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 N개의 생각
‘K-콘텐츠의 슈퍼 IP 도전’에 대한 N개의 생각

최근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슈퍼 IP’를 배출하는 것이 아닐까? K-콘텐츠가 슈퍼 IP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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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글로벌 IP 플랫폼이 탄생하길

나는 IP 홀더(보유자) 만큼 IP 플랫폼의 활용과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저서 <IP 유니버스>에서도 다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IP 육성에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우리가 탄생시킨 글로벌 IP들을 살펴보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는 비슷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튜브 플랫폼을 활용한 BTS,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오징어게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한국 IP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는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불가피하게 플랫폼 의존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국도 중장기적으로는 각 IP 특성에 맞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국내 K-팝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자체 플랫폼들이 그 시도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해외 업체와 똑같은 플랫폼을 만들어 그들과 경쟁할 필요는 없다. IP는 그 종류와 표현 방식이 다양하므로 각 IP의 성격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여기서 한국 IP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이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한솔(<IP 유니버스> 저자)

아티스트는 음악을 만들고, 팬은 비즈니스를 만든다

K-팝 음반 판매량은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세븐틴, 스트레이키즈 등이 400만~6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해 화제가 되었다. 하이브는 미국의 게펜 레코드와 손잡고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라는 걸그룹 오디션을 시작했다. JYP 엔터테인먼트도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의 리퍼블릭 레코드와 함께 글로벌 걸그룹 오디션 <A2K(America To Korea)>를 유튜브로 공개했고, 일본에서는 ‘니쥬’를 탄생시킨 오디션 <니지 프로젝트> 시즌2를 통해 보이그룹 오디션을 진행 중이다. 세계 1위 음악 시장인 미국의 메인스트림에서도 K-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유가 뭘까?

흔히 K-팝은 ‘시스템’이라고 이해된다. 이 시스템은 '아티스트를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 키워내는 교육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K-팝 시스템을 수출한 경우가 있었다. CJ ENM, 큐브, RBW 같은 회사가 중국, 동남아시아에 K-팝 시스템을 도입해 현지 아티스트를 성공시켰다. 그때는 아시아였고 지금은 미국이다. 아시아와 미국의 문화적, 제도적 차이 때문에 해외에서 K-팝 제작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K-팝을 ‘음반을 대량 판매하는 사업 모델’로 정의하면 글로벌 프로젝트가 이해된다. 이는 미국 음악 산업이 21세기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핵심은 바로 ‘슈퍼 팬’에 있다. BTS 같은 슈퍼 IP는 슈퍼 팬 덕분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콘텐츠 비즈니스는 IP를 개발하는 것보다 팬을 발견하고 찾는 것이 더 우선해야 한다.

아티스트는 음악을 만들고, 팬은 비즈니스를 만든다. 그러나 업계는 이 둘을 종종 헷갈리는 것 같다. IP 개발은 오직 팬을 발견하고, 그들과 교류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슈퍼 IP를 얻고 싶다면, 콘텐츠의 전문가만큼 팬의 전문가도 필요하다. K-팝이 가장 잘하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다. K-팝은 ‘제작 시스템’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이다.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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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권리가 공정하게 분배될 때 IP는 더 발전한다

한국의 많은 콘텐츠들이 해외에서 날개를 달고 있다. 다만 이것이 해외에 기반을 둔 OTT의 마케팅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 잘 만들어진 콘텐츠의 힘 덕분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K-콘텐츠가 더 많은 슈퍼 IP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IP를 만들어 낸 창작자들에게 공정한 권리를 분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IP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무단 복제, 아이디어 도용 등) 책임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음악이나 웹툰에 빗대 생각해 보면 창작자가 제대로 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예능 프로그램처럼 대본이 없는 언스크립트 분야에서도 슈퍼 IP의 탄생이 더 활발해질 것이다. 프로그램 창작자의 노하우와 아이디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수 년 간 쌓아온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노력의 결과임을 방송국 및 프로덕션이 먼저 인정해야 한다.

박원우(‘디턴’ 대표)

기존 IP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종 매체의 특징을 살펴라

15~20년 동안 꾸준히 큰 사랑을 받는 슈퍼 IP가 되려면 이종 매체 간 IP 확장이 필수다. 기존 콘텐츠를 게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관의 이해’다. 매체 자체의 특성이 다른 만큼 콘텐츠를 게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게임에 맞는 응용과 재해석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각 매체에 맞는 변화다. 이는 웹이냐 영화냐 드라마냐에 따라 트랜스 미디어의 방법이 또 달라진다는 의미다. 게임의 경우, 게이머들의 특성이나 그들이 해당 IP를 향유하는 패턴을 제대로 꼼꼼하게 살피면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성공했던 장수 IP를 재활용하는 방법이다. ‘프리퀄(전편)’, ‘씨퀄(후속편)’ 등의 단어가 있듯이 게임에서 ‘확장팩’, ‘스핀오프(원작에서 파생된 작품)’처럼 기존 IP의 설정과 캐릭터만 따서 다른 스토리를 만든다면 더욱 성공적으로 슈퍼 IP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게임에서 슈퍼 IP로 성공한 케이스는 해외에서는 ‘포켓몬’, 국내에서는 ‘메이플스토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으로 시작된 ‘포켓몬’은 만화영화, 굿즈, 도서, 영화 등으로 확장되면서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이 역시 위의 3가지 원칙을 잘 지킨 예라고 할 수 있다.

김정태(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메이플스토리’는 게임에서 슈퍼 IP로 성장한 사례다. ©넥슨

일관된 브랜딩으로 IP를 인식시키는 것이 슈퍼 IP의 첫걸음

K-콘텐츠산업이 더 많은 슈퍼 IP를 배출하려면 IP의 프랜차이즈화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IP의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스토리텔링과 일관된 브랜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더핑크퐁컴퍼니의 경우, 일상에서 핑크퐁을 만날 때 ‘핑크퐁이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브랜딩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핑크퐁은 6천여 편이 넘는 영상, 앱, 음원, 제품에 오프닝 로고로 등장하며 슈퍼 IP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더핑크퐁컴퍼니의 유튜브 누적 조회 수가 850억 뷰를 기록한 것을 생각해보면 전 세계 80억 인구가 10번 넘게 핑크퐁 오프닝 로고를 본 셈이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핑크퐁' 콘텐츠를 인지시키는 브랜딩 효과가 이어지며 더핑크퐁컴퍼니는 글로벌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되고 있다.

주혜민(더핑크퐁컴퍼니 사업개발 총괄이사)

결국, 협업

한국 웹툰 산업은 국내 웹툰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눈에 띄게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통신 기술과 스마트폰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중요한 요소다. 유주얼미디어의 경우,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작가 스튜디오‘ 환경을 마련했다. 슈퍼 IP로의 확장을 위해 우리가 제작한 웹툰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이를 게임 등의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도록 여러 업체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 제작 단계에서부터 웹툰 속 의상을 디자이너와 함께 협업해 만든다거나 NFT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는 등의 노력 또한 웹툰 산업계의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기 위해서다. 글로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K-콘텐츠 기업이 IP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협업’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성욱(유주얼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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