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N N story 1
생존, 한국형 슈퍼 IP의 특징이자 가능성
글.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최근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K-콘텐츠 산업계에서 자주 보게 된다. 도대체 어떤 걸 한국형이라고 말할 수 있고, K-콘텐츠를 ‘한국 작품’이라고 해외에 인식시키는 일련의 색깔은 무엇일까. 정답이 있을 순 없지만, 성공한 K-콘텐츠 작품들을 통해 그 단서를 들여다봤다.

©Shutterstock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어 전 세계에 밈 현상까지 불러일으킨 <오징어게임>은 누가 뭐래도 국내외에서 ‘K-콘텐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데스 서바이벌 장르는 보편화된 형식이고 이 장르를 가진 작품들이 나온 바 있다. 일본의 경우는 <오징어게임>이 소개되기 몇 년 전 <아리스 인 보더랜드> 같은 데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바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장르다. 그런데 유독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건, 이 작품만이 가진 차별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 언어도 다르고 담고 있는 문화도 다르지만, ‘한국이어서’ 가능한 차별적인 내용적 요소들은 뭐였을까.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보다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생존’ 문제라고 생각한다.

<슈퍼스타 K> ©Mnet

최근 성공한 K-콘텐츠의 주요 키워드는 ‘생존’

우리에게 ‘서바이벌’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다. <슈퍼스타 K>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치열한 경쟁과 이를 뚫고 생존해 끝내 정점에 서게 된 인물의 ‘성공 스토리’를 기반으로 지금껏 한국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은 어찌 보면 가상으로 제공된 이 서바이벌 틀을 보며 거기에 자신을 투사해 바라본다. 자신이 처한 치열한 생존 서바이벌의 현실을 대입하는 것. 그래서 공정성 문제에 집착하고 이를 뚫고 생존한 이의 성공을 마치 내 일처럼 받아들인다. <오징어게임>의 차별성은 바로 이 게임이라는 가상적 상황에 ‘현실감’을 더함으로써 한국적 현실에서의 생존 문제를 부각시킨 지점에서 나온다. 모두가 투표를 해 게임을 멈출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게임이 중단되고 현실로 돌아가지만, 그들이 결국 다시 게임을 찾아온다는 그 설정이 가상의 게임에 현실감을 강화시켰다. 바깥은 더 심하다. 그러니 이 안에서 차라리 죽음의 게임을 하는 게 더 낫다는 메시지가 만들어졌고,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 사회의 치열한 ‘생존 현실’을 밑그림으로 제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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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최근 성공한 K-콘텐츠 작품들의 공통된 키워드에 ‘생존’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킹덤> 같은 작품이 민초의 굶주림과 권력자의 힘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양극화 상황에서의 ‘생존’을 그렸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입시 제도 같은 잘못된 교육, 경쟁 시스템 속에서 좀비처럼 획일화될 위기에 놓인 아이들이 벌이는 ‘생존’의 사투를 그렸다. <스위트 홈>은 어떤가. 갑자기 창궐한 괴생명체들 속에서 그린 홈 맨션 사람들이 마주한 생존 상황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최근 방영된 <더 글로리>가 학교 폭력을 소재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러도 부의 세습으로 잘 살아가는 사회를 꼬집으며 그곳에서 ‘생존’해낸 이들의 복수를 그렸다면, 최근 전 세계의 호평을 받고 있는 <마스크 걸> 같은 작품 역시 저마다 마스크를 써야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파국적 생존 상황을 그렸다. 우리에게 ‘생존’이라는 키워드는 부지불식간에 대중이 가장 주목하는 서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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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전자 코드에 깊숙이 뿌리내린 생존

최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공감하고 열광할 수 있는 ‘슈퍼 IP’를 찾으려는 노력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적 슈퍼 IP’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쓰이고 또 들려온다. 그런데 과연 그 ‘한국적’이라는 건 뭘 말하는 것이고, 지금 현재 해외에서 한국적인 K-콘텐츠는 어떤 서사로 포지셔닝되고 있을까.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K-콘텐츠가 수많은 작품을 통해 ‘생존’ 문제에 지속적으로 천착하고 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이른바 슈퍼 히어로물이라 해도 서구의 것과 우리 것의 차이점으로 보이는 건 바로 이 ‘생존’ 문제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을 떠올려보라. 여기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마블의 슈퍼 히어로들처럼 지구를 구하는 일들에 뛰어들지 않는다. 대신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이용하려는 이들 때문에 고통받고, 결국 그들과 대결하며 가족과 연인 같은 가까운 이들을 지키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능력자들이 나와도 이들은 ‘생존’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다.

‘생존’은 한반도의 역사에 늘 뼛속 깊이 드리워져 있던 사안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그 후로 이어진 분단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부터 무수한 외세의 침략 속에서 우리가 고민한 건 ‘생존’ 문제였다. 반도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가 만들어낸 이 ‘생존’이라는 코드는 우리의 유전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생존, 전 지구적인 관심이 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현재 ‘생존’이라는 키워드는 우리만이 아닌 전 지구적인 사안으로 대두됐다는 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부터 매년 이상기후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위기, 그리고 식량문제부터 양극화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어느 한 지역이 산다고 해도 다른 지역이 무너지는 현실을 방관하는 건 공멸의 길이 된다는 걸 누구나 인식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이 생존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팬데믹을 겪으며 함께 살지 않으면 함께 죽을 수 있다는 걸 절감한 우리들에게 생존, 나아가 공존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글로벌화된 콘텐츠 시장에서 슈퍼 IP란,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더 폭넓은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는 서사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차별적으로 로컬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서사로서의 ‘생존 문제’는 우리에게 슈퍼 IP의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는 전제되어야 하는 요소들이 있다. 생존 문제를 거론할 때 자기 검열 없이 사회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하고, 그런 서사들을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묶어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며, 이를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낼 수 있는 노하우와 기술력이 요구된다. 또한 하나의 IP를 다양한 장르로 변환하는 데 필요한 전문 인력들 또한 요구된다. 그래서 한 장르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굳이 IP의 확장을 고려하지 않아도(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그 장르에는 단점이 될 수 있으므로) 그걸 연결하고 변환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국형 슈퍼 IP를 찾는 길

한국형 슈퍼 IP를 ‘생존 서사’라고 꺼내놓았지만, 다시 말해 이건 정답이 아니고 또 될 수도 없다. 다만 이런 식의 접근 방식으로 ‘한국형’이 무엇인지, 또 우리의 차별성을 찾아내면서도 글로벌 공감대를 끌고 갈 수 있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한국형 슈퍼 IP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는 K-콘텐츠가 이제는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정답이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하나의 작은 이정표라도 되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길의 출발점 정도는 되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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