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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서브컬처 게임 붐이 시작되다
글. 이경혁(게임 전문지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팬덤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서브컬처 게임의 위세가 심상치 않다. 많은 서브컬처 게임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고, 한국 최대 게임 축제 ‘지스타 2023’도 서브컬처 게임의 비중을 늘렸다. 조용하게 확산되다 한국 모바일 게임의 대세를 이룬 서브컬처 게임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으며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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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처’의 본래 의미는 미디어 기술의 발전 이후 도래한 대중문화 시대의 ‘매스컬처(mass culture)’, 즉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반대항이었다. 대중이 향유하는 보편적인 문화 대신, 애호가 기질이 있는 소수에 의해 향유되면서 세력을 형성한 문화를 가리켜 대중문화와 대비되는 특수한 문화라는 의미로 서브컬처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영국을 위시한 서구권에서 대략 1960년대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흐름이었다.

영국의 서브컬처는 특히 계급적 성격이 강하게 맞물리면서 대중문화와 기성 권력에 대한 강한 저항성을 띠며 일종의 반문화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이제는 대중문화의 일부로 편입됐지만 초창기 영국 서브컬처의 대표주자였던 펑크 음악과 그래피티 등이 대표적인 사레다.

한국과 일본 등에서 통용되는 서브컬처의 의미는 서구권과 달리 반체제적, 저항적 의미보다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오타쿠 문화‘와 비슷하게 쓰인다. 체제 저항적이기보다는 소비 지향적이고, 애니메이션·게임·라이트 노블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되 미소녀 주인공 캐릭터, 코스프레, 동인지 창작과 같은 팬덤에 의한 2차 창작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일 양국에서 통용되는 서브컬처의 주요한 용례다.

’우마무스메‘ 게임 ⓒ사이게임즈 ⓒ카카오게임즈

서브컬처 게임, 캐릭터에 중심을 두는 새로운 흐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 또한 서구권에서 통용되는 의미보다는 일본식 의미에 가깝다. 대체로 애니메이션 스타일에 가까운 2D 일러스트레이션에 기반한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게임이 이뤄지고, 플레잉 메카닉 측면에서는 장르별로 달라지지만 대체로 게임의 중심이 규칙보다는 캐릭터에 치중된 형태라고 묶을 수 있다.

2022년 한일 양국에서 크게 히트한 ’우마무스메'는 경마를 다룬 게임으로 대표적인 서브컬처 게임으로 꼽힌다. 실제 플레이어는 말들의 경주 자체에 개입하지는 못하지만, 고유한 개성을 가진 채 등장하는 다양한 성격의 경주마들이 가진 이야기와 캐릭터를 소비하며 플레이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게임의 핵심은 다양한 경주마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우터플레인', '승리의 여신: 니케' 같은 게임들 또한 그 중심에 캐릭터가 자리한다는 점에서 같은 장르라고 볼 수 있을 만큼의 공통점을 보인다.

캐릭터가 중심이라는 말은 특히 서브컬처 게임 이전의 주류 트렌드였던 모바일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역할 게임)와 비교할 때 의미가 더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리니지' 등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기반의 MMORPG에도 캐릭터는 존재했지만, 이 장르에서는 캐릭터보다 아이템과 레벨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캐릭터라기보다는 전사, 마법사, 궁수와 같이 ‘직업’ 개념에 가까웠던 MMORPG에서는 같은 직업이라도 어떤 아이템을 활용해 육성했느냐에 따라 게임의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캐릭터 중심의 서브컬처 게임에서는 아이템보다 각 캐릭터가 가진 고유 능력치가 더 중시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의 능력치를 수치적으로만 보는 것 이상으로 각 캐릭터 고유의 비수치화된 매력이 강조되며 특별히 강력한 몇몇 캐릭터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모든 캐릭터를 수집하고 그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이 게임의 중심이 된다.

‘아우터플레인’ 게임 ⓒ스마일게이트

서브컬처 게임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전망

서브컬처 게임 붐을 만든 요소 중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이 장르가 모바일 MMORPG의 뒤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강한 ‘캐릭터 중심성’이다.

캐릭터를 수치 데이터로만 두지 않고 개별 코스튬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높이고, 성우 더빙과 개별 스토리 진행으로 강한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 서브컬처 게임의 주요한 특징이다. 앞선 MMORPG들이 주로 아이템, 이용권 등을 판매해 수익을 내던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낸 결과물이다. 무한한 경쟁 속에 강한 캐릭터만을 키우는 문제를 벗어나 캐릭터 자체를 수집하는 것이 게임의 중심이 되면서 MMORPG의 아이템 판매에 비해 훨씬 더 매력적인 소비 요소들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바일 환경의 특징과 맞물리며 시너지를 낸다. 세세한 컨트롤이 어려운 터치스크린 환경에서는 세세한 콘트롤보다 정해진 능력치를 기반으로 플레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캐릭터성 자체에 더 공을 들인 서브컬처 게임은 조작이 어려운 모바일에서도 캐릭터라는 새롭게 몰입할 대상을 제공함으로써 PC, 콘솔과는 다른 측면에서의 깊은 몰입을 가능케 한다.

‘승리의 여신: 니케’ 게임 ⓒ시프트업

서브컬처 게임, 변곡점을 넘다

서브컬처 게임 붐이 일면서 다양한 관심들이 이 새로운 트렌드를 향하고 있지만, 이 트렌드가 장기적인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다. 오타쿠 문화와 동의어를 이루는 한국과 일본의 서브컬처 게임은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취향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소녀 캐릭터 수집 게임이라는 장르의 특징이자 한계는, 한편으로는 성별이나 연령대 같은 제약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이 게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시장 규모를 작게 잡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만 오랫동안 콘텐츠 시장에서 잠재적 수요로만 거론되던 서브컬처 게임이 적어도 일련의 대세를 이루며 급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 시장이 적어도 규모 면에서는 더 이상 ‘서브컬처’라고만 불리기 어려운 변화로의 변곡점을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게임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향유층의 요구가 다양해지는 현상 또한 장르와 형식의 다변화를 통해 시장에 수용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서브컬처 게임 붐 역시 넓어진 시장의 다변화된 요구를 흡수하며 게임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의 하나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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