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N N story 4
슈퍼 IP, 우선 원천 스토리가 탄탄해야 한다
글. 윤승민(넷플릭스 오리지널 <승리호> 작가, 모칸 대표)

콘텐츠를 기획하고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콘텐츠가 ‘슈퍼 IP’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 보니 슈퍼 IP가 창작의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의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과 평범한 사람들의 감성을 진정성 있게 담은 ‘원천 스토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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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은 인간이 창조한 지식, 정보, 기술을 법률상 재산으로 보장받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슈퍼 IP’는 여기에 ‘슈퍼(Super)’까지 붙었으니 콘텐츠 흥행을 통해 부와 명예를 창출하려는 창작자와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달콤한 목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산업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명칭이다. 지금도 밤잠을 못 이루고 자신만의 슈퍼 IP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업계 동료들이 많을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산업적 글쓰기를 하는 필자도 늘 같은 고민을 하며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주로 오리지널 아이템을 개발하지만, 함께 일하는 유능한 프로듀서들이 잠재 가능성이 풍부한 원작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일과 취미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해준 작품들을 찾아보지만, 재미와 함께 씁쓸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콘텐츠를 처음부터 슈퍼 IP로 만들고 싶은 동료들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 욕심이 좀 과할 때도 있는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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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가 모두 숨어 있다, 국가별 슈퍼 IP

시작부터 목표를 슈퍼 IP로 설정하고 만들기 전에 그리고 슈퍼 IP라는 결과적 평가부터 바라보기 전에, 각 나라별로 슈퍼 IP를 만들어온 방식과 역사가 다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근현대사를 통틀어 해외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수행했던 미국은 모병 과정에서 청소년이 즐겨 보는 액션 코믹스와 할리우드 영화의 도움을 받았다. 가족과 사회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국가와 지구 평화를 수호하는 히어로물의 초월적인 영웅 캐릭터 이미지는 전 세계로 파병을 나가야 하는 미군을 모집하는 데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또한 G2로 불릴 만큼 강력한 경쟁 상대인 미국을 추월하기 위한 방편으로 ‘우주 굴기’를 선택한 중국에서는 인민들의 SF 소설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유랑지구>와 <삼체> 등 소설 원작의 SF 영화들을 슈퍼 IP로 발표하고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억눌린 공격성과 ‘잃어버린 30년’의 경기 침체로 움츠러든 분위기를 결합하여, 주인공이 갇혀있던 능력을 분노와 함께 폭발시키는 형태의 만화/ 애니메이션을 슈퍼 IP로 만들어왔다.

이처럼 작품이 발표되는 국가 또는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동시대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담아야 대중적으로 큰 지지를 받는 슈퍼 IP가 되는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은?

미국 슈퍼 IP를 대표하는 히어로물은 청년들이 미군에 입대하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Shutterstock

성공한 한국적 슈퍼 IP에 담긴 것

한국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슈퍼 IP를 거론하면서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급속하게 진행된 정치 경제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격렬한 생존 경쟁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날카로운 사회 풍자물로 우리 스타일의 슈퍼 IP를 만들어낸 것이다.

첨단 제조 산업 분야에서는 동시대에 가장 우수한 제품을 구해서 분석하고 해체하여 재조립함으로써 신제품 개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콘텐츠 개발 방식도 마찬가지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의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를 분석하고, 여기에 새로운 독창성과 개선점을 부여해서 만들면, ‘다음 슈퍼 IP는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발표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다 비슷한 개발 과정을 거쳤을 텐데, ‘왜 극소수 작품만 슈퍼 IP로 성공하고 나머지는 그렇게 되지 못할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오징어게임> 등 한국형 슈퍼 IP에는 생존 경쟁을 풍자한 작품들이 많다. ©넷플릭스

단단하고 진정성 있는 ‘원천 스토리’ 구축

필자는 슈퍼 IP든 일반 IP든 여전히 ‘원천 스토리의 생명력과 진정성’이 흥행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성공한 작품을 분석하는 데 할애하는 시간만큼 현재 사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각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진지하게 담아내는 것. 문장 몇 줄만으로도 동시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단단하고 진정성 있는 ‘원천 스토리’를 구축한다면 그 시작이 웹툰이든 소설이든 혹은 드라마나 영화로 먼저 발표되든 형태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본다.

슈퍼 IP라는, 다분히 산업적 성공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칭호를 얻기 위해서라도 결국 우리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은 수천 년 전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음유시인이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창작 방식이다. 기존의 슈퍼 IP를 분석해 또 다른 양산형 히어로와 평행우주 세계관을 애써 만드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사는지 관찰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 몇 줄부터 만드는 것이 우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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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스토리’라는 씨앗을 심자

태생부터 슈퍼 IP로 기획해 다음 시즌, 스핀 오프를 감안한 확장성 있는 스토리 구조를 설계하고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구상한다 해도, 체계적인 마케팅과 물량 공세로 많은 대중에게 작품의 출발을 알릴 수 있다고 해도, 씨앗인 ‘원천 스토리’에 대중의 가슴을 후벼파는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씁쓸한 댓글부터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겪어왔다. 그러니 작업대 위에 시대정신과 평범한 사람들의 감성을 진정성 있게 담은 몇 줄의 씨앗, ‘원천 스토리’를 심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런 원작이 있다면 필자부터도 어디든 달려가 제발 판권을 팔아달라고 읍소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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