 자유롭게 붙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팬들의 존재다. 만화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것은 역시 팬이라는 의미다. 즉, 팬인 ‘덕후’들이야말로 만화의 정체성과 확장의 가장 핵심 키워드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독자는 작품을 읽는다. 그리고 팬은 작품이 확장될 수 있도록 작품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키워낸다. 말하자면 작품이 꾸는 꿈은 독자와 작가가 함께 만들고, 그것을 이뤄내는 방식이 IP 확장인 셈이다.
팬덤을 중심으로 한 확장이기 때문에 주로 활용되는 것이 텀블벅 등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팬덤을 결집시키고, 팬덤이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확장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다만,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잘 설정한다면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마케팅의 측면에서도 바이럴 마케팅에 유리하고, 펀딩에 실패한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어 비용 소요가 최소화된다는 장점도 있다.
이렇게 만든 굿즈를 팝업 등 ‘한정판 마케팅’을 펼치는 방법도 있다. 두 방식 모두 일단 ‘모객이 어느 정도 될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도전할 수 있고, 또 팝업처럼 대관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매출까지 전제되어야 한다. 즉, 다수의 팬 확보가 확장의 전제라는 의미다.
게임이나 영상매체들은 조금 다른데, 게임화나 영상화를 담당하는 곳에서 작품을 선정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원작을 선택한 원인에 따라 작품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팬들이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가 이 과정에서 누락된다면, 결과적으로 영상화에 대해 비판적인 팬들의 태도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반면 팬덤이 작품을 사랑한 이유가 그대로 살아있다면, 팬들은 작품과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다.
확장하는 작품들의 중심에는 팬이 있다. 말하자면 초기 원작 팬덤이 씨앗이 되어 다른 팬들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고, 작품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된다. 그러면 기존 팬덤은 씨앗에서 뿌리가 되고, 팬덤은 더 커져 새로운 씨앗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작품의 확장이 팬덤의 확장을 만들고, 성공적인 IP로 커나가게 된다.
이제 웹툰과 출판만화를 비롯한 만화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팬덤, 그리고 그 팬덤이 열광하는 작품이다. IP 확장을 준비하는 곳에서는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팬덤의 감정에 대한 동기화를 이루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만화가 꾸는 꿈은 팬과 함께 진화 중이다.
이재민 / 서울웹툰인사이트 편집장
유현석(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한국콘텐츠진흥원
전라남도 나주시 교육길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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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0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 미래정책팀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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